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제 해방감을 느껴야 할 때인데 정말 그걸 또 하고 싶단 말이에요?"
곧 첫 아기의 출산을 앞둔 후배가 제게 던진 질문입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요즘 입양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라고 했더니, 지금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인생을 즐겨야 할 때가 아니냐고 의아해 했습니다.
아이 둘을 낳아 길러 큰 아이를 지난 주에 대학 기숙사에 보냈습니다. 작은 아이가 대학에 가려면 아직 3년이 더 있어야 하지만 결혼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미뤄 두었던 입양을 이제는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후배 말대로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내 가슴이 허전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입양에 대해 말했고 나는 그때부터 입양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물론 나는 입양을 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고 판단했기에 그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내 아이 낳아 길러 본 경험도 없이 남의 아이 데려다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 첫째였고, 내 아이가 있는데 남의 아이 데려다 놓고 똑같이 기를 자신이 없다는 것이 그 둘째였습니다.
입양할까, 한 마디에 "찬성"을 외친 가족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40세에서 44세의,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여성이 입양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양을 한 여성이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나의 유전자가 없는 아이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가?"입니다.
40세에서 44세 여성. 아마도 40세 이전에는 아이 없이 살아도 괜찮았다는 말이겠습니다. 아이가 없어도 재미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고 삶의 빈 공간을 느낄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해마다 몸에 주름이 더해지고 글씨를 읽는 시력은 점점 약해져 책은 잘 보이지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인생에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는 더 잘 보입니다. 사람이 몸의 눈과 함께 마음의 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식구들에게 입양에 대한 내 뜻을 넌지시 비쳤더니 남편은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막내아들은 "쿨(Cool)~" 이 한 마디로 내 손을 번쩍 들어주었습니다. 또 아빠를 닮았는지 어려서부터 자신이 성인이 되면 입양을 실천하고 살고 싶다고 말하던 딸은 "엄마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미 있는 두 자녀의 대학 교육비용으로 가장 가계지출이 많은 시기이므로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넉넉지 못한 가정경제를 고려한 후에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사려깊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딸에게 해 주었던 말을 다시 딸에게서 돌려받은 셈입니다.
입양이란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되는 일은 아니므로 더욱 신중하게 생각할 일이지만 어쨌든 두 아이를 키워 보니 이제는 남의 아이도 내 아이들과 다름없이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경제력보다 더 중요한, 마음의 준비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출산과 양육으로 포기했던 내 삶, 아깝지 않습니다
입양의 역사에서도 인간의 선하고 악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남성우월주의 역사 속에 고대 사회에서는 대를 잇기 위해, 가문을 든든히 하기 위해 입양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중세 시대 서양에선 입양을 고귀하지 못한 행동으로 천시하기도 했고 노예처럼 부리기도 했습니다. 사회 복지 개념이 정립되기 전까지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입양은 값싼 노동력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원주민들을 멸종시키기 위해 정책적으로 입양이라는 제도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이 폴란드 점령 당시 약 20만 명의 폴란드 어린이들을 강제로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안 가정에 입양시키는 끔찍한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입양을 하나의 사업으로 만들어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뺏고 아이를 판다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인공수정 등 과학의 발달로 입양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7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던 미국의 입양은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입양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 70년대에 입양을 했던 한 부부를 며칠 전에 만났습니다.
마침 27년 전 오늘이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난 날이라고 했더니, 그 부부는 결혼한 지 37년이 되었다면서 "37년 전에 결혼했는데 어떻게 마흔 살 아들이 있을까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라"며 웃었습니다.
결혼 후 5살짜리 남자 아이를 입양했고 몇 년 후 또 한 명의 남자아이를 입양해 아들만 둘인데 지금 큰 아들이 또 아들만 셋을 낳아서 대를 물려 아들 농사만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입양한 두 아들 중 하나는 장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입양해서 사랑으로 자녀들을 기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존경심을 갖게 되고 참으로 축복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면서도 20년이 넘도록 주저한 것도 어쩌면 인간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측면, 악이라는 것에서 내가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내 후배의 질문에 대답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또 하고 싶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길렀던 20년 가까운 시간 속에 출산과 양육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내 자신의 모든 것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속앓이도 만만치 않았으나 그보다는 그 아이들이 내게 안겨준 기쁨과 가르침이 더 많았습니다. 이제는 나의 뼈와 나의 살이 한 점 섞여 있지 않은 아이를 낳아보고 싶습니다. 그 아이의 눈 속에서도 나를 찾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