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빠께서 일찍 들어오셨다. 그런데 엄마께서 갑자기 입맛을 다시면서 칼국수를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원래 라면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엄마께서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짜증이 났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엄마께서 드시고 싶다면 따라갈 수밖에...
우리 가족은 평소 자주 가는 칼국수집이 있다. 우리식구 단골집이다. 거기는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데, 우리 가족 입맛에 '딱!' 맞다. 그래서 칼국수를 먹으려면 언제나 그 집으로 간다.
이 칼국수 집은 다른 곳과 다르다. 일요일에는 번호표까지 뽑아서 기다렸다가 먹는다.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 이번에도 사람이 많았다. 엄마께서는 자리를 훑어보시더니 빈자리를 찾아 가셨다. 주방과 가까운 곳이다. 비교적 깔끔하고 주문한 음식이 가장 빨리 나올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식당 안에 바지락 칼국수 냄새가 가득했다. 칼국수를 쏙-쏙- 빨아먹는 사람들의 소리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니 더 괴로웠다. ㅠㅠ 이렇게 생각하면서 칼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고통이었다.
나는 칼국수를, 아빠는 팥국수를 시켰다. 엄마와 언니는 콩국수를 시켰다. 내가 주문한 칼국수가 먼저 나왔다. 잠시 칼국수 냄새를 맡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계시던 엄마께서 젓가락을 드시더니 내 칼국수로 돌진하려고 하셨다. 순간 나는 엄마가 아기를 지키듯 잽싸게 내 칼국수를 보호하였다.
내 마음이 급해졌다. 엄마께서 뺏어가기 전에 얼른 먹어야 했다. 나는 젓가락을 들자마자 칼국수를 쏙-쏙-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나는 엄마와 언니의 시선에도 흔들림 없이 칼국수의 면발과 국물을 미친 듯이 빨아들였다.
내 칼국수의 양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엔가 언니와 엄마, 아빠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와 언니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는 말이다. 이제는 각자 주문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 칼국수의 면발이 많이 줄어들었다. 맛있는 칼국수를 천천히 먹어야 되는데 아쉬웠다. 뜨겁던 국물도 이제는 따뜻해졌다. 나는 마음 놓고 천천히 국물의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내 옆에 앉아 계시던 아빠께서는 그때까지 팥국수를 식히고 계셨다. 아빠는 뜨거운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한다. 우리는 '뜨거운 음식도 우리보다 잘 못 드신다'며 아빠를 놀렸다. 아빠는 계속 웃으시며 팥국수를 젓기만 하셨다.
나는 계속해서 칼국수를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후르륵, 짭짭!!!"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것은 팥국수의 면발이 초고속으로 아빠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소리였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쓰레기와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그 광경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아빠보다 훨씬 먼저 먹기 시작했는데... 아빠의 팥국수 양이 눈에 띄게 부쩍부쩍 줄어들었다. 우리 식구 네 사람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릇을 깨끗이 비운 사람은 아빠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와 언니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빠와 예슬이는 진공청소기 콤비네??"라고... 우리 가족은 그때부터 아빠와 나를 '진·청(진공청소기) 콤비'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진·청콤비... 아빠와 내가 많이 닮았다는 게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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