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삼락둔치에 이르렀을 때는 순례의 마지막 날(21일)이었다. 낙동강을 따라 내려온 우리는 둔치의 푸른 일렁임과 마주했다. 무수한 갈대가 바람을 빚어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넓고 경이로운 곳이었다. 습지와 물억새, 부들과 버들 사이로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물이 살아 움직인다. 그곳에 낙동강 3공구 건물이 들어서 있다.
길가에는 맹꽁이 서식을 확인하기 위한 트랩이 설치돼 있었다. 삼락둔치는 부산시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준설토 적치장을 세우려고 했다가 맹꽁이가 발견되자 공사를 중단한 곳이다. 멸종위기 2급인 맹꽁이가 평소 활동할 때가 아닌 5월에 발견되자, 사람들은 말했다.
"맹꽁이도 살고 싶어서, 자기들이 있다는 걸 알리려고 일찍 나왔다." 근처에는 부산시건설본부 이름이 박힌 흰 푯말도 세워져 있었다. 7, 8월 우기 동안 삼락둔치 일대 맹꽁이의 서식실태를 조사한다는 것이었다. 발견된 맹꽁이는 대체서식지에 방사될 것이다. 눈에 띄는 트랩은 숲 안이 아닌 산책로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햇볕에 타 말라죽은 맹꽁이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장마가 끝나고 맹꽁이의 울음이 그친 후, 이곳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낙동강을 따라 오면서 보았던 거대한 준설토의 무덤들을 이곳에 쌓아놓겠다고 한다. 함안보 쪽에서는 검은 오니를 육안으로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강바닥을 다 구르지 못한 돌멩이, 죽은 물고기, 채 삭혀지지 못한 독을 토해내며 모래더미는 산을 이루었다. 그 모래가 푸르른 맹꽁이와 물억새와 습지와 밭을 덮칠 태세다.
침사될 위기에 놓인 삼락둔치... 농민들은 울고 있었다환경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 활동가가 간밤에 분개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수변습지와 자연초지에 적치장을 조성하면 큰기러기, 황조롱이, 고니, 맹꽁이의 서식지를 파괴한다,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 낮에 만난 관의 관계자가 간단히 대답했단다. "맹꽁이는 옮겨주면 되고, 기러기는 날개가 있으니 알아서 다른 데 날아가지 않겠냐?"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관료를 두고 활동가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
4대강 사업으로 강 폭을 500여m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계적인 논리로, 삼락둔치 수변은 절개되고 자연초지구간은 침사될 위기에 놓였다. 낙동강 부산구간 공사는 제2하굿둑 건설 사업을 핵심으로 한다. 하굿둑까지의 물길을 넓히려고 바닥을 준설하고 둔치를 절개할 예정인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설명도 설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삼락둔치의 미물들은, 농민들은, 어설픈 트랩 안에서, 컨테이너 안에서 말라 타들어가며 자신의 존재로써 시위했다.
초지 안에는 밭이 있고, 농부들이 밀짚모자에 흰 장갑을 끼고 쭈그려 앉아 일하고 있었다. 농막 앞에는 '농민들은 내쫓고 썩은 준설토가 웬말이냐'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4대강 중단'이라고 쓰인 깃발이 장대 끝에서 펄럭인다. 영상기록을 하는 박채은씨가 한 여성 농민에게 다가갔다. 그분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도와주세요. 우리가 몇 년 후에 죽는 것도 아니고, 계속 살아야 하는데,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갑니까. 우리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여기서 조용히 농사짓고 살겠다는데, 대체 왜 우리를 쫓아내려는 겁니까? 도와주세요…." 부산 사상구청은 삼락둔치에서 농사를 지어온 농민 191명에게 "6월 30일까지 영농시설을 모두 철거하라"고 계고장을 보냈다. 2차 계고장은 7월 30일을 기한으로 하고 있다. 농민들의 목표는 하나, 2005년에 부산시와 협의한 대로 당대계약을 준수해 자신들의 땅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죽을 고생해서 땅을 살려냈는데, 다시 내놓으라니..."
우리는 농민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다. 농성장을 찾아갔다. 7월부터 농성을 시작한 늙은 농민들이 붉은 컨테이너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 있었다. 농성장 안에는 선풍기와 모기장, 구겨진 이불 같은 것이 있었다.
부산농민회 사상지회장인 김해근씨가 대표로 나와, 갑작스레 들이닥친 우리를 맞아주었다. "젊은 분들이 자연과 강에 관심을 가지시고 여기까지 오신 것을 환영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어진 그의 말은, 우리가 며칠에 걸쳐 어설프게 더듬거리며 이해한 것을 명료하게 짚어주었다.
