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연합정치론이 민주당의 집권전략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연합정치론은 위상을 잘 잡아야한다. 조직노선인가? 집권전략인가? 그것이 '민주당의 집권전략'이라면, 조직노선 상으로 '단독집권이 가능한 수준으로의 당 개혁과 확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주장이다.
조직노선으로서 단일정당통합(빅텐트론)을 말하는 것이라면, 단독집권이 가능한 51% 확보를 위해 선진당과의 통합까지를 주장하는 것일까? 연합정치는 무엇의 연합인가? 지역연합인가, '가치의 연합'혹은 정책연합인가? 선거연합인가? 민주당이 '호남+@당'을 넘어서는 전국적 정책정당이 아닌데 정책연합이 가능한가? 등등.
6·2 지방선거는 'MB심판론'에 기초한 부분적 '후보단일화' 수준의 선거연합이었다. 그런데 7·28 보궐선거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사실 후보단일화도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방선거와 재보선은 다르다'(정세균 대표)고 했다.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핵심은 바로 '밥그릇이 다르다'는 것이다. 당내 공천권과 의사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에게 지방선거는 '내 밥그릇은 아니어서 양보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보선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이고 '내 밥그릇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정말정말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라면 '비주류의 밥그릇'은 양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민주당은 구태의연한 후보를 낼 수밖에 없었고, 다른 당 후보의 양보를 받아냈지만 국민의 외면속에 패배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국회의원들의 당'인 민주당에서 '자기 밥그릇'을 내놓는 선거연합은 가능할 것인가?
집권전략으로서 연합정치를 말하고 있다면, 그와 동시에 조직노선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을 '호남+@당'을 넘어서는 전국정당으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지역연합을 배제할 수 없다. 근본적인 개혁을 전제로 해야만 비로소 정책연합이 가능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을 호남+@당'을 넘어서는 당으로 혁신하고 연합정치론를 통해 집권하겠다는 것은 사실 87년 체제와 DJ 프레임을 뛰어넘는 거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민주당 개혁 과제의 역사성
대통령제 권력구조 하에서 정당의 조직노선은 집권전략, 즉 대선전략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 민주당을 특징짓고 있는 민주당='호남+@'당이라는 규정성도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DJ의 집권전략이었던 '4자필승론'과 연계되어 있다. 71년 대통령 선거나 79년 유신철폐와 80년 봄, 그리고 87년 직선제 개헌투쟁 때까지도, "민주당=호남당"은 아니었다(당명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직선제 개헌을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과제는, 4자 대결구도에서라면 '호남 + @(수도권 개혁세력의 지지)'로 승리할 수 있다는 집권전략에 밀렸다. 평화민주당은 호남당이 되었고(TK당, PK당, 충청당), +@는 'DJ 비판적 지지'로 논리화되었다. 결과적으로 4자필승론은 노태우의 당선으로 귀결되었고, 이후 한국 정당정치는 '지역주의 정당'과 지역연합에 기초한 집권전략을 내용으로하는 '연합정치론'으로 이어졌다(3당합당과 DJP연합).
열린우리당의 창당과 실패는 87년 이후 정당정치를 규정해온 지역주의와 오너정당(대권후보 중심 국회의원 줄세우기), 고비용 동원정치를 넘어서려는 시도였다. '호남당의 영남후보'라는 절묘한 결합을 통해,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노무현 대통령과 신주류세력에게, 민주당=호남+@당이라는 DJ프레임은 극복해야할 정치적 과제였다. 전국정당화와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건 열린우리당의 시도는, 대선 과정에서 새로 부상한 '노사모'와 같은 지지자 정치(fandom politics) 현상까지 흡수하기 위한 다양한 당내개혁과 정치개혁 시도로 이어졌다.
고비용 정치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치개혁은 지구당 폐지, 선거공영제, 후원회 제한 및 국고보조금 제도 도입 등을 비롯한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개혁당과 민주당 일부의 합당으로 출범한 열린우리당은 다양한 당내 개혁을 시도하였다. 기간당원제(당헌 제6조), 상향식 경선제(98조), 지구당 위원장과 국회의원 겸직금지(제왕적 지구당위원장 견제), 총재제 폐지 및 당권-대권분리(제126조), 그리고 원내정당화(기본정책 2항)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대부분의 제도는 갖은 편법으로 변질되었다. 편법 경선과 지역위원장 대리인제, 원내정당화를 빙자한 국회의원 기득권 강화 등. 오너 총재도 없고 대통령도 없는 당내에서는 국회의원들 간의 당권싸움으로 날을 새고, 여의도 정치에 갇혀 대중정당 노선으로부터 이탈하였다. 국민들의 혐오감과 극도의 불신 속에 재보선 40:0, 2006년 지방선거 참패 등을 거치며 열린우리당은 침몰하였다. 정작 '지역주의 극복과 전국정당화'는 가능성조차 보이지 못한 채. 대선과 총선의 연이은 참패를 겪으며 '민주당=호남+@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민주당 대개혁을 위한 쟁점들
열린우리당의 '실험'은 제왕적 총재제도(오너당)를 개혁하고 조직동원에 의존하는 고비용정치를 개혁하는 등 일부 성과를 냈지만, 대부분의 개혁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여전히 '호남+@당'으로 전국정당화는 요원하며, 노쇠하고 구태의연한 지도부와 폐쇄적 조직문화에 젖어있다. 기간당원제는 당권을 당원에게 주겠다는 취지였고 원내정당화는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정립이라는 취지였겠으나, 여러번의 변형을 통해 당원도 총재도 아닌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나눠갖는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정당으로 변질되었다.
