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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으리께선 우리에게 그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도검(刀劍)과는 달리 중독사는 무얼 사용했는지가 관건이 된다 하셨는데 유씨 부인은 무엇에 중독됐습니까?"
'아차!'

그랬다. 중독된 주검이 있는데 살인 도구인 독물이 없었다. 비소류(砒素類) 계통의 독극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반이 나타나지만 사체는 전연 그런 기미가 없었다. 검시의 박종오 역시 흔치않은 일임을 강조했다.

"독을 사용해 목숨을 끊는다면 사대부가에선 무엇을 사용합니까. 잘 해야 비상 아닙니까. 즉시 절명할 수 있으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약재를 어느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독성은 달라지겠으나 그 역시 크거나 작게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유씨 부인은 고통 없이 절명했습니다. 도성 안에 그런 독물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데다, 죽음에 이르러 이렇듯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백 번 생각해도 의문입니다."

그 점은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유씨 부인이 자진할 목적으로 독물을 구한다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어떤 독물을 복용했기에 고통 한 점 없이 편안히 저승길을 떠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은 사건을 원점으로 되돌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유씨 부인이 누군가에게 독살 당했다면?'

이런 의문에도 해결의 실마리는 당연히 독극물의 존재였다. 특히 마음에 걸리는 건 '유서'였다. 필체도 맞고 내용도 죽음을 앞둔 여인네의 것이었으나 사대부가 여인의 가슴에 담긴 한의 결정체가 아니라 스무살 어림의 감정 기복이 심한 유언장이었다.

유씨 부인의 몸을 감초즙으로 닦아낸 서과는 초(醋)를 묻혀 다시 닦아냈지만 생각했던 만큼 소득을 찾지 못했는지 그녀는 입을 삐쭉거렸다.

"다른 상처는 흔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으로 생각되지만 죽은 자가 잠들기 전 무엇을 복용했느냐였다. 은비녀 감식엔 독물로 나타나지만 죽은 자의 얼굴엔 한 점 고통이 없는 그런 독물의 냄새가 있었다. 다시 현장을 찾은 정약용은 서집사를 불렀다.

"부인마저 세상을 떴으니 이 집 재산은 어찌 되는가. 한 점 피붙이를 남겨놓지 않았으니 나라에 귀속되는 게 아닌가. 다른 친척이 있는가?"

"글쎄요···. 서방님이 5대 독자로 알고 있거든요."
"먼 친척이 있을 게 아닌가."

서집사는 잠깐 생각하더니 부인의 거처로 안내했다. 문갑 위쪽에서 작은 열쇠 하나를 찾아내고는 말한다.
"마님께선 평소 저를 부르시어 이곳에서 열쇠를 꺼내 아래쪽 문갑과 반닫이를 열었습니다. 제가 열겠습니다."

서집사는 문갑 아래쪽을 열었다. 그곳엔 장신구 등의 잡다한 물건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모아두었던 패물 등속이었다. 다시 반닫이를 열었다. 그곳엔 토지문서와 집문서가 들어 있었다.

가계(家系)를 살필 수 있는 족보는 세 권 분량으로 한쪽에 놓여 있었다. 서집사 말처럼 김성겸은 5대 독자였다. 그의 윗대는 거의 빈칸을 이루었는데 아무래도 사화(士禍)로 인해 집안이 멸문의 위기까지 가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대대로 손이 귀한 집안. 그래서인지 김성겸의 항렬(行列)은 '학(鶴)'이었다. 어지간해선 항렬의 글자로 쓰이지 않는 게 '학'자였다. 그 아래 하나 뿐인 자식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성호(星浩)'였다.

항렬은 성(星)이고 이름은 윤(胤)이었다. 집안 대대로 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끝없이 빛을 내라는 의미일 것이다. 얼마나 손이 귀했으면 그런 글자를 항렬로 삼았을까 싶다가 정약용은 솟구치듯 일어나 문밖으로 향한 채 서과를 찾았다.

"서과야, 너는 지금 사헌부로 가서 독대(禿大)라는 자가 있는지 알아보거라."

그러나 사헌부엔 독대의 그림자는 없었다. 어디에 손을 썼는지 상당한 돈을 내놓고 병을 핑계 삼아 감옥을 빠져나간 뒤였다. 그를 빼간 사람은 방명록엔 부친(父親)이라 써있고 그 아래쪽에 간략하게 주소지가 적혀 있었다.

"사람을 보내 그의 부친과 독대의 행방을 수소문 하고, 서과는 관원으로 하여금 급히 해남을 다녀오게 하라. 최두호 선비가 살고 있는 곳을 찾아가 그분들이 어찌 지내는가를 살펴보라."