"이곳은 김대중 정부 말기와 노무현 정부 때 낙동강 하구환경정비사업으로 1450억 원을 들여 정비한 곳입니다. (2005년에) 부산시와 국토관리청이 협의하여 농민들의 당대 영농을 보장하고, 친환경농경을 조성하여, 사망하면 환원해서 부산시가 공유지로 쓰겠다고 약속했어요. 처음에 우리가 땅을 부산시에 다 환원하고 그중 40~50%를 어렵게 돌려받았어요. 조성 2년을 기다려서 땅을 받고도, 사상공단에 공해업소가 많아 밤에 야간투기해서 땅 자체가 오염된 상태인 데다 중장비로 밀어버린 땅에 바로 농사짓기 어려워서 3~4년간 죽을 고생을 하고 땅을 살려냈어요. 작년부터 이제 작물이 조금 되어 농민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보려는데, 4대강 개발 국가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저희들한테 쥐꼬리만 한 2년치 실용비를 제시하며 협의서라고 보냅니다. 협의할 여지는 전혀 없는, 수렴통지서에 불과한 협의서를 보내면서 저희보고 나가라고 계속 재촉하고 있습니다."1만2700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삼락둔치 25만 여 평에 대해 책정한 영농보상액이었다. 부산시가 3년에 걸쳐 매립할 당시 평당 조성원가는 7만 원이었다.
"정부가 그만한 돈을 투자를 할 때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한 투자를 해준 건데, 지금 와서는 이것저것 다 모르겠답니다. 그러니까 참 황당합니다." 김해근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민이, 특히 농민이 무슨 죄입니까? 지난 정부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가 하는 4대강 사업만 크다 하는 이 자체가 맞지 않아요. 전 정부가 했든 현 정부가 했든 국가사업은 똑같은 비중을 가지고 다뤄야 하는데 왜 전 정부가 한 거는 무시해버리고 이명박 정부가 하는 4대강만이 법이고 중요한지 저희들은 너무 억울하고 기가 찹니다. 지금 행정대집행이니 엄포를 계속 놓고 있는데 실제 잘못하고 불법을 했다면 지난번에 부산시와 국토관리청, 사상구청이 불법을 했지, 우리 농민들은 협의한 사항을 지켜 그대로 농사짓고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우리가 불법자입니까? '불법 경작 하니까 나가라', 웃기는 소리 아닙니까? 우리가 아무리 어리석고 힘없는 농민이지만 그대로 당하고 있기가 너무 억울해서 농성장을 만들어놓고 땅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잡풀 우거지고, 과수원이 마르고, 준설토에 파묻히고
컨테이너 벽에는 '농지는 농민의 근본이요, 생명줄이다'라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낙동강 상류의 기름진 하천부지가 4대강 사업 때문에 버려진 밭이 되어 잡풀이 우거지고, 과수원이 마르고, 준설토에 파묻힌 모습을 보면서 왔다.
우뚝우뚝 늘어선 모래산 아래 인적 없이 황폐해진 밭들에서 어떤 섬뜩함을 느꼈다. 막다른 선택에 다다랐다는 느낌이었다. 4대강 사업은 늙은 농부들이 생명을 다하면 농토를 환원하겠다고 한 그 짧은 세월의 약속조차 기다리지 못했다. 삼락둔치의 반듯반듯한 밭들 사이로 잡초가 길게 자라난 밭이 띄엄띄엄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농부가 죽은 뒤 환원되어 초지로 돌아간 밭이었다.
"이곳은 낙동강 하류 땅이라 그런지 작물이 잘 되고, 당근을 키우기엔 최적지입니다. 감자도 품질이 상당히 우수하고요.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유기농 쪽으로 할 수 있고, 당근도 이 지역의 특산품으로 개발해보자고 희망을 가졌는데, 힘 없는 백성이고 농민이라고 쫓아내겠다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죽는 길만 남았습니다. 우리 목을 우리가 조르고 있잖아요. 우리 땅을 팽개치고 수입해 먹고 하는데 오래 못 갑니다. 이런 천혜조건을 갖춘 땅에서 농민들이 먹을거리를 열심히 생산하고 시민들에게 공급하고 지킬 수 있는 나라 정서가 되어야지 4대강 막무가내로 밀어서 뭐하겠다는 겁니까?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단기간에 자연을 거스르는 대사업을 하고, 학계나 전문가의 우려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하는 행정부가 땅을 치고 잘못했노라 하고 통곡을 할 날이 오지 않나 저는 생각합니다." 그가 말을 멈추고 우리에게 물었다. "오면서 무얼 봤습니까?" 낙동강 상류에서부터 아래까지 세워지는 보들을 보았다고 하자 "그래, 어떻습디까?"하고 소감을 물어왔다. 대답하기 어색한지 잠잠한 가운데 한 시인이 "안타까웠어요"하고 답했다.
"옛날 이조시대 그분보다 힘이 훨씬 셉니다"상주보 공사현장에서, 우리는 반 년 전만 해도 구불구불한 물길과 습지가 살아 있던 자리가 모조리 사라지고 거대한 준설토와 보가 들어선 것을 보았다. 기억은 공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단층을 일으켰다.