현재 민주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87년 체제를 넘어서 변화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정당으로 개혁하기 위해 검토되어야 할 문제들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지방자치시대에 대응하는 당의 조직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행 헌법상의 국가권력구조는 입법(국회)-사법-행정(중앙정부)의 3권분립에 입각한 일차원적 국가권력구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87년 헌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지방자치가 실시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자치는 헌법상의 지위로 규정되지 않았다(현행 헌법에 지방자치는 단 두 개의 선언적 조항만 들어가 있다).
명칭도 지방정부가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다. 이를 반영하여 정당구조도 지구당을 매개로 지방자치를 국회의원 중심의 중앙당과 중앙정치(총선과 대선)에 종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지구당은 '지역조직'이 아니라 '하부조직'이다. 중앙당이 대선 선거조직화(국회의원 줄세우기)되듯이, 지구당은 지방선거 공천권을 매개로 국회의원 총선조직화(지방의원 줄세우기)되어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 권력구조를 국회-중앙정부, 지방의회-지방정부로 이원화하고, 지방자치를 헌법사항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상향식, 참여형 국가권력구조로 만들어 참여와 직접민주주의 확대요구에 부응하고 권력을 국민에게 환원해야 한다. 그에 따른 정치개혁, 즉 선거법과 정당법도 개정해야 한다. 지역단위의 자율권을 대폭 이양하여 현행 일괄선거법을 폐기하고 지방선거에 관한 조례제정권을 지방자치에 주도록 하며, 정당법 상의 지역조직도 중앙당의 하부조직이 아니라 지방의 정당조직으로 명확히 위상지워야 한다.
그같은 과제는 여야간 정치개혁의 과제이므로 민주당이 단독으로 해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행 정당법 내에서 지역조직에 대한 당헌만 고쳐도 가능한 부분이 있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로 되어있는 하부조직을 행정구역과 일치시키고, 지방선거의 공천권을 지역단위조직에 이양하는 것이다.
가령 성남시라면 성남시 지역위원회로 만들고 지방선거 공천권을 성남시 지역위원회에 주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의 지역조직이 중앙정치이슈에 동원훈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제 설정능력도 키우고 주민들과의 결합도도 높일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지방자치의 전당대회 의결권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현행 시도당 위원장의 추천권 만큼의 권한을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에게도 부여해야 한다.
둘째, 당원의 규정을 열린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기간당원제는 확고한 멤버십에 기초해서 지도부가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당원들에게 이양하려던 마지막 시도였지만, 취지와는 달리 많은 부작용만 초래하고 폐기되었다. 그 유산은 남아서 오히려 일반당원과 지지자들의 권리와 참여를 배제하는 장치로 작동되고 있다.
견고한 멤버십에 기초한 근대적 정당조직의 실험은 실패하였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만큼, 시대 변화에 맞추어서 당원과 지지자(서포터), 일반국민의 의사를 어떻게 당에 반영하고 일상적으로 소통하며 참여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온라인 소통기술의 발달과 팬덤 문화의 일상화에 따라, 현재와 같은 폐쇄적인 정당조직으로 새로운 세대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당원과 지지자, 일반 국민의 의결권한을 조정하여 개방적인 참여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
참고로, 당의 재정보고서를 접할 수 없어 수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당의 재정수입 중 당비와 후원금과 국고보조금 비율 중 국고보조금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당비의 비중이 높지 않다면, 현행 당원의 선거권 제한에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고 있는 당비 납부가 의결권 행사의 결정요인이 되는 것은 과도하다. 정당공영제에 가까울 만큼 국고보조금 의존도가 높다면, 일반국민의 참여폭을 더 높여야 마땅하다(일반국민도 세금으로 민주당에 돈을 내고 있다!).
