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새로운 휴대폰전화번호가 기재돼 있음에도, 재판부가 공소장에 기재된 연락이 닿지 않는 휴대전화로만 접촉을 시도하다 '공시송달' 후 피고인이 불출석 상태에서 선고한 재판은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공시송달은 대상자의 소재 파악이 안 돼 송달할 수 없는 소송서류를 일정기간 동안 법원 게시판에 게시하는 것으로 실제 송달한 것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는다.
경북 상주시에서 모텔을 운영하던 배OO(54,여)씨는 2006년 7월 돈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A씨에게 "여관수리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니 돈을 빌려주면 여관을 운영해 갚겠다"고 속여 8000만 원을 받았다.
배씨는 두 달 뒤에는 딸의 결혼식 비용을 핑계로 2700만 원을 빌리는 등 총 3회에 걸쳐 1억 17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공소장에 기재된 배씨의 주소지로 공소장 부본과 소환장을 발송했으나 배씨는 그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 이에 재판부는 공소장에 기재된 배씨의 휴대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에 재판부는 검사에게 주소보정명령, 배씨의 주소지 관할 경찰서장에게 배씨에 대한 소재탐지촉탁, 구금영장 발부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역시 배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지난해 7월 배씨에 대한 공소장 부본 등의 서류를 '공시송달'한 후 배씨가 불출석한 상태에서 공판절차를 진행해 배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공소장과는 별도로 검찰이 2008년 7월 제1회 공판기일에서 제출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배씨의 또다른 휴대전화번호와 사위의 전화번호가 함께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들 전화번호로 연락을 시도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렸다.
이후 검찰은 "배씨 범행의 죄질이 좋지 않고, 재판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점 등에 비춰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과 마찬가지로 배씨에 대한 소재 파악과 연락에 실패했음에도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공시송달을 통해 불출석 상태로 재판을 마친 뒤 지난 1월 항소를 기각했다.
결국 대법원이 이를 바로 잡았다. 대법원 제2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뒤 공소사실을 통보받지 못해 재판에 출석하지 못한 배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형사소송법 제63조 제1항에 의하면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에 대한 공시송달은 피고인의 주거, 사무소, 현재지를 알 수 없는 때에 한하여 할 수 있다"며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검찰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번호와 사위의 휴대전화번호를 진술하고 있으므로 원심은 공시송달 결정에 앞서 피고인이 진술한 각 휴대전화번호로 연락해 보는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피고인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단정해 곧바로 공시송달을 한 뒤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한 원심의 조치는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