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을 보냐고 누가 묻기에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했더니 흐흐, 역시 그런 책만 보는군 하는 눈빛으로 실실 웃는다. '정이란 무엇인가'라고 잘못 알아들은 거다. 내가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이라든가 야마모토 다이스케의 <바람피우고 싶은 뇌> 같은' 야시시한 책들을 즐겨 보니까 '정의란 무엇인가'가 '정이란 무엇인가'로 들렸던 거다. 사랑, 정, 섹스에 관련한 책? 사람이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되지.
내가 이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한강문고에 깔리자마자 산 까닭은 두 가지였다. 먼저 표지가 멋있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에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카피, 드넓은 강당,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서 강연을 하는 글쓴이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나도 가끔 글쓰기 강연을 하러 다니는데 이렇게 멋있는 내용으로 멋지게 강연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착각도 유분수지.
인부 5명을 죽일 것인가, 1명을 죽일 것인가그리고 두 번째, 책을 들어 내용을 살펴봤는데 바로 이런 사례가 나왔다. 내가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달리고 있는 전차 운전사라고 가정했을 때 바로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들이받으면 인부들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 절박한 심정이 된다.
그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에서 인부 한 사람이 일하고 있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돌려!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할 것이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목숨을 구하는 거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전차 운전사가 아니라 밖에서 보던 구경꾼이라고 가정을 한다. 아까 같은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 받기 직전에 철로길에 있던 다른 덩치 큰 사람을 철로로 밀어 그 전차에 치어 죽게 하면 그 한 사람은 죽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내가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까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아서 안 된다는 것을 가정한다). 그런데 이 사례는 첫 번째 사례와 달리 다섯 목숨을 구하면서 한 사람을 죽이는 건 아주 몹쓸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이 다섯 사람을 구하면서 똑같이 한 사람이 죽는데, 왜 첫 번째에서는 옳다고 생각하던 그 행동이 두 번째 사례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까. 이 사례를 보는 순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책 표지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사례. 그 두 가지 때문에 망설임 없이 1만 5천 원이라는 책값을 냈다. 아마도 책 중간에 있는 '자유주의에서 공리주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존 롤스까지'라는 문구를 봤더라면 좀 더 생각해 봤을 것이다.
미덕을 법으로 규정하는 게 과연 옳은가책을 읽는데 역시 처음엔 재미있다. 책에 나온 사례를 하나만 더 보자. 2004년 여름 허리케인 찰리가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 장사꾼들은 평소 2달러에 팔던 얼음 주머니를 10달러에 팔고, 지붕 위에 쓰러진 나무 두 그루를 치우는 데 무려 2만 3000달러를 요구하고, 허리케인을 피해 묵은 호텔에서 하루 방값으로 160달러를 내게 만들어 폭리를 취한다. 마이클 샌델은 이 장사꾼들의 행태가 옳은지 묻고 "주정부는 가격폭리를 금지해야 하는가?"하고 묻는다. 책을 읽으면서 그게 당연한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마이클 샌델은 쉽게 답을 말하지 않는다. 가격폭리처벌법에 관한 논쟁을 보여 주면서 도덕과 법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 마이클 샌델은 가격폭리처벌법을 둘러싼 논쟁은 단지 행복과 자유에 관한 논쟁에 그치지 않고 미덕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 미덕이고 무엇이 악덕인지 누가 판단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글을 읽으면서 그걸 왜 모르지? 하는 생각을 할라치면 저자는 다원화 사회의 시민은 그런 판단에 반대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어, 그런가? 당연한 듯한 내용에 대꾸를 해 보지만 저자의 반문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저자는 또 "미덕에 대한 판단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던가?"하고 못을 박는다. 맞아. 그런 걸 법으로 규정하면 안 되지. 마치 마이클 샌델이 내 앞에 앉아서 대답하고, 또 질문하는 듯하다.