셋째, 대의권 혹은 의결권을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당원의 실질적인 권리란 공직선거 후보자와 당직, 당대표 등을 선출하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핵심이다. 공천권의 경우, 당내 경선이 실시되는 경우에만 직접 투표권이 주어지고, 전당대회의 경우 대의권으로 행사된다.
현재는 중앙당 조직강화특위(지도부)에서 지역위원장을 심사 결정하면, 지역위원장이 선정하는 지역대의원 또는 상무위원들로 구성되는 지역대의원대회 또는 지역상무위원회에서, 지역위원장이 추천하는 시도당 대의원 및 상무위원과 전당대회대의원(중앙대의원) 명단을 인준하게 된다. 그렇게 선정(선출이라고 보기 어렵다)된 전당대회 대의원들이 모여서 전당대회를 열고 당대표를 선출한다.
실제로 당원을 모아오는(입당원서를 받아오는) 일은 주로 지방선거 출마희망자들의 몫이고, 또 받아온 입당원서 숫자가 공천심사의 주요 기준인데, 지방선거 공천권을 절대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의 의사에 반해서 지역위원장 선출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지역위원장이 추천한 대의원, 상무위원 명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이런 순환지명(선출)제도를 대의제라 할 수 있을까? 지구당위원장의 절대권력을 해체하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과제 중 하나였는데, 현재의 민주당에서는 독점이 더 강화되어 있다.
지방선거에서도 단체장을 제외한 기초 및 광역의원의 경우 경선이 거의 실시되지 않고, 단체장의 경우도 중앙당 공심위에서 결정되는 경우도 많아서, 경선이 실시되지 않는 지역의 일반 당원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구조는 대의제 원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당헌상 보장된 당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당원들에게 돌려줘야 되며, 당대표를 뽑는데 참여할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넷째, 변형된 원내정당론도 폐기되고 대중노선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제에서 중앙당 없이 대선준비 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식 원내중심정당은 중앙당이 없는 지역당연합체 성격이고, 유럽은 대부분 내각제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국회법에 규정된 것임에도 정당의 권한을 국회의원이 독점하고 있다. 국회의원 신분과 무관한 당직마저 독점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치는 여의도에 갇히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정치개혁 과제이기도 하지만, 정당의 존립근거를 좀 더 자유롭게 열어두어야 한다. 정당의 사전적 정의는 '정당(政黨)은 공공 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권 획득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을 일컫는다(위키백과)'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실정법 상으로 정당은 '선거법과 정당법으로 보호받고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어 국고지원을 받으며, 선거에서 살아남은 정치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선관위 등록제, 선거관리위원회의 심사를 받는 공영제(유급당직자의 숫자까지 정해져 있다), 선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등록취소될 수 있는 허가제, 국고에서 재정지원을 받는 공영제, 노사모와 같은 지지자 조직은 정당 명칭 사용이 금지되는 배타적 허가제인 셈이다. 사전적 정의에 맞도록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결사체가 가능하도록, 그래서 지역정당이나 특정 이슈에 집중하는 정당도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개혁하는 담대한 제안이 있기를
전당대회를 한 달여 앞두고 있는 민주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룰싸움은 '당의 개혁'이라는 과제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당권-대권 분리론이나 관리형 대표론 같은 이슈는 예비 대권주자들로부터 기득권 침해하지 않겠다(줄세우기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려는 국회의원의 기득권 유지 묵계에 불과하다.
지도체제 문제도 결국은 2012년 총선의 공천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주류파 국회의원-비주류 국회의원-주류파 원외 지역위원장-비주류 원외 지역위원장으로 품계가 정해지는 상황에서 어느 선까지 공천을 보장받을 것인가이다. 대표의 공천권이 강화되면 제일 품계가 낮은 비주류 원외 지역위원장은 '연합정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선출방식도 마찬가지다.
당원 구성상 호남 출신이 절대적 다수인 호남+@당이고, 당원수에 따른 대의권이 보장된 상황에서, 전당원 투표제나 지지자 투표제는 돈선거와 조직동원이 뻔하고, 국민 여론조사나 현행 대의원 투표 역시 호남의 과잉대표성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 어느 쟁점이나 당의 근본적 개혁과제를 해결하겠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보기 어렵다. 차기 민주당대표 선출을 둘러싼 '룰' 싸움만 있을 뿐이다. 승부에만 매몰되어 샅바싸움과 밀치기에만 집중하다 비인기 종목이 되어버린 씨름처럼 국민의 외면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2010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야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민주당의 혁신', '진보의 통합' 그리고 '연합정치'가 아닐까? 그렇다면 민주당의 가장 큰 과제는 연합정치를 말하기 이전에, 아니 진정성 있는 연합정치를 말하기 위해서라도, DJ와 노무현을 뛰어넘는 당의 근본적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밥그릇을 스스로 깨는, 그래서 지지자와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담대한 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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