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송환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1994년 제1차 북핵위기를 해결한 카터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을 두고, 이명박 정부는 "순수한 인질석방의 의미만 있을 뿐 미국의 정책은 변화가 없다"고 애써 강조한다.
"방북단에 어떠한 행정부 인사도 참여하지 않는다"면서 "미 정부의 어떠한 메시지도 전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의미를 축소하려는 노력만 있을 뿐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은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한반도사무 특별대표가 지난 16∼18일 북한을 방문한 데 이어 26일 북한 측의 메시지를 들고 한국을 방문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26일 새벽 김정일 위원장은 방중 3개월 만에 이례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독자적 목소리는 없어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바쁜 행보와는 대조적으로 남북관계에 있어 한국의 독자적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미국의 급박한 상황 전개에 뒤따라가기조차 바쁘다. 중국과 미국의 바쁜 움직임 속에 26일을 기점으로 정부의 입장이 급선회하고 있다.
외교부는 "6자회담과 천안함 사과를 분리대응하겠다"면서 천안함 침몰 이후 '이명박 외교의 유일목적'으로 보였던 '천안함 사과 요구' 카드를 별안간 내려놓는다.
통일부 역시 마찬가지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인도적 대북 쌀 지원 재개' 주장에 대해 "현재 정부는 대북 쌀 지원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사실이 없다(23일, 통일부 대변인)"며 정면 반박했던 통일부는 "현재 정부 차원의 수해지원을 검토하는 것은 없지만 다른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26일)"며 국제사회나 민간을 통한 대북지원에 나설 수도 있다는 식으로 우회적 입장 변경을 시사했다. '인도적 대북 지원'을 통해서라도 남북 당국간의 대화를 재개하거나, 6자회담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노력은 없다. 그저 따라가기에만 바쁘다.
다시 곰즈씨 석방을 위한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사건으로 되돌아가자. 지금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자국민이 있는 나라는 미국만이 아니다. 지난 8월 8일 우리 선원 4명이 탄 대승호가 북한에 나포된 지 벌써 18일이 지났다. 2000년 이후 지난 10년간, 30일 동안 억류됐다가 돌아온 800연안호를 제외하고 북한에 억류된 우리 어선 4척은 당일 또는 며칠 이내의 단기에 송환됐다.
대승호 언제 송환될 것인가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지금, 대승호 선원들이 언제 송환될지는 기약조차 없다. 정부 차원의 노력조차 사실상 없다. 이런 사실을 되돌아 볼 때 대승호 억류가 장기화될 우려 또한 적지 않다. 자국민 송환을 위해 전직 대통령이 방북하는 미국의 모습은 우리 정부의 태도와 너무도 비교된다. 북한과의 외교적 상황을 떠나 자국민의 보호를 우선시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를 보는 대승호 선원들과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실로 '무능한 외교'요, '실패한 통일정책'이요, '매정한 조국'이다. 자국민이 나포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조차 단절한 채 흡수통일 의도를 함축한 '통일세'나, 비핵개방3000의 아류인 '3단계 통일방안'을 운운하며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미국,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시점에 '나홀로 대북강경'을 부르짖는 꼴이다.
대승호 나포가 새로운 긴장 요소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대화의 계기'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최근 압록강 범람으로 신의주 지역이 침수되어 북한의 식량난이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란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북강경조치만을 외쳐온 한나라당마저도 인도적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대승호 선원 송환과 신의주 침수피해 지원 문제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천안함 사태 이후 사실상 파탄난 남북관계에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
남북대화 재개, 대북특사 파견해야
한반도를 둘러싸고 '거대한 코끼리 두 마리'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 흐름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저 뒤따라가서도 안 된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주도적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이명박 정권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G20 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의 평화적 기조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인도적 지원이 절실한 시기인 만큼 자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남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보며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교류의 따뜻한 빛을 비추었던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부재가 참으로 안타깝다. 미국은 전직 대통령을 파견해 자국민을 송환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그럴 수도 없다.
방법은 있다. 대북특사를 파견하면 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외교무대에서 소외되지 않고, 경색된 남북 관계를 해소하고 북한과의 평화적 물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또한 우리 국민의 조속한 무사송환을 위해 정부는 즉각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대북 특사를 파견할 것을 진심으로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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