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아홉시 반에 남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실례되는 일입니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열대야의 밤이라면 더 피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집을 찾아가자고 했습니다. 낮에 몇 번 찾아갔었지만 집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늦은 밤에라도 방문해서 만나고자 하는 무례를 범한 것입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한 반 년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래 방치되어 동네에선 흉물로 이름 높은 폐가를 구입해서 아름다운 새집으로 단장한 것부터 관심을 끌게 했습니다. 육중한 담장을 허물고 낮은 나무 울타리를 세우고 집은 넓은 투명 창유리로 삼면을 장식했으며, 새로 건축하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을 법하게 친환경적으로 집을 단장했습니다. 거기에다 요소요소에 올망졸망 심은 화초들이 집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습니다.
김천 중심지에 집을 두고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3년 뒤면 퇴직을 하게 되는데, 소일거리를 찾다보니 이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집을 하나 사서 전원주택으로 단장하고, 딸린 밭에 포도와 채소 등을 가꿀 꿈에 젖어 있었습니다. 정년이 점점 일찍 다가오는 시대를 살면서 이렇게 노후를 준비하는 모습은 삶을 여유롭게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 해 좋습니다. 그것도 자연을 벗하며 여생을 보낼 마음을 갖는 것은 건강한 노후를 계획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만으로 이 집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가정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인연을 맺어 준 것은 '개들'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은 농촌 마을에서 개는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낮선 손님이 오면 '왕왕 짖음'으로 알려주고, 반가운 손님은 '허스키한 울음'으로 환영을 표합니다. 가끔 집의 분위기가 썰렁할 때는 꼬리를 흔들며 온갖 몸짓으로 애교를 부리면서 분위기를 바꿔주기도 합니다. 우리 집 개는 '진돗개'로 이름을 '새벽이'라고 아이들이 지었습니다.
한 석 달 전쯤 되었을 것입니다. 주인을 잘 섬겨서 사랑 받던 우리 집 새벽이가 특이한 행동을 합니다. 처음엔 몰랐지만 새끼를 갖고 싶은 시기가 되면 이렇게 이상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 번째 새끼를 가졌을 때는 묶어 놓아도 쇠줄까지 끊고 나갔다 들어오곤 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하룻밤을 다른 곳에서 지내고 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낳았습니다. 가진 것도 몰랐는데, 갑자기 새끼 일곱을 낳아 젖을 먹이며 정성껏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출산입니다. 오늘 새로 이사 온 집을 방문하게 된 것도 새벽이의 출산과 관계됩니다. 그 집 진돗개 수컷이 새벽이가 낳은 아홉 마리 새끼의 아빠거든요. 감사의 표시로 한 마리를 선물할 생각으로 그 집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모르고 있었는데, 새끼를 갖게 해준 수컷의 주인에게 한 마리 주는 것이 관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늦은 시간임에도 바깥 분은 농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대신 아주머니가 반가이 맞아주었습니다. 우리는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함의 표시로 좋은 것으로 강아지를 한 마리 선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아주머니도 개에 대해 할 말이 많았습니다. 하얀 백구로 족보 있는 진돗개 수컷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합니다. 급기야 좋은 강아지를 받고 싶은 마음에 풍산개 암컷을 그의 짝으로 들여놓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둘은 금슬 좋게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풍산개 암컷을 제쳐두고 바람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 바람의 상내가 우리 집 '새벽이'인 셈입니다. 그 집과 우리 집은 직선거리로 따져도 500m는 족히 될 것입니다. 어떤 경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암컷의 발정기를 알 수 있는지,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고 와서 그 개는 주인의 눈치를 슬슬 보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짝으로 정해준 풍산개가 아닌 다른 개와 짝을 맞춘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했습니다. 주인이 한 마디 해 주었답니다.
"너는 집에 색시를 두고 남의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왔지! 그게 되기나 하는 말이니! 앞으로 너그 색시 얼굴 어떻게 볼 거야!"동물도 사람과 비슷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바람을 피우고 돌아온 진돗개는 그날 이후 주인의 눈치를 몹시 보았을 뿐 아니라 짝으로 맺어준 풍산개 앞에서도 자세를 낮추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렇게 좋던 식성도 먹이에 별 욕심을 내지 않고 낯선 사람들을 보면 날카로운 소리로 젖어대던 것이 풍산개 암컷의 뒤를 이어 체면치레의 소리만 내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집 새벽이와 바람을 피운 수컷 진돗개의 알토란 같은 새끼들이 아홉 마리나 태어났습니다. 하얀 새끼들을 정성껏 키운 새벽이의 모성애는 대단했습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아홉 마리의 새끼가 매달려 젖을 빨 때에도 거절하지 않고 먹였습니다. 자식 사랑의 윤리가 점점 식어져 가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동물의 새끼 사랑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막 태어났을 때에는 아홉 마리의 진돗개 새끼들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고 어미 품을 떠날 때가 된 지금, 그들은 교회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휴대폰 카메라로 강아지들의 모습을 찍기에 바쁩니다. 이 진돗개 새끼들은 곧 분양될 것입니다. 갈 집들이 대충 정해져 있습니다. 주일학교 재홍이도 집에서 잘 키우겠다고 한 마리 달라고 했고, 앞 집 수민이 아빠도 튼튼한 놈으로 한 마리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멀리 옥천에서 목회하는 전도사님도 또 안산에 사시는 장로님도 한 마리씩을 주문해 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컷 진돗개의 주인에게도 준수한 암놈 한 마리가 전달될 것입니다.
강아지는 사람을 잘 따르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를 기르다 보니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들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가정과 가정이 가까워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농촌 생활을 위해서 우리 마을로 이사 온 가정과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사랑과 인정이 점점 메말라간다고 하는 이때, 한 진돗개의 외도로 태어난 새끼들로 인해 차원 높은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미물인 동물 진돗개에게서 '관계 형성'에 대한 새로운 교훈을 얻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