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천안함 사태로 인하여 동북아시아 정세가 위태롭다. 한국전쟁이 휴전 상태로 아직 종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항상 전쟁을 걱정하며 살고 있다. 전쟁의 시기가 오래되면 사람들은 전쟁 불감증이 걸리는 것일까? 천안함 사태 때 일부에서 전쟁 불사론이 쉽게 나왔던 것이 안타깝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동북아시아의 평화 모색을 위해 류큐, 오키나와 기행을 기획하였다. 전국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중등학교 교사, 교수, 통역, 재단관계자 등 33명으로 이루어진 4박5일의 역사기행이다.
지난 7월 21일부터 25일까지 4박 5일의 일정으로 방문한 오키나와현. 오키나와현은 류큐열도로 이루어진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키나와 본도는 면적이 1188제곱킬로미터, 본도 북부는 숲이 우거진 구릉지대이지만, 중부와 남부는 평탄하고 수림이 적다. 인구는 주로 이곳에 모여 있다. 인구는 약 122만 명이다.
기후는 아열대 해양성 기후이다. 우리가 방문한 기간 내내 강한 햇살이 비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곤 하였다. 우산이나 비옷을 늘 지참하여야만 답사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오키나와는 이름난 관광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혼여행이나 골프 관광으로, 일본 본토에서는 수학여행단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한 오키나와의 유적들은 전쟁의 상처를 보듬고, 다시는 전쟁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평화의지로 가득한 곳이었다.
슈리는 1879년 소위 류큐 처분으로 일본의 한 개 현이 될 때까지 500년 가까이 류큐 왕국의 수도로 번영한 도시였다. 오키나와전 당시 일본군이 슈리성 아래 제32군 사령부 동굴을 만들어 미군의 공격을 받아 전소되었으나, 현재는 사진과 같이 복원되었다.
슈리성 바로 앞에는 오키나와 전 당시 일본군 사령부의 동굴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물론 미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상태지만.
우리 일행을 안내한 해설자는 말한다. 만약 일본 천황의 황궁이나 동대사 앞이라면 감히 군사령부를 설치했을까?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본토를 수비할 시간을 벌기 위하여 자신들이 희생당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일본군이 군사령부를 설치하였기 때문에 오키나와전 당시 미군의 집중 폭격을 받아 500년 유적이 전소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