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장관의 편지 "아동 무상 우유급식 중단하겠다"
최근 영국 보건장관 앤 밀턴이 스코틀랜드 공공보건장관에게 보낸 편지가 BBC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영국 사회가 논쟁이 휩싸이고 있다. 그의 편지에는 "5세 이하 아동에게 시행되고 있는 무상 우유지급을 내년 4월부터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5세 이하 아동들을 위한 너서리 밀크 제도(The Nursery Milk Scheme)는 1940년 세계2차대전 당시 임신 여성과 어린 아이들의 건강을 보호할 목적으로 도입되어 지금까지 시행돼오고 있다. 한국의 어린이 놀이방과 같은 2시간 이상의 주간 아동보호 기관인 너서리(Nursery) 등에서 5세 이하 아동들에게 하루 189ml의 우유(12개월 이하는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밀턴은 이 편지에서 "무상우유 폐지는 굉장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전제하고 "현재 잉글랜드에서만 무상우유 비용이 대략 5000만 파운드로 지난 5년 전과 비교하여 두 배로 증가하였으며, 내년(2011-2012) 예산은 5900만 파운드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밀턴은 더 나아가 "이 제도가 아이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도 없고 구시대적"이라고 말했다.
시민들 "아이들 우유병을 빼앗겠다는 거냐?"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사회가 온통 들끓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5살 아이의 아버지인 아이언(42. 직장인)은 "아이들 우유를 다시 뺏는다는 건 있을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아마도 다음에 보수당이 집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개했다.
BBC방송 게시판도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는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왔다.
"내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에서 우유를 마셨는데 그때 보수당이 그 특권을 없애버렸다. 노동당이 집권한뒤 내 아이들을 위해 무상우유를 다시 제공했고 아이들은 우유 때문에 더 건강해졌다. 그런데 보수당이 정권을 잡자마자 모든 노동자들과 빈곤층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에게 다시 영향을 미치겠다고?" (콜린)
"정부는 무상우유제도를 운영하는데 왜 그렇게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지 세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우유를 없애려 할 게 아니라 비용적인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는가?" (피터)
"여기 보수당이 다시 아이들 우유 갈취한다." (아토스)
"내가 어려서는 대처가 무상우유를 갈취해가더니 지금은 영혼 없는 정치세력으로부터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앤디 카더 벅스턴)
하지만 정부에 대해 찬성하는 누리꾼도 있다
"5세 이하 아동들의 우유는 필요치 않다. 초기에 아이들 식습관에 우유를 마시는 것은 아이들을 편협하게 하거나 너그럽지 못한 아이들로 만들 수 있다. 이번 정부의 무상우유 폐지는 아주 적절한 것으로, 우유가 아이들 건강을 개선시킨다는 아무런 증거는 없다. 칼슘과 비타민은 언제든지 충분히 먹을 수 있다. 5900만 파운드라고? 즉각 중지해라!!" (브라이언)
캐머런 총리 일단 부인... 그러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밀턴 장관의 무상우유 폐지에 관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총리실 역시 공식 논평을 통해 "무상우유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담당부서인 보건부는 정부 예산지출 검토의 일부분으로 내년 4월까지 무상우유제공 폐지를 고려하고 있으며, 한 가지 대안은 무상우유를 폐지하고 임신여성과 4세 이하 아동에게 우유 또는 신선과일과 채소를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바우처(Healthy Start voucher)를 늘리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야당인 노동당의 보건담당 대변인 앤디 번함은 BBC방송 인터뷰에서 "5세 이하 무상우유 폐지에 관한 것은 정부의 확고한 정책제안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보건장관이 정책대상인 스코틀랜드 보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연합정부내의 정책적 혼선은 사회복지예산 삭감을 비롯한 정부의 다양한 예산검토의 일환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캐머런 총리 역시 <선데이 타임>지 인터뷰에서 "무상우유 폐지는 그 결과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심도있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정부의 공공예산 검토 사실을 인정했다.
무상우유 폐지는 밀턴 보건장관이 이미 편지에서 밝힌 대로, 언론을 비롯한 일반 대중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재정안정을 위한 필요와 정부의 공공재정상태를 고려하여 지금이 그것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라는 밀턴 장관의 언급처럼 정부가 공공부분 예산 삭감에 혈안이 되어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교육장관 시절 우유급식 폐지했다 혼쭐난 대처
영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아동을 위한 무상우유 폐지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1년 에드워드 헤드 정부에서 교육장관이던 마가렛 대처는 7세-11세 아동을 위한 무상우유 제도를 폐지를 결정했다.
그런 그녀도 수년이 지난 후 자서전에서 "나는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최소의 정치적 혜택을 위해 최대의 정치적 악명을 초래했다"고 고백했다. 오늘날 영국 사회에서 대처는 '대처, 대처, 우유 도둑'이라는 별명으로 아직껏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만약 보수당 정부의 구상대로 무상우유 폐지가 성공한다면, 이미 '우유도둑 대처'의 기억을 갖고 있는 영국인들에게 어떠한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까 염려스러운 시점이다.
예산삭감 혈안인 연합정부... 복지수당이 최고 먹잇감? |
지난 5월 치러진 영국 총선거에서 1997년 이후 13년간 집권해 온 노동당이 물러나고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합정부에 의한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결과적으로 전통적 복지국가인 영국의 사회복지 환경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유급식 폐지 검토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새 정부의 예산안 주요내용을 보면 그 동안 노동당 정부에서 보편적 복지서비스 수혜 원리에 따라 지급되어 왔던 다양한 사회복지 수당들이 축소되거나 폐지됐다.
정부의 전체 삭감예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노동과 연금 부처의 주택수당(Housing benefit) 110억 파운드 삭감을 비롯하여, 지난 2008년 도입되어 질환이나 장애로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제공되던 노동능력상실 수당(Incapability benefit), 그리고 연간 260여 만 명에게 120억 파운드 규모로 지원되던 고용지원수당과 임대 지원(Rent support), 그리고 빈곤층과 무직자에게 제공되던 지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아동이 있는 모든 가정에 부여했던 택스 크레딧(Tax Credit)에서 아동 요소가 폐지되어 연간 4만 파운드 이하 소득자에게만 부여하기로 하였으며, 25주 이상의 임산부에게 임신 기간 동안 제공되었던 190파운드의 임신수당 역시 폐지되었다.
이와 같이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에 의한 사회복지예산 삭감에 대해 당시 언론은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사회복지예산 축소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인디펜던트>지는 "이는 식객을 걷어차는 것과 같은 예산 지진으로 저소득 가족에게 재앙"이라고 우려했으며, 국립 주택연합의 보조 디렉터 윌리엄 헬렌은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사회복지예산 삭감에 대해 "거의 모든 실업수당 청구자들이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이전 노동당 정부에서 보건장관이던 이베트 쿠퍼는 블룸버그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1980년대 대처시대로 회귀한 것으로 실업과 고비용을 상승시킬 것이며, 복지개혁이 아니라 단지 수당 삭감으로 정부 예산 어디에도 사람들이 일을 갖도록 돕는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주류 경제학자들도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합 정부의 재정절감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복지예산 축소가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견해에서는 서로 의견이 양분돼 있다.
한편, 최근 영국 의학회는 정부의 사회복지예산 삭감이 결과적으로 국민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예를 들어, 1인당 70파운드의 사회복지 지출 감소는 알콜 관련 사망률 2.8%, 심장질환 사망률 1.2%를 각각 높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전체 사망률은 1.19%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절감이나 적자감소를 위한 정부의 급진적 사회복지예산 축소가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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