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통일세 거론
또 우리의 가난한 국가가 서민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나섰다. 남대문이 불타고, 천안함이 가라앉았다며 성금을 요구하던, 국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술·담배를 핑계 삼아 죄악세를 부가하려했던 정부가 이번에는 통일을 걱정해야하지 않겠냐며 소위 통일세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통일세의 절박함을 강조하려는 듯, 하필 광복절 65주년 경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예전 정부에서도 광복절 경축사는 으레 대북정책 노선의 중요한 시금석이 되어왔던 터라, 대통령의 발언은 큰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통일은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주시기를 제안합니다."
당혹스러웠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며, 북한에게 쌀을 주느니 소, 돼지에게 주겠다던 그 정부가 지금 통일을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결연한 표정으로 몇 번 씩이나 통일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자연스러움이란.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통일세 발언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은 한결 같았다. 한마디로 뜬금없다는 것. 정권 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이 정부가 평화통일 운운하는 것도 기가 막힌데, 특히 그 통일 비용을 세금으로 걷겠다는 것이다. 통일세의 필요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천안함이다 뭐다 하면서 통일비용을 극단적으로 높여놓은 이 정부가 과연 통일세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게다가 그 통일세가 부가세처럼 모든 소비의 간접세로 부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언론의 보도는 많은 직장인의 울분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이는 결국 부자감세다 뭐다 하면서 잘 사는 이들의 세금은 면제해 주고서, 정작 돈이 필요하자 소리 소문 없이 가장 만만한 서민들의 지갑을 터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누가 4대강과 같은 말도 되지 않는 사업에다 정부 예산을 쏟아부으라 했던가.
MB의 발뺌
그러나 민심의 격한 반응을 의식했는지, 정부는 이틀도 가지 못해 당장이라도 신설할 것 같았던 통일세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통일과 관련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것이지, 지금 당장 국민에게 과세할 것은 아니다"라며 "분단이 고착화돼서는 안 되고, 분단 관리가 아니라 통일 관리로 국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아님 말구' 식의 찔러보기. 아마도 정부는 통일세라는 화두를 던져놓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자 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에 별 반응이 없었으면 과감하게 통일세 제정을 추진했을 진데, 여론이 악화되자 슬그머니 말을 바꾸는 식의 꼼수를 부린 것일 테지.
사실 정부의 통일세 논의가 마냥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남북이 통일된다면 그에 필요한 비용이 엄청날 터, 이전에도 통일세 논란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통일 당시 GNP의 차이가 2.5배 차이였던 동서독의 통일비용도 15년 동안 3천조가 들었다는데, 현재 GNP의 차이가 10배에 다다른 남북의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따라서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논의는 그 저의가 무엇이든 간에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말처럼 어차피 통일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에 필요한 비용에 대한 논의는 한시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데,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통일비용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찔러보기식 발언은 보수 세력들의 간사한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소위 '친북좌파' 정권이 통일세를 이야기하면 당장이라도 가스통을 들고 달려들었을 그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세 운운에 대해서는 차마 극렬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도 차마 거론하지 못했던 일을 이명박 대통령이 용감하게 저지른 꼴이 된 것이다.
MB정권의 저의
한낱 해프닝으로 그쳐버린 대통령의 통일세 발언. 그러나 이를 마냥 가볍게 치부할 수는 없다. 결국 대통령의 실언 속에 현 정권의 속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통일을 거론한 것일까?
대통령의 의중은 그의 발언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비록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것이었다며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을 염두에 두어 통일세를 주장했다. 그 스스로 분단관리가 아닌 통일관리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이는 그가 현재 남북한의 상황이 언제든지 통일될 수 있다는 믿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그 통일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남북한이 대등한 모습으로 합쳐지는 평화통일이 아닌 북한의 붕괴로 인한 흡수통일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무너질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년 전을 상기해보자. 동구권, 심지어는 소련마저 무너졌을 때 많은 이들은 북한의 붕괴 역시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살아남았다. 김일성만 죽으면 북괴에 대항에 북한 주민들이 소요를 일으키리라 예상했지만, 북한은 역시 동요하지 않았다. 우선 북한 옆에는 중국이란 절대적인 지지자가 존재하며, 북한의 집권세력은 우리의 반공교육 내용과 달리 인민들의 적지 않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혹여 북한이 무너진다 치자. 현재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관리주체가 남한이 될 수 있을까? 파국으로 치닫는 남북관계에 비례해 현재 북한은 그만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었는데, 중국은 그들의 자본을 위해서라도 북한의 관리를 누구에게도 양도하지 않을 터, 과연 남한이 북한에 대해 얼마나 왈가왈부 할 수 있을까? 게다가 현재 우리의 경제규모로는 북한을 감당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남한이 무너진 북한에 대해 관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결국 우리는 원래 같은 민족이고, 따라서 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할 텐데, 민족은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하나의 근거일 뿐, 그 자체가 남북통일의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나라는 얼마든지 많으며, 실제로 남한의 많은 사람들 역시 자신의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통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반문하는 것이 분단 60년이 지난 오늘날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비용이 아니라, 평화비용이다. 결국 지금의 불안정한 한반도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갑작스러운 통일이 아니라 두 국가의 신뢰이기 때문이다. 통일이란 두 국가가 평화적인 상태로 대등하게 발전한 뒤 고려해봐야 할 문제일 뿐, 지금처럼 성급하게 덤벼들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평화비용을 지불해 본 경험이 있다. 비록 보수 세력들은 그 의미를 폄훼하면서 결국 그 비용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등 북한 정권 연장에 쓰였다고 거품을 물었지만, 현재는 차라리 그 평화비용이 이명박 식의 통일비용보다 얼마나 싸고 효과적인지 직접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한미FTA에부터 시작해서 이란 제재 동참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의 청구에 현재 우리 가난한 정부가 허덕이지 않는가. 그러니 통일세 운운하면서 모자란 예산을 채울 꼼수를 생각할 수밖에.
통일세를 내라면 내겠다. 다만 그 돈을 허튼 곳에 말고 제대로 된 곳에 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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