"저 강물에 수초가 있어도요, 흐르지 않으면 썩습니다. 안 흐르면 썩게 돼 있어요. 갑자기 보 한다 이렇게 이상하게 합니다. 임기 2~3년 만에 우당탕탕 벼락치기해서 뭐 하자는 겁니까? 저수지 막은 데 보세요. 위를 막으면 밑에 도랑도 썩고 없는 거예요. 위에서 가두면 바로 밑부터 옛날 낙동강물이 아니에요. 이 정부가 바라는 운하 같은 사업보다 맑은 물 살리기 정책을 종합적으로 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민이 먹는 낙동강 물도 바로 올라가면 농공단지 천지인데, 정화되어 강에 오지 않습니다. 금호강 염색단지 물은 염산하고 색소 그대로 낙동강으로 오는데 그건 그대로 방치해놓고 말이죠. 시골도 소 축사 같은 데 적당한 오수처리장 지원해주고 플라스틱 농약병 강으로 들어가는 걸 국민 홍보하고, 관리 인원 배치해서 오염물질을 강으로 안 보내도록 해야지, 동네 하수구 밑은 코가 따가울 지경인데……. 휴우. 대한민국 국민은 만날 투표하고 나서 손가락 자른다는 소리만 하고, 정부 사업 할 때는 멋도 모르고 무관심하게 있다가 나중에 결론이 나면 그때는 박사들 천지입니다. 조금 그늘에 있을 때는 죽을까 싶어 딱 웅크리고 있다가 세상이 조금 뒤집어지고 자기가 말할 면목이 설 때는 똑똑한 척하고, 어려울 때는 바른말 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 나라 정부는 어떻게 이명박 외에는 전부 다 모른답니다. 옛날 이조시대 그분보다 힘이 훨씬 셉니다. 이게 민주주의도 아니고 이상한 쪽으로 가는데 우리 농민들이 볼 때는 기가 차죠." 김해근씨의 마지막으로 한 마디 했다.
"보만 막고 건설부분에 돈이 들어간다는 것은 국민이 많이 걱정을 해야 할 부분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해요."억울한 목소리와 울음소리가 지금 당신을 부른다
"공사예요, 공사."
같이 순례를 한 사진가는 자신이 다닌 현장의 경험 속에서 느낀 것을 한마디로 말했다.
"운하니 홍수예방이니 하는 정치적인 공방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지금 이 사업의 목적은 공사 자체예요. 법적 행정적으로 어떻게든 공사를 막고 지연시켜야 해요. 행동으로 막아야 해요. 토론할 때가 아니에요. 한쪽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멈추지 않고 공사를 하잖아요. 공사를 일단 그만 두게 해야 해요." 대구의 월배 성당에서 만난 한 신자에게 시민들이 강에 대해 무관심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강이 우리 옆에서 흐르지 않잖아요"라고 답했다. 지역신문도 미디어도 4대강 사업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지금 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와보지 않으면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강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들은 인위로 파헤치는 공사 현장을 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되묻기도 했다.
원래 강의 모습이 우리 마음에 남아 있지 않다. 강이 우리에게 어떤 것인지, 우리 삶을 어떻게 지탱해주었는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마치 재현된 남의 고통을 보는 것처럼, '잔인하게, 더 잔인하게 파괴된 모습으로' 자신을 설득해보라고 풍경에 요구하기도 한다.
그 무관심한 사각지대에서 쟁탈전이 일어났다. 강바닥을 파헤치는 것 자체가, 강폭을 찢어 벌려놓는 것 자체가 돈이 되었고, 강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층층이 보를 세우는 것이, 이제 더 강탈할 것 없는 국토에서 돈을 발겨낼 건설의 자원이 되었다.
오로지 파괴해야 돈이 되었으므로 건설사들은 강으로, 강으로 달려 나갔다. 밤낮없이 재촉해 포클레인으로 닥치는 대로 물고기들을 떠다 버리고, 흙탕물을 첨벙거리며 오래된 습지를 밀어버렸다. 붉고 푸른 깃발이 꽂힌 자리는 서울의 개발이 그랬듯 돈으로 맞바꿀 금싸라기 땅이 될 터이고, 보 속에 가둬진 물은 그네들의 주머니 속에 갇혀 흐르지 않게 될 것이다.
소리 내지 못하는 것은 이미 죽임을 당하거나 사라져버리고, 어리석고 힘이 없지만 당하기엔 너무 억울한 목소리와 울음소리가 남아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우리의 땅에서 죽고 싶다고 절박하게 항변하고 있다. 준설토를 가로질러 길 잃은 고라니가 발자국을 찍어놓았듯, 흘러내리는 모래 더미의 위태로운 경사에도 풀이 다시 자라듯, 사람들이 이 강가로 하나둘씩 발자국을 내며 끝없이 다가올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