저자는,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또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하는데 그것을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물어본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은 미덕에 관한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가? 하고 묻고 이 질문이 고대 정치사상과 근대 정치사상을 가른다고 했다. 뒤이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나오고, 18세기의 이마누엘 칸트, 20세기의 존 롤스가 주장하는 우리 권리를 규정하는 정의의 원칙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존 롤스 같은 철학자 이름이 나오면서 어쩐지 점점 어려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시체를 먹고 살아남은 사람들, 과연 정당한가역시 읽어갈수록 쉬운 책은 아니었다. 단순히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 책이 아니라 정치 철학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강의를 열 번 한 것을 묶은 책인데 우리나라 대학처럼 주입식 강의가 아니고 수강생들한테 나오는 질문에 저자가 답변을 하는 방식이다. 강의마다 사례가 있다.
'최대 다수의 최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공리주의를 비판할 때는, 남태평양에서 네 사람이 표류하던 배에서 병든 한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먹고 살아남는 선원들의 사례를 들면서 한 사람을 죽여 세 사람이 살아남는 게 과연 정당한가 하고 묻는다. 자유지상주의를 비판할 때는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수입에서 세금을 떼 가난한 사람을 도우는 것이 정당한가, 또 합의해서 사람을 먹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고 묻는다. 누구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한다. 실제로 일어났고, 일어날 만한 사례를 들면서 쓴 책이 아니라면 이 책은 논문 같아 읽어볼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조금 걸리는 곳이 있었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기를 행복이란 개념은 대개는 부유한 삶과 같다. 또 풍요로움은 행복에 기여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 많고 풍요롭고 부유하다고 해서 삶이 꼭 행복할까. 이것은 자본주의에서나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마이클 샌델은 인간 공동체를 유지할 방도를 찾는 지식인이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던 지식인이기에 한계가 있는 듯이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마이클 샌델 교수 생각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빙빙 에둘러 여러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늘어놓는다. 도대체 저자의 결론은 무엇일까? 결론은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고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또 시장 친화적 사고가 전통적인 삶의 영역까지 파고든다고 주장한다. 빈부 격차가 지나치면 민주 시민에게 있어야 할 연대 의식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깊어질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은 점점 더 괴리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문화 사회의 미국 시민들은 도덕과 종교에 이견이 많아 정부가 중립을 지키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정치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반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동료 시민의 삶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책 읽었을까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을 이명박 대통령이 휴가 때 읽으려고 e북에 챙겼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보도 이후 '이 책은 한글판 전자책이 출시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영어 원서 전자책을 읽는 것인가' 등등의 논란이 일었다. 결국 청와대는 참모진이 추천 도서 목록에 올렸을 뿐, 대통령이 직접 이 책을 읽었는지 여부는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이 책을 읽었을까? 읽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음 그래, 맞아 불평등이 깊어질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은 더 괴리되지. 그래, 같이 살아야 돼, 하고 생각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이명박은 우리 서민들을 잘살게 하려는 마음에서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주었지. 기업이 잘돼야 서민들도 잘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니까. 또 시민들이 연대의식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에도 공감할 거야. 못사는 서민들은 못사는 서민들끼리 살아야 하는 걸 연대의식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니까.
오랜만에 어려운 책을 끝까지 읽었다. 역시 나는 이런 책보다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이나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들려주는 성의 비밀'이라고 부제가 붙은 <섹스의 비밀> 같은 책이 쉽고 재미가 있어 더 좋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이런 책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공리주의, 가언명령, 정언명령, 여러 가지 어려운 심리학, 철학 용어가 들어 있어 머리가 아팠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뭔가 배운 듯 뿌듯했다. 세상을 더 알려면 철학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철학을 웬만큼 아는 이도 이 책에서 하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대답해 보라. "탈세로 걸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도 세금을 내겠습니까?" "나쁜 부모에게는 잘하지 않아도 될까요?" "내 아이 목숨이 달렸다면 약을 훔쳐도 될까요?" 무슨 대답이 나올까. 그리고 마이클 샌델은 또 다시 어떤 질문을 던질까.
이 책을 읽고 난 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생각하게 된다. 오로지 시장을 숭배하고, 재벌한테만 퍼주는 정권 때문에 서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는데, 우리 서민들은 연대 의식이 없다. 콜트콜텍 해고자들,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해고자들 같은 노동자들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넘게 회사로 돌아가려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 이들을 외면한 채 오로지 자기 자식만을 '좋은' 대학에 보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만을 바란다. 그럴수록 이 자본주의는 점점 단단해진다는 것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