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총 천 편의 사행시를 썼다. 그 사행시는 미래를 예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 편이 일 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노스트라다무스는 16세기 이후의 천 년, 적어도 26세기까지의 미래를 내다본 셈이다. 26세기의 지구가 어떤 모습일지 지금도 예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16세기에 이런 예언시를 썼다면 그 내용이 맞건 틀리건 노스트라다무스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이 사행시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942편이다. 나머지 58편이 어디에 있는지 거기 어떤 내용의 예언이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스트라다무스는 그 58편의 시를 의도적으로 감추었을까.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서에 어느 정도의 실마리가 있다. 그는 자신의 큰 딸에게 유산과 함께 두 개의 호두나무 상자를 물려 주었다.
그러면서 '그녀 외에 그 누구도 해당상자의 내용물을 의도적으로든 우발적으로든 보아서는 안된다'라는 조항을 달았다고 한다. 당시에 이 유서의 내용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 상자 안에 뭐가 들었을지 엄청나게 궁금했을 것이다.
천 편의 사행시로 미래를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영국의 작가 마리오 리딩은 오랫동안 노스트라다무스를 연구해 왔다. 그의 2009년 작품 <예언>은 바로 노스트라다무스의 숨겨진 58편의 예언시를 소재로 한다. 작품의 배경은 현대의 프랑스. 어느날 신문에 '노스트라다무스의 사라진 예언시를 판다'라는 내용의 광고가 실린다.
그 광고를 보고 미국의 작가 애덤 사비르가 판매자에게 연락한다. 사비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사생활>이라는 괴상한 베스트셀러를 썼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이후에 노스트라다무스와 연관된 적절한 후속작을 펴내지 못하면 돈줄도 끊기도 독자들도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사비르에게 이 광고는 신의 계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동시에 외인부대 출신의 에이커 베일도 이 광고에 관심을 갖는다. 애덤 사비르가 개인적인 욕심으로 예언시를 원하는 반면에, 베일은 뭔가 숭고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결국 광고를 냈던 집시 바벨은 베일의 눈앞에서 숨을 거두고, 경찰은 애덤 사비르를 살인용의자로 지목해서 공개수사에 들어간다.
궁지에 몰린 사비르는 바벨이 살던 집시촌을 찾아간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가 집시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 지는 모른다. 다만 16세기의 프랑스에도 집시들은 많이 살고 있었을 테고, 노스트라다무스 또는 그의 딸이 집시들과 가까이 지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유서에서 언급된 그 호두나무 상자가 어찌어찌해서 집시들에게 흘러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비르는 집시촌에서 알게된 두 명의 집시와 함께 사라진 예언시를 찾는다. 암호를 해독하고 집시들의 축제에 참가하며 성당의 지하실에 몰래 잠입하기도 한다. 에이커 베일과 프랑스 경찰은 각각 사비르 일행을 뒤쫓는다. 경찰보다는 베일이 더 위험하다. 베일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불사하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인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을 넘나드는 모험과 추적이 시작된 것이다.
숨겨진 예언시에는 어떤 미래가 담겨있을까누구나 한번쯤은 '미래를 알 수 있다면...'하는 상상을 해본다. 거창하고 거시적인 미래가 아니라, 하다못해 이번주 로또 당첨번호만 알게 되더라도 자신의 인생은 많이 바뀔 수 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하지만 미래를 아는 것과 그것을 남들에게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신의 예언이 계속 빗나간다면 미치광이나 얼빠진 사람으로 취급 받을 테고, 예언이 백발백중 적중한다면 호기심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 어렵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이래저래 골치아픈 일이다.
어쩌면 노스트라다무스도 같은 입장이었을지 모른다. 봉인된 58편의 시에는 도저히 공개할 수 없을 만큼 상식적이지 못한 내용, 혹은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미래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집시들에게 그 예언시를 맡겼더라도 납득이 된다. 16세기의 집시들은 대부분 읽고 쓰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시는 읽더라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프리카의 사막은 유리로 녹을 것이며', 이런 표현이 주를 이룬다. 지나간 과거라면 몰라도 저런 문장만을 보고 몇 세기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파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25세기에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지금 알아서 뭐할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이 꼭 좋은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예언> 마리오 리딩 지음 / 김지현 옮김. 비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