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저수지의 '괴물' 퇴치작전충북 제천시 세명대학교 바로 옆에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 의림지가 있다. 이곳에 언제부터인지 '괴물'이 살고 있다. 바로 배스와 블루길이다. 토종어류들은 눈에 띄었다 하면 잡아먹힐 판이니 그들에게 '괴물'이나 마찬가지.
우리나라에 주로 서식하는 배스는 몸길이 30cm, 무게 1~2kg 정도 나가는 큰입배스다. 먹성이 대단해 자신보다 작고 움직이는 생명체는 모조리 삼켜버린다. 붕어의 치어와 피라미, 새우, 미꾸라지는 물론이고, 잠자리와 메뚜기, 심지어 작은 뱀까지 잡아먹는다.
먹이를 먹다가도 다른 먹이가 눈에 띄면 덥석 문다고 하니 식탐이 보통 아니다. 블루길은 10~33cm 길이에 340~450g 정도로 배스보다 덩치는 작지만 산란기가 매우 길어 번식력이 뛰어난 어종이다. 다른 물고기들의 알을 즐겨먹는 탓에 토종어류는 치어가 되기도 힘들다.
의림지 명물 공어, 외래어종때문에 멸종 위기 의림지에 배스와 블루길이 번식하기 시작한 건 20여 년 전이다. 무지막지한 포식자가 등장하면서 의림지의 명물인 공어(빙어)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제천시는 해마다 겨울에 공어축제를 연다. 과거에는 충주와 춘천 등 다른 지역에 공어를 '수출'할 만큼 개체 수도 많았다. 외래어종이 득세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의림지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의사모)의 김용갑 회장(충북 제천시 모산동, 57)은 "이제는 공어축제에 필요한 공어(빙어)가 모자라 2008년까지는 충추나 춘천 등지에서 매년 300kg씩 사 왔다"며 "지난 2년간 방생을 하지 않자 개체 수가 다시 줄었다"고 말했다. 조선 시대 고종황제에게 별미로 진상하기도 했던 공어가 이제는 대가 끊길 지경에 이른 것이다.
두세 시간만에 배스·블루길 3천 마리 낚아이에 따라 의림지 인근 주민들이 모여 만든 의사모에서는 2005년부터 매년 '외래어종 퇴치 낚시대회'를 연다. 25일 열린 6회 대회에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궂은 날씨에도 낚시꾼 40여 명과 시민 4백여 명이 참여했다. 불과 두세 시간 만에 낚아올린 배스와 블루길만도 3천여 마리. 의림지 물속에 얼마나 많은 배스와 블루길이 서식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숫자였다.
행사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의림지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참가자들 나이는 70대 노인부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아빠 옆에서 낚싯대를 빌려 낚시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일부 참가자는 일찌감치 도착해 먼저 손맛을 즐기고 있었다. 제천이 고향이라는 한 참가자는 "예전부터 의림지에 배스를 잡으러 자주 왔는데, 오늘은 대회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많이 잡히는 것 같다"며 쉬지 않고 낚싯줄을 던졌다. 오전 11시쯤부터 한 시간가량 장대비가 쏟아졌는데도 일부는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쓴 채 '외래어종 잡기'에 몰입했다.
미꾸라지 미끼도 통째로 덥석 배스는 인조미끼인 루어를 이용하고, 블루길은 주로 지렁이를 이용해 잡는다. 몇몇 참가자는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미끼로 사용했다. 한 참가자는 막 잡은 배스의 입을 벌리고 아직 삼키지 못한 미꾸라지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의사모는 허기진 참가자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의림지를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무국수와 한방차를 대접했다. 시상식에서는 제천 주민들이 각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제천 토박이 안상국씨는 무려 4백 마리가 넘는 배스와 블루길을 잡아 '많이 잡기'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안재훈씨는 44cm 짜리 배스를 잡았고, 이원재씨는 18cm 짜리 블루길을 낚아 각각 대어상을 받았다.
청소년상은 전보성군, 부녀상은 서정분씨가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은 직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탓에 수상자들이 소감을 말 할 여유도 없이 서둘러 진행됐다. 온몸은 비로 흠뻑 젖었지만 마음은 더없이 흡족한 듯했다. 수상자 외에도 대회참가자 60여명이 추첨을 통해 푸짐한 경품을 받았다.
외래어종 낚시만 허용의사모 김 회장은 "배스와 블루길의 무분별한 방생으로 공어나 잉어 같은 토종들이 크게 줄었는데 그동안 낚시대회를 통해 외래어종이 줄고 토종어류도 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계속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천시는 7년 전까지 의림지를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이후 의사모의 건의로 외래어종 낚시는 허용하고 있다.
충북도 지방기념물 11호로 지정된 의림지는 제방 위에 멋있게 자란 수백 년 된 노송과 버드나무 숲인 제림(堤林)으로 절경을 이룬다. 호반 둘레는 약 2km이고 만수 때 면적 약 16만㎡로 수원월드컵 경기장 두 배만한 크기를 자랑한다.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30m 낙차로 떨어지는 자연폭포가 어우러져 '제천1경'으로 손꼽힌다.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저널리즘스쿨에서 발행하는 단비뉴스에도 중복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