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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실황 하이라이트 및 배우 인터뷰 베로나의 두 신사에서 발렌타인 역을 맡은 김호영과 줄리아 역 최유하. 이 두 배우들이 소개하는 베로나의 두신사는 어떤 작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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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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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목을 보고서 무척 생소해 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 가운데 이렇게까지 못 들어본 작품이 있었다니.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면서도 국내 관객들에겐 낯설기만 한 베로나의 두 신사는 과연 어떤 작품일까?
지난 20일, 이 공연을 처음 보면서 꽤 낯익은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것에 놀랐는데 <베로나의 두 신사>는 안톤 체홉의 <숲귀신>과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가 처음으로 쓴 희곡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역시 <숲귀신>과 같은 이유. 첫작품이라 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정도의 완성도가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렌 월포드(Glen Walford)가 각색과 연출을 맡아 음악극 형태로 국내에서 초연중인 이 <베로나의 두 신사>는 유명 극작가가 젊은 시절 쓴 첫 희곡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어설픔에 의한 아쉬움의 우려를 아주 말끔히 날려버렸고 신선함과 유쾌함,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친근함으로 관객들을 놀래켜 주었다.
진흙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듯한 각색과 연출의 힘베로나의 두 젊은 신사들, 발렌타인과 프로튜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비록 처음 보았지만 결코 낯설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이란 사실을 모르고 본 한 관객은 이 연극이 셰익스피어 작품 여러 개를 섞어 만든 셰익스피어 오마주 아니냐고 묻기까지 했다.
마치 로댕의 <지옥의 문>이 <입맞춤>,<생각하는 사람> 등 향후 그가 독립된 작품으로 만들게 될 여러 작품들의 근원이 된 것 같이 <베로나의 두 신사>에도 앞으로 셰익스피어가 만들게 될 작품들, 그러니까 <한 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십이야> 등의 여러 작품들에 쓰여질 주요 모티프들이 잔뜩 숨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극 작품들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이런 것들을 찾아내면서 보는 재미 또한 매우 쏠쏠할 것 같다. 연인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증표인 반지를 간단히 남에게 주어버리고, 우정을 위해 매우 쉽게 자신의 사랑을 양보하는 장면이라든지, 연인을 찾아 남장을 하고서 여행을 떠나는 용감한 여인, 숲 속에서 이래저래 하다 결국 세쌍의 커플이 탄생하는 귀결 등 이 작품의 꽤 많은 장면들이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에서 상당히 주요하게 쓰인 이미지들이다.
안톤 체홉은 자신의 첫 작품 <숲귀신>이 대실패로 막을 내리자 아예 이 작품을 영원히 숨겨버리기로 하고 대신 나중에 상당부분 손을 본 후 그의 유명한 4대 장막극 중 하나인 <바냐아저씨>를 내놓게 된다. 그에 비해 셰익스피어의 첫작품 <베로나의 두 신사>는 체홉의 <숲귀신>과 마찬가지로 지금껏 세계적으로 거의 상연이 되지 않다가 글렌 월포드의 각색과 연출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색깔과 재미를 최대한 살려내 2007년 일본 초연에서 전회매진이라는 큰 반응을 얻은 후 다시 한국 관객들을 찾은 것이다.
셰익스피어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마치 진흙탕 속에 숨은 진주를 찾아낸 것과 같은 각색과 연출의 놀라운 마법에 대해 정말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이 작품의 원래 대본을 보지 않았기에 비교해 볼 순 없겠지만 현재 공연중인 상태와 비슷하기라도 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이렇게 계속 묻혀 있지만은 않았었으리라. 그야말로 각색과 연출의 힘인 것이다.
사랑과 배신으로 인한 좌충우돌, 결말은 해피엔딩베로나의 두 젊은 청년 발렌타인(김호영)과 프로튜스(이율)는 흔히 말하는 '절친' 또는 죽마고우인 사이다. 발렌타인은 남자로서의 꿈과 모험을 찾아 밀란(밀라노)으로 떠나지만 프로튜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줄리아(최유하)로 인해 베로나에 남는다.
남자로서의 출세, 성공 욕구가 강했던 발렌타인은 밀란에서 실비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되고, 프로튜스 역시 외국 경험이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는 아버지의 의도에 의해 밀란으로 오게 되는데 이미 친구의 연인이 된 실비아에 홀려 친구를 배반하고 고향에 두고 온 연인도 잊어버린다.
한편 베로나에 남겨졌던 프로튜스의 연인 줄리아는 사랑하는 프로튜스를 찾아 남장을 하고 밀란을 찾게 되고, 거기서 프로튜스가 자신을 잊고 오히려 발렌타인의 연인에게 구애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런 저런 소동 끝에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마지막엔 세쌍의 커플이 탄생한다. <한 여름밤의 꿈>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 바로 직전에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볼 수 있었던 반지 사건과 우정을 위해 너무나도 쉽게 사랑을 양보하는 우스꽝스런 장면도 볼 수 있다. 밀란 공작의 결혼 반대로 인해 성 밖으로 추방당하는 발레타인의 장면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주연배우들인 두쌍의 커플들의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를 중심축으로 하지만 숲과 자연,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 추방된 사람들에 대한 화해와 용서, 자신의 사랑을 찾아 남장을 하고서 먼길을 떠나는 10대 소녀의 성장기 등 다양하고 아기 자기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밀란 공작이 골프 연습을 하는 장면이라든지 발렌타인과 프로튜스가 마상시합을 하는 부분, 줄리아가 초상화를 들고서 독백을 하는 등의 군데 군데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맨 마지막 즈음에 이루어지는 순식간의 반전, 이 부분이 상황전개에서 너무 급작스럽기에 얼개가 성겨보이고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이 부분만 너그럽게 보아넘긴다면 셰익스피어의 색채가 뚜렷한 깔끔한 코믹극으로서의 유쾌한 해피엔딩이 결코 나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각색과 연출도 좋았지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극의 재미를 잘 살려냈다. 그중에 특히 줄리아 역의 최유하가 눈에 띄었다.
요즘같이 무더운 한 여름 열대야에 유쾌한 데이트 거리를 찾는 연인들에게 부담없이 추천할 만한 공연이며, 나이 관계없이 온 가족이 함께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다음달인 8월 28일까지 상연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