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을 둘러싼 '표적감찰-사퇴압박'을 이현동 현 국세청장 내정자가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온 데 이어 백용호 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개입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단독으로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당시 임성균 국세청 감사관(현 광주지방국세청장)은 안 전 국장에게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은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백 내정자도 안 전 국장의 사퇴압박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임 전 감사관은 지난해 민주당에서 공개한 일부 녹취록을 통해 "안 국장에 대해서는 청와대를 포함해서 우리 정부 전체에서 어느 정도 판단이 이루어진 것"이라며 안 전 국장에게 자진사퇴를 종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국세청 감찰라인의 증언들을 종합할 때 안 전 국장의 표적감찰과 사퇴압박은 백용호 내정자 등 이현동 차장의 '윗선'에서 기획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 등 야당에서 '권력층 개입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 이유다.
이런 의혹과 관련, 백용호 정책실장측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임 전 감사관측은 "이미 지난 일이라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백 실장측은 김영기 국세청 운영지원과장을 통해 <오마이뉴스>에 해명했다. 김 과장은 12일 저녁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백용호 청장(내정자)이 그렇게 지시했을 리 없고, 삼화왕관 자리 제안도 임성균 감사관이 사건(안원구 사퇴 건)을 해결하려는 욕심에서 개인적으로 낸 아이디어"라고 해명했다.
김 과장은 "안 국장의 사퇴 문제를 감사관실에서 얘기한 것은 사실"이라며 "지방청장을 지내고 차장직에 도전했다가 안 되면 물러나는 게 국세청의 오랜 관행이자 전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 국장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학동마을' 그림건에 연루돼 사퇴를 권유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 과장은 "(당시) 서울청장이던 이현동 내정자가 안 국장의 감찰을 지시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서울청장은 본청 감찰을 지휘할 수 있는 라인에 있지 않다"고 '이현동 지시 의혹'을 일축했다.
또한 임성균 전 감사관측은 "이미 지난 일이어서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며 "녹취록의 진위여부와 관련해서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백용호 내정자가 안 국장과 관련된 사실을 많이 알고 있더라"<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지난해 7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안 전 국장과 임 전 감사관이 나눈 대화가 기록돼 있다. 당시 안 전 국장은 국세청으로부터 표적감찰 및 사퇴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임성균 당시 감사관은 "지금 (안 국장에게) 하는 조치(사퇴압박 등)는 위에서 하는 것"이라며 "(안 전 국장의 사퇴와 관련해) 세 분의 생각이 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세 분'이란 당시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와 허병익 국세청 차장(국세청장 대행), 이현동 서울국세청장을 가리킨다. 당시 국세청은 6개월간의 '허병익 대행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외부인사인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신임 국세청장으로 내정된 상태였다.
녹취록에 따르면, 임 전 감사관은 "제가 (백용호 내정자에게) 감사 현안문제를 보고드렸더니 안 국장에 대해서 물어봐서 저희 감찰에서 작성한 데이터를 간략하게 보고했더니 '좀더 정확하게 하라'고 지시했다"며 "국세청장에 내정된 지 2~3일밖에 안 됐는데 안 국장과 관련된 사실을 많이 아시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어 임 전 감사관은 "그 이후에 안(동범) 감찰과장한테 (안 국장을)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지시를 하신 것 같다"며 "(안 전 국장의 사퇴압박도) 이현동 서울국세청장의 뜻이라기보다는 (백용호) 내정자의 지시를 받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안국장에게 말했다. 다음은 녹취록의 한 대목이다.
임성균 감사관 "대부분 미운털이 박혀서 나가는 것보다는 임명권자들이 보기에 어떤 기준이 있겠지요."
안원구 국장 "그러면 백 내정자가 저를 구체적으로 지목을 했습니까? 지시를 받으셨어요? 분명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백 내정자의 지시...."
임성균 감사관 "아마 (백 내정자) 뜻이 그러신 것 같아요."
안원구 국장 "'같다'고 하면 안 되죠. 백 내정자의 지시가 있었는지 책임있는 답변을 해주셔야 합니다."
임성균 감사관 "안(동범) 감찰과장이 (백 내정자가) 자기한테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확인해)보니까 자기한테 지시한 게 아니고 (백 내정자가) 우리 서울청장한테 지시를 한 거예요. 서울청장이 차장 내정자니까."
이에 안 전 국장은 "이현동 서울청장은 (나를 사퇴시킬) 법적 권한이 없다"며 "백용호 내정자가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면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아 면담을 통해 바로잡아드리고 싶다"고 응수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정자가 '네가 나가야겠다'고 하면 그때는 (자진사퇴를) 생각해보겠다"고 덧붙였다.
안 전 국장은 "(임) 감사관님은 이현동 서울청장의 지시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고 (본청) 과장들이 거기(이현동 서울청장)에 가서 지시를 받으면 못가게 해야 한다"며 "(이현동 서울창장은) 감사대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한테 지시를 받고 나한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직권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또한 녹취록에 따르면, 임 전 감사관은 "허병익 차장이 청장대행을 하면서 안 국장에 대해 큰 결정을 해놓았다"며 "최근 백용호 내정자와 이현동 서울청장이 액션을 시작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종합하면, 표적감찰을 통해 안 전 국장에게 사퇴를 압박한 것은 허병익 청장대행 때 시작됐고,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와 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이것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얘기다.
