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식물이 몸집을 키우는 계절이라면 뜨거운 여름은 무더위 속에서 자기의 분신을 키우는 계절이다.
더위를 먹어야 더 잘 자라는 수박과 참외, 사과, 옥수수, 뙤약볕에서도 자신의 색으로 피어나는 다알리아, 백일홍, 그리고 뜨거운 볕에서 시든 듯 서 있다가 저녁이 오면 화려한 꽃을 피우는 분꽃을 보면 생명에 대한 외경을 느낀다.
식물에게도 여름 한낮의 짧은 휴식은 있을 것이다. 밤에 지친 몸의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식물에게는 휴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자기의 분신을 보내야 할 제한된 자연의 시계에 맞추기 위해 의연하면서도 치열하게 제 몸을 태우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부부의 일터이면서 휴식의 공간인 숙지원을 우리는 거의 날마다 간다. 자연이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골의 녹색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스럽다. 거기에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날마다 커가는 수박,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와 토마토를 보면서 우리도 더위를 먹는다.
그리고 익어가는 것들을 보면서 다가오는 계절도 생각한다. 가을이 오면 이 세상 어딘가로 제 몸의 분신을 보낸 식물들은 잎을 떨구고 말 것이다. 더러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무도 그 시간을 막을 수도 거역할 수도 없을 것이다.
헤어짐은 아픔일 수 있다. 그러나 보내고 사라지는 식물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번쯤 더위 먹고 서있는 옥수수밭에 서보라. 남을 위한다고 거짓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소박한 이름의 분꽃 앞에 서보라. 다가오는 계절을 알고 있는 옥수수, 또 분꽃은 적어도 사람을 속이지 않을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가자. 더위를 느끼고 먹으러 가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내 인생의 시계를 보러 가자. 사는 데 허덕이다 보니 나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 법과 제도에 묶여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다고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더위를 먹으며 시골 길을 걸어볼 일이다. 가급적 고향의 길을 걸어본다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감각적인 피서라면 도시의 시원한 에어컨보다 나은 것이 없고, 육신의 배를 채우는 일이라면 유명한 보양식을 따를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 속의 피서, 고향에서 먹는 수박 한 덩이만큼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또 있으랴.
옥수수가 익어가는 시절, 고구마의 줄기는 흙을 덮을 기세로 뻗어간다. 토란잎은 하늘을 가리고, 밟히면 부서질 것 같은 채송화가 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여린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뜨거운 열기로 분신을 키워내는 식물을 본다. 모레쯤 노란 참외도 익을 것 같다. 더위를 먹는다는 것은 풍요로워지는 길 아닐까?
하기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날마다 열 받는 나라, 그래서 이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따로 더위 먹으러 가자고 한다면 오히려 화를 돋우는 소리이리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