"유씨 부인은 종류 미상의 독물에 의해 살해당한 게 분명합니다. 유서가 있기는 하나 독물의 종류를 알 수 없는 데다, 사건이 일어난 날 그 집 담을 넘은 독대란 자가 지닌 상아 도장이 그걸 말하고 있습니다. 성호는 부인의 아들 이름입니다. 족보는 항렬로 표기하므로 도장을 그리 판 것 같습니다."

"확인해 보면 알 일 아닌가."
"영치했던 물건은 가지고 사라졌습니다."

"기찰포교에게 연락해 보이는 즉시 체포를 명하게. 허면, 자넨 어찌할텐가?"
"독충에 물려 죽었다는 김윤호의 검시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검험 기록을 살피면 무언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기록 보관실에서 찾아낸 김윤호의 검시기록은 지극히 일반적인 내용뿐이었다. 독충에 물려 죽었다고는 하나 어떤 종류인지를 밝히지 않았고 내용의 흐름으로 볼 때 주검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귀찮고 번거로운 사건을 서둘러 종결하고 싶은 심사가 검시기록에 엿보였다.

<···산악지대가 가까울수록 곳곳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종류를 알 수 없는 독충들이 야심한 밤 백성들을 해치는 이번 사건은 반드시 어떤 종류라고 논하기 전 주위를 정결케하지 못한 게 원인이 되고 있다. 관찰사인 나 배문호(裵文豪)는 일련의 사건을 볼 때 무엇보다 주변 환경의 정화에 힘을 기울여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신변잡기식의 검시기록을 작성했지만 관찰사가 무능해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조사를 했고 독물에 능하다는 사람을 불러 사람을 해친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규명하려고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관에 부딪치고 그것이 자신의 무능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 그런 검험 기록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기록을 되돌려놓고 사건을 다시 한 곳에 모아보았다. 정황으로 보아 유씨 부인이 독살 당했다면 이전에 일어난 두 사건 역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곤 볼 수 없었다. 또 김성겸과 사랑을 나눈 그 기생은 어디에서 지내며 만약 자식을 낳았다면 이름이 누구인지도 규명해야 할 일이었다.

한강변을 순회하던 기찰포교가 독대(禿大)와 그의 부친을 나포한 건 다음날이었다. 땔감을 실은 배에 몸을 싣고 강을 건너려던 것을 사헌부로 잡아왔다. 점심 때가 지난 시각이었지만 하늘은 잔뜩 흐린 채 금방이라도 빗발이 날릴 기세였다. 조사실에서 독대와 대좌한 정약용은 그의 소지품에서 특이한 물건을 찾아냈다. 생김은 가위 같았지만 끝이 예리한 물건이었다.

"이게 뭔가?"
"내 턱수염을 손질하는 물건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독대를 노려보며 한 마디 던졌다.
"난 그걸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이 물건의 쓰임새가 요긴한 데 있나 보구먼. 내가 알고 싶은 건 네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성호라는 이름의 상아 도장과 <율간초>라는 책은 어디서 구했느냐?"

"그거야 시중에서 ···."
"네 이놈! 아직도 꿈을 꾸느냐! <율간초>는 부녀자들의 서간집으로 시중에 알려지지 않은 서책이다. 그런 걸 네놈이 무슨 재간으로 구했단 말이냐? 네놈은 살인사건이 나던 그날 밤 그 집을 월장하지 않았느냐."

"···."
"훔치지 않고서야 성호란 이름의 상아 도장을 네놈이 지니고 있을 까닭이 없다! 네 놈이 아니라한들 그걸 믿을 사람이 없으니 바른 말 하지 못하겠느냐!"

조사실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묵묵히 듣고 있던 독대의 부친이 정약용 앞으로 걸어갔다.
"사실을 말씀드리면 제 자식을 살려주시겠습니까?"

정약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수긍했다.
"물론입니다. 자, 그쪽으로 앉으십시오. 이곳에서 새어나오는 소릴 들으셨다시피 아드님께선 모든 일을 부인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고 죽겠다는 몸짓입니다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요."
"사실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요."

노인은 선선히 입을 열었다. 자신은 해남 땅끝 마을 가까이에서 고기잡일 하는 개똥쇠라 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점순이란 처자와 혼인해 낳은 아들이 독대였다. 순조롭던 자신의 일생이 망가진 건 해남 고을을 휩쓴 전염병으로 당시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행월(行月)이란 기녀였다. 그녀에겐 예쁜 딸이 있었다.

"그 딸 이름이 상흽니까?"
정약용의 질문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난이(蘭伊)라 했습니다. 성정이 맑고 깨끗한데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길 좋아하는 아가씨였어요. 그런 아가씨가 기생질을 하던 어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달라졌다는 건 무얼 뜻합니까?"
"예전의 아가씨가 아니었어요. 아가씨는 독대만을 데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가르치더니 몇 해 후 한양으로 함께 올라갔습니다. 며칠 전 아가씨께서 급한 연락을 주셨기에 준비해 둔 돈을 풀어 아들을 방면시키고···, 강을 건너다 그만 ···."

