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평소대로라면 대전 집에서 쿨쿨 잠에 빠져있어야 할 전, 새벽 4시를 넘겨 부산이라는 낯선 도시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새벽 기차를 타고 부산에 온 이유? 그저 바다 구경 한 번 해보고 싶어서였죠.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날 오후, 부산에 볼 일이 하나 있었는데 이왕 가는 김에 유명한 해운대나 한 번 구경해 볼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벼르던 해운대를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이었죠. 커플과 친구들로 넘쳐날 해운대에서 혼자 바다를 두리번거린다면 이상해보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꽉 찰 시간에 해변을 찾는 것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났고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을 아침녘의 바다라도 구경해보고 싶었습니다. 새벽차를 타고 부산에 왔던 것은 바로 이런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죠.
하지만 피서 기간의 열차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부산에 오는 동안 제 체력은 거의 초토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고생을 사서 한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죠. 지하철을 기다리는 광장에서 다른 피서 일행들은 까르르 웃고 떠들고 있는데, 한쪽에서 멍해진 채, 꾸벅꾸벅 조는 제 모습은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했습니다.
신기한 1일권과 시크한 부산 젊은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지하철 첫 차 시간이 됐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지하철 표를 끊으려는 순간, 제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지하철 '1일권'이었죠. 궁금한 마음에 설명을 읽었는데 신기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지하철을 하루 내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 때문이었죠.
'우와, 완전 신기하네. 이거 진짜야? 우리 동네에는 이런 거 없는데...'
제가 사는 곳에서는 이런 1일권이 없기에 신기하면서도 뭔가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혹 공연한 것에 낚이는 것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도 있었죠. 그래서 옆을 지나가는 친절해 보이는 부산 사나이한테 물었습니다. 뭔가 친절한 답변을 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말이죠. 그런데,
"1일권? 저는 써본 적이 없어요. 딴 사람한테 물어봐요."
하고 휙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요. 미련을 남기지 않고 돌아서는 저 강렬한 인상이라니, 이래서 부산 남자가 '성격이 세다'고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친절해 보이는 아가씨를 찾아 물었습니다.
"저기요. 죄송한데, 1일권이란 게 뭐죠?"
"1일권이요? 잘은 모르는데, 1일 동안 쓰는거 아니겠어요?"
부산 아가씨의 너무나 간단명료한 답변에 한동안 멍해졌지만, 결국 '1일권이 1일권이겠지!' 결론에 도달하고, 그제야 해운대 역을 찾아 출발했습니다. 아무튼 부산에서 '신기한 1일권'과 '시크한 부산 젊은이'는 제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해운대의 아침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몇번의 실수와 어리버리 끝에 도착한 해운대 지하철 역. 지하철 근처에 위치한 해운대 기차역은 한옥을 본따 만든 듯한 특이한 모양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뭔가 '이곳은 피서지다' 느낌을 팍팍 풍기고 있었죠.
그런데 이른 아침이라서일까요? 사람들은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조깅을 하는 외국인과 아침 영업을 준비하는 해운대 주민들만 간간히 보일 뿐,
'사람도 안 보이고, 대체 바다는 어디에 있는 거야? 소금 냄새 따라가 볼까?'
바다를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해운대 역에서 소금 냄새를 따라 쭉 걷다보니 드디어 눈 앞에 푸른빛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저는 눈 앞의 광경에 감동해 "우와 바다다!"라는 감탄사를 내질렀죠.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해운대의 아침은, 새벽에 부산에 온 피곤함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멋지고 황홀했습니다.
이른 아침의 해운대는 바다 바로 위에 깔린 하얀 구름과 은은한 안개로 환상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일렬로 세워지는 파라솔은 무슨 예술작품 마냥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빨간 파라솔 뒤로 펼쳐진 바다는 마치 한폭의 수채화 같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제가 그동안 TV에서 봐왔던 해운대의 이미지는 인파로 북적거리고, 밤에는 광란의 분위기가 펼쳐지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부산에 오기 전에는 해변이 술에 쩌들거나, 쓰레기 뭉치가 가득 메인 모습이면 하는 우려도 있었죠.
하지만 아침에 바라본 해운대의 모습은 제 걱정과는 180도 달랐습니다. 이른 아침의 해운대는 너무나 평온해 보였죠. 해운대의 아침에는 취객이라든지, 광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용히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뿐이었죠.
불야성을 이루며 밀집했던, 피서 인파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해운대 해수욕장과 관계된 사람들은 파라솔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고, 청소원은 해변을 비롯한 거리를 깨끗이 쓸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굵은 땀방울 덕분에 피서객들이 편하게 피서를 즐긴다는 사실에 괜히 고마워집니다.
아침의 해운대에서, 바다에 뛰어드는 이도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침의 바다 풍경을 조용히 즐기고 감상하려는 이들이 있었죠. 친구끼리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듯, 해변을 천천히 걷는 이들과 해운대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저기, 사진 좀 찍어주세요!"
"네네! 포즈 취하세요"
해운대 이곳 저곳을 사진 촬영 하고 있던 제게, 해운대를 찾은 한 젊은이들이 촬영 부탁을 합니다.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온 해운대에서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한 것 같아서요. 갑작스런 저의 해운대 기행은 '아침 해변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등'의 소소한 일과 함께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죠.
문득 궁금증이 듭니다. 수십만의 인파가 찾았다는 해운대에서 이처럼 아침 풍경을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술에 취하거나, 잠에 빠지지 않고 이 풍경을 본 사람들은 행복할 것 같습니다. 부산스럽지 않은 해운대의 아침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