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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태안성당 '사목계획서'를 만들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신부님께서 사목계획서 첫머리에 시 한 편을 올려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해 본당 사목지표와 어울릴 수 있는 시를 하나 지어보라는 말씀이었지요. 그래서 '버릇 들게 하소서'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전반의 종결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버릇 들게 하소서"라는 구절로 처리했고, 후반의 종결은 "미안합니다! 라는 말이 버릇 들게 하소서"라는 구절로 처리했지요.

 

그 시의 후반 부분을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더불어 산다는 것이

때로는 서로에게 짐이 되고

누가 되기도 하는 것은 세상 삶의 어려움

알게 모르게 남에게 죄짓는 일

미안스러운 일도 많기 마련

미안함을 느끼고 깨닫는 것은 지혜이며 사랑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 되고 미안한 일이 없나 살피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땐

진실과 용기로써 그 마음을 표현하게 하소서

미안합니다! 라는 말이 버릇 들게 하소서.

 

세상을 살다보면 남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미안함을 만들거나 키우지 않기 위해 신경 쓰고 애쓰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미안함을 감내해야 경우도 있지요.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유형의 미안함이 있지 싶습니다.

 

상금도 꽤 많은 지방의 이름난 상을 받은 적들이 있는데, '경합'의 과정을 거쳐 상을 받게 되니, 나 때문에 상을 받지 못한 분의 실망과 상심을 생각하면 수상의 기쁨 속에서도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내가 실패의 쓰라림을 잘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더욱 선명했던 건지도 모르지만….

 

요양병원의 노친 요양병원 100일째 되던 날의 노친 모습을 담았다. 지난 3월 10일의 모습이다. 하루 세 번 요양병원에 갈 적마다 노친의 등을 긁어 드리고 두드려 드리고,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리곤 했다. 노친은 폐암 말기와 임파선 암, 골반 전이로부터 완쾌되어 지난 7월 5일 퇴원하셨다.
요양병원의 노친요양병원 100일째 되던 날의 노친 모습을 담았다. 지난 3월 10일의 모습이다. 하루 세 번 요양병원에 갈 적마다 노친의 등을 긁어 드리고 두드려 드리고,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리곤 했다. 노친은 폐암 말기와 임파선 암, 골반 전이로부터 완쾌되어 지난 7월 5일 퇴원하셨다. ⓒ 지요하

최근에는 좀 더 특이한 유형의 미안함을 경험했습니다. 노친이 계신 요양병원을 매일같이 세 번도 가고 두 번도 가고 할 때 다른 노인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는 데서 오는 미안함이었습니다. 그 미안함 때문에 노친의 등을 두드려 드릴 때도 소리 나지 않게 가만가만 두드려야 했고, 때로는 다른 할머니들의 등도 두드려 드려야 했고, 식반도 날라드리곤 했지요.

 

그리고 7월초에 노친께서 퇴원을 할 때도 조심을 해야 했습니다. 노친도 나도 입을 봉한 채 아무에게도 미리 말하지 않고 있다가 살며시 퇴원을 했는데, 그것은 노친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부러워하는 눈들 앞에서 이보란 듯이 퇴원해서는 안 된다는, 미안한 마음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지요.

 

하지만 같은 병실에서 생활했던 할머니들께 갖는 특이한 미안함은 지금도 내 가슴에 측은지심처럼 남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 대전교구의 8일치  ‘대전주보’에 실린 글입니다.   


#미안한 마음#측은지심#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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