노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연의 전부라고 털어놓았다. 독대를 구금시키고 서과가 건너오자 정약용은,
"노인장이 알고 있는 건 없어 보인다. 너는 이번 일을 어찌 생각하느냐?"

"그 난이라는 처녀를 찾은 연후에 독대를 다그치면 실마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포교들이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일단 독대를 다그치겠습니다."

"개똥쇠라는 독대의 아비 말일세. 일단 방면했네. 물론 기찰 포교로 하여금 뒤따르게 했네. 내 보기엔 아비 쪽에선 나올 것이 없어 보이네."

대략 한 시간 쯤 지나 사헌부 옥청이 발칵 뒤집혔다. 아무도 들고 난 적이 없는 곳에서 독대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손등엔 무엇에 물린 듯한 흔적이 두 군데나 나있는 걸 제외하곤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온몸을 샅샅이 훑으며 조사했지만 역시 상처는 손등 뿐 사인은 중독사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먼. 누군가 주술을 부려 독충을 밀어 넣었을 리 없고···."
정약용은 혀를 차며 입맛을 다셨다. 검시기록을 작성하며 상처 부위에 대해 의문이 든 것은 독대의 상흔이 김윤호의 주검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의 검시기록을 펼쳐 비교해 보니 그러한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독충이 물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 상흔은 특별한 기구에 의해 생긴 게 분명하다. 이곳으로 독충이 들어올 리 없잖은가.'

과연 독대의 몸에선 그러한 물건이 나타났다. 집게와 같은 그 도구는 독대가 자신의 수염을 다듬을 때 사용한다는 가위와 같은 모양이었다. 반대쪽을 잡고 작게 돌출된 부분을 누르자 날카로운 끝 부분에서 이슬과 같은 물방울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음식에 발라 고양이에게 먹이자 순식간에 사지를 버둥거리며 쭉 뻗어버렸다.

'이게 살인 도구였어.'

그런데 무슨 일로 독대는 이런 걸 가지고 있을까.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난이 아가씨의 사주를 받아 김성겸과 그의 아들을 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뭔가. 정약용의 어지러운 머릿속은 해남 출신의 신임 포교 박문도가 던진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

"저희 고향에서도 하루아침에 집안이 멸문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잘 기억할 수 없습니다만, 그 집 식구들이 독충에 물려 절명했지 뭡니까."
"자네 고향이 해남인가?"

"예에, 그때는 나라 안팎이 어수선했기에 그 같은 소란은 금방 잊혀졌습니다. 그런데도 그 집안 일은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찰포교에게 연락이 온 건 다음 날이었다. 독대의 부친 개똥쇠가 마포 나루에서 젊은 처자를 만났다는 것으로 나이는 스무 살 남짓인데 어디 먼 곳으로 떠날 준비라도 하는 듯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나타난 것으로 보면 모든 살인엔 독대가 관련돼 있다. 김성겸 집안의 살인 역시 행월이 모녀와 독대가 관련돼 있다. 유씨 부인은 무엇으로 살해했는가.'

정약용은 덕대가 남긴 <율간초>를 뒤적이다 책 속에서 몇 마리의 죽은 개미를 발견했다. 다른 페이지에 있는 개미들은 괜찮았는데 책장이 약간 붙은 듯한 부분엔 죽은 개미가 있었다. 그것을 들고 햇빛 비친 곳을 향해 가만가만 털어보았다.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하얀 형태가 드러나는 가루와 죽은 개미였다. 그제야 머리를 사정없이 두드리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이것이다!'
정약용이 나직이 탄성을 터트렸다. 보지 않았어도 모든 게 확연했다. 남편과 아들이 죽고 난 후 유씨 부인은 자신의 허탄한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이때 나타난 상희라는 아가씨가 한 권의 책을 건네주었다. 당시 여류 문인이나 세상에 알려진 부인네들이 쓴 서간(書簡)을 모은 책이었다.

'분명 그 책에 독물을 뿌리고 책을 읽게 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유씨 부인은 중독이 됐을 것이고···.'

오후 늦은 시각 사헌부로 끌려온 덕대의 부친 개똥쇠는 눈물을 훔치며 주섬주섬 입을 열었다.
"아가씨의 깊은 한은 지하에 묻힌들 잊겠습니까. 이젠 여한이 없습니다."

정약용은 오랜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사용한 독은 무엇입니까?"

"독버섯입니다. 독버섯을 가루내어 사용했지요."
정약용은 희미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산에 걸린 햇기운이 점점 스러지고 왈칵 어둠이 밀려와 있었다.

[주]
∎양택(陽宅) 풍수 ; 산 자를 위한 풍수
∎음택(陰宅) 풍수 ; 죽은 자를 위한 풍수


#추리, 명탐정,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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