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천안함 유족 비하 발언' 등으로 사퇴 압력을 받아왔던 조현오(55) 경찰청장 후보자가 결국 새 계급장을 달고 부하 경찰관들 앞에 섰다. 조 청장은 30일 오후 5시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취임식을 열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청와대에서 조 청장의 임명을 확정한 지 8시간 만의 일이다.
이날 오후 3시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조 청장은 곧장 서울 동작구 현충원으로 이동해 참배한 뒤 경찰청사에 도착했다.
그는 "참으로 멀고 먼 길을 돌아 여러분 앞에 섰다"고 밝힌 뒤, "모든 허물은 나의 부덕의 소치다, 국민과 동료 여러분의 뜻을 받드는 경찰청장이 되겠다"며 취임사를 시작했다. 그는 취임사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취임식을 마치고 경찰관들과 악수하는 자리에서도 잘 웃지 않았고 이동할 때는 어두운 표정을 유지했다. 조 청장의 취임식은 조직의 새로운 지휘관의 취임을 축하하는 자리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웠다.
"성과 낸 만큼 제대로 된 평가" 성과주의 지속 뜻 담았나
취임식이 치러지는 경찰청 지하 강당에는 400여 석의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경찰정복을 차려입은 간부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경찰청 직원들과 전·의경들이 자리했고, 군데군데 빈 자리도 많았다.
현장 지휘관은 이날 행사장 뒤쪽에 빈 의자를 치우라고 황급히 지시했고 전·의경들은 60여 개의 의자를 접어서 강당 뒤쪽으로 옮겼다. 그 가운데는 경비근무 복장에 장비까지 그대로 가지고 온 전·의경들의 모습도 보였다. 근무를 교대하자마자 달려온 것으로 보였다. 새 청장의 취임식이라고 하기에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또한 조 청장이 장내로 입장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지만 일부는 박수를 치지 않은 채로 관망했다. 15분여간 이어진 조 청장의 취임사에도 단 한 번 박수가 나왔을 뿐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경찰 관계자들도 조 청장 취임에 대해 온도차가 드러났다. 경찰청에서 근무하는 한 행정직 공무원은 "다른 청장님들도 기분 좋게 오신 분들은 없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더 무거운 것 같다"고 말했다. 50대의 한 총경은 "부적절한 발언이 문제가 됐지만 도덕적인 흠은 없었다고 본다"며 "잘하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일선의 반응은 좀더 싸늘했다. 경기경찰청에 근무하는 30대 경찰관은 "조현오식 성과주의에 대한 정확한 평가 없이 임명됐다는 것이 불만"이라며 "과도한 경쟁으로 부작용의 피해가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언급했다.
조 청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경찰개혁도 가일층 속도를 내야 한다"며 "한국경찰의 이미지와 신뢰를 훼손하는 부정적 요소를 말끔히 걷어내고, 일부의 부정부패와 비리, 불친절과 무성의한 업무태도를 근본적으로 쇄신해서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낸 만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기존 경찰조직 내부에서 문제가 됐던 성과주의를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반대로 조 청장은 "경찰이 인권의 일차적 보루가 돼야 한다"며 "제2, 제3의 양천서 사건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성과주의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또 "가장 경찰다운 경찰은 가장 인권에 충실한 경찰관"이라며 "수사과정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서민친화적인 치안행정을 통해 억울한 사람, 소외받는 이웃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조 청장은 이날 취임식 직후 지하강당에서 36명의 지방청장과 국관들과의 간담회를 열고 "G20 정상회의가 70여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철통같은 대테러 경비태세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또한 "집회 시위 관리와 주취자 처리에 무력한 모습, 비리, 불친절한 업무 행태를 비롯해, 국민적 불신을 초래하는 요소들을 말끔히 털어내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함으로써 신뢰받고 공감받는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편의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경찰,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경찰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열과 성의를 다하자"고 당부했다.
퇴진운동 계속... "사퇴한 후보들보다 나은 것 없다"
한편, 조 청장의 취임식에 앞서 '고 노무현 대통령 명예훼손 규탄 대책회의'와 '노무현 재단'은 서울 마포구 노무현 재단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 청장의 임명철회를 촉구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조 청장은) 어떤 후보보다 훨씬 패륜적인 망언을 했다"며 "그가 앞으로 경찰청장이 된다면 우리 경찰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탄압하고 무시하는 경찰이 된다는 걸 뻔히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해찬 전 총리도 "조현오 경찰청장 임명자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과 그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명백하다"며 "이런 사람이 경찰청장을 하고 있으면 각종 유언비어로 명예훼손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느냐"라고 성토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조현오 경찰청장이 지난 봄 시위진압을 주 임무로 삼는 기동대 팀장을 모아놓고 문제의 망언을 한 것을 생각해보면 광주민주화운동 일어나기 전에 신군부가 공수부대 군인들에게 주입했던 이야기들이 연상된다"며 "노무현 대통령 1주기를 앞두고, 기동대에게 그런 내용을 주입해서 시위하는 시민들에게 적개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한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 전 장관은 이어 "이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짓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해 시민을 적대시하고 특정 정치세력을 편드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조현오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자신의 패륜적 망언에 대해 발뺌과 궤변으로 일관했다"며 "그가 있어야 할 곳은 경찰청장 집무실이 아니라 검찰의 조사실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15만 경찰의 최고책임자가 될 자격이 없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조현오를 경찰청장에 임명한다면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조 청장의 파면과 구속수사를 요구하며 이명박 대통령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조 청장에 대한 지속적인 퇴진운동을 벌여 나갈 것을 결의했다.
참여연대도 같은 날 발표한 논평에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등 3명이 사퇴했으므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며 조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여전히 민심을 읽지 못한 오기 인사"라며 "조 후보자는 고위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자질 면에서 이미 사퇴한 후보들보다 단 한치도 나은 후보라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참여연대는 이어 "조현오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지난해 쌍용차 파업에 대한 과잉진압을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꼽은 바 있고 지난 6월 발생한 양천경찰서 고문수사의 지휘 책임자 역시 조현오 후보자"라며 "인권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을 드러낸 조현오 후보자가 경찰청장이 될 경우 국민들은 언제든지 고문과 진압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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