안 전 국장은 당시 감사관에게 "인사권자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게 실제 법에 저촉되든 법을 벗어나는 일이든 관계없이 돌격하고, 위에서 지시한다고 알아서 기는 것이 국세청의 제일 큰 병폐"라고 꼬집었다.
한편 안 전 국장은 한상률 청장 때부터 사퇴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국장측 증언에 따르면, 한 청장은 '전 정권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퇴를 종용했고, 감사관실을 통해 안 전 국장의 주변을 은밀하게 내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임 전 감사관도 백용호 국세청장 취임 직전 "국세청 조직 전체를 위해서 일부(국장들)가 나갔지 않느냐"며 "안 국장은 허병익 차장이 청장대행할 때부터 '국세청을 위해 총대를 메주었으면 하는 대상'으로 분류돼 있었다"고 사퇴를 종용했다.
'한상률-허병익-백용호' 체제에서도 계속된 '사퇴압박'
안 전 국장은 정확한 배경이나 이유도 모른 채 '한상률 청장-허병익 청장대행-백용호 내정자'를 거치는 동안 계속해서 사퇴압박을 받아온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표적감찰과 사퇴압박을 지시한 것이 국세청 고위간부들의 독자적 판단일까 하는 점이다.
임 전 감사관은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녹취록에서 "허병익 차장이 청와대로 돌아다니고 그렇게 해서 (안 국장의 사퇴를) 결재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결정은 위에서 다 해버리고 허 차장님이 이렇게 조율을 다했다"는 발언도 포함돼 있다. '국세청 고위간부들'보다 '윗선'에서 개입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민주당이 입수해 공개한 녹취록은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녹취록엔 2009년 7월 21일 안 전 국장과 임 전 감사관이 전화로 나눈 대화내용이 기록돼 있다.
안 전 국장의 자진사퇴를 종용하던 임 전 감사관은 이날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즉 명예퇴직을 조건으로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임 전 감사관은 "만약 안 국장이 명퇴하면 삼화왕관에 자리(사장)를 드리는 걸로 의견이 집약되고 있다"며 "(하지만) 나가지 않으면 지금까지 해오던 조치를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압박했다.
이에 안 전 국장이 "삼화왕관 자리는 누구의 뜻으로 얘기하는 거냐?"고 묻자, 임 전 감사관은 "제가 여러 윗분들의 얘기를 들어본 것"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녹취록의 그 대목이다.
안원구 국장 "'윗분들'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청장님(백용호) 말씀하시는 겁니까?"
임성균 감사관 "다 포함한 거죠."
안원구 국장 "그럼 청장님한테 직접 들으셨습니까?"
임성균 감사관 "예, 예."
안원구 국장 "백(용호) 청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임성균 감사관 "예, 예."
이어 임 전 감사관은 "안 국장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 전체에서 어느 정도 판단이 이루어졌다"며 "우리 (백용호) 청장님 한 분이 아니라 청와대를 포함해서 정부 전체에서 판단이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임 전 감사관은 "'정부 전체'라는 이야기를 책임질 수 있냐?"는 안 전 국장의 질문에 "책임질 수 있다"는 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임 전 감사관의 발언은 안 전 국장을 향한 사퇴 요구가 청와대 등 '정권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임 전 감사관이 수차례 "정부 전체적으로 판단이 이루어졌다"고 발언한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특히 "청와대도 그렇고 최고위층에서도 그것(안 국장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상당히 다 인지를 하고 있다"는 임 전 감사관의 발언도 '권력층 개입 의혹'을 풍긴다.
안원구 국장 "최고책임자가 그렇게 결심을…."
임성균 감사관 "고위층이라고 그랬지요. 최고책임자가 아니고."
안원구 국장 "그러면 최고위층이 누굽니까?"
임성균 감사관 "뭐 장관급 정도 이상."
안원구 국장 "장관급이 누구입니까? 청와대에 장관급 이상 최고책임자가 누구입니까?"
임성균 감사관 "'최고위층'이라 그랬지요."
안원구 국장 "'최고위층'이라고 하면 누구를 지칭하느냐 하면 청와대예요."
임성균 감사관 "뭐 책임있는 분들이겠지요."
하지만 안 전 국장은 "내가 어제 청와대의 공직기강, 민정 등 쪽에 알아본 결과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고 반박하면서 "청장님이 어떤 보고를 받고 판단을 했는지 청장님과 이야기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임 전 감사관은 "청장님 개인한테만 매달리지 마시고 정부 전체적으로 크게 보셨으면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허병익 차장이 청장이 되기 위해 노력 많이 했다"특히 임 전 감사관은 허병익 청장대행이 국세청장이 되기 위해 안 전 국장의 사퇴를 압박했다는 증언도 내놓았다.
임 전 감사관은 "허 차장이 청장이 되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많이 했다"며 "그 전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을 시원시원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청와대 등을 다녔고 서로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그렇게(안 국장이 자진사퇴하도록) 이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안 국장의 사퇴를 종용한 임 전 감사관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1980년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경제기획원(1980년-1994년)과 주태국대사관(1996년-2000년)에서 근무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초 청와대의 '삶의 질 향상 기획단'에 파견됐다.
이후 재정경제부 국제조세과장·조세지출예산과장·혁신기획관, 통계청 정책홍보관리관, 국세심판원(현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등을 거쳐 2007년부터 국세청 개인납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세청 본청 감사관으로 발탁됐고, 지난해 7월 광주지방국세청장으로 승진했다.
안 전 국장 변호인단은 이현동 내정자와 임성균 광주지방국세청장을 항소심 증인으로 신청해놓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