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은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높이가 66m밖에 안 되는 아담한 산이다. 그래서 산을 아주 좋아하는 산악인들에게는 전혀 인지도가 없는 민망한 산이지만, 성미산 마을에서는 서너살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그런 산이다.
마포구에 있는 하나뿐인 자연숲 성미산이 지금 '죽을 맛'이다. 아니 성미산 훼손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성미산 주민들이 '죽을 맛'이고, '성미산'과 '성미산 나무들'은 정말로 말 그대로 죽어가고 있다.
성미산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고, 숲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던 모든 동식물은 지금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 크고 작은 톱질에 이미 상처난 나무들은 태풍 '곤파스'의 상륙에 모두가 쓰러져버렸다.
숲 헐고 학교 짓겠다는 홍익재단
성미산 땅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땅주인 홍익재단은 성미산 땅에 학교를 지어서 홍익대학교 안에 있는 홍익초중고 이전하려고 한다. 홍익초중고가 들어올 예정인 성미산 남사면 숲은 전체 성미산의 면적으로 보면 20% 정도에 해당되지만, 산림이 울창하며 완만한 경사도를 가지고 있고, 인근지역 주택가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사실상 성미산에서 가장 좋은 숲, 가장 많이 찾는 곳이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홍익재단은 2006년 11월에 성미산의 체육시설부지와 공원화 예정부지 등을 포함한 성미산 1만8000여 평을 578억 원에 매입했다. 그 후 서울시에 성미산 일부 사유지의 용도를 체육시설부지에서 학교부지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9년 서울시의회 시정 질의에서 주민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만일 협의가 여의치 않을 때는 대체부지 마련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답변까지 했었다.
그러나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단 한 차례 간단한 인사성 모임을 주관한 후 충분한 협의절차도 없이 기습적으로 안건을 상정·심의해 성미산의 체육시설부지 일부를 학교시설 부지로 용도변경 해주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5월 20일엔 실시계획인가를 26일에는 학교건축을 승인했다.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운 교육감이 선출되기 직전에 이런 주요한 결정을 내렸다. 주민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된 채….
성미산주민들, 성미산지키기 비상행동에 나서다
이처럼 성미산 개발과 관련된 허가들이 일사천리로 이어지자 성미산생태보전과 생태공원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이하 '성미산 주민대책위')는 지난 5월 24일부터 성미산지키기 촛불문화제와 1인시위 등 비상행동을 시작했다. 포클레인이 성미산 나무 10여 그루를 벌목한 6월 8일 이후에는 성미산에 농성텐트를 설치해 24시간 내내 산을 지켜왔다.
산을 지키는 방법이란 특별한 것이 없다. 그저 성미산을 뛰어다니면서 그 산을 파괴하려는 인부들을 견제하고 맨 몸으로 막는 것 뿐. 산을 파괴하려는 상황이 멈추지 않으면,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먹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산에 머물며 힘겹게 호소하는 것뿐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지켜야하기에 늘 읍소하고, 애원하고, 인간적으로 호소하면서, 그렇게 나무 한 그루라도 더 지키려고 인부들을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포클레인이 나무를 쓰러뜨리려고 하면 포클레인에 매달리고, 그 포클레인이 밀고 있는 나무를 부둥켜안고 버텼다.
또 주민들은 사유지를 침범한 파렴치범이란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집에 가서 애나 잘 키우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홍익재단에게는 사회주의자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어떤 소리를 들어도, 또 어떤 피해를 입고도 마을 전체가 조를 짜서 산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이미 성미산 나무는 200여 그루 넘게 쓰러졌다.
벌목 강행 속에 사고 이어져
산을 평지로 만들려는 사람들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건설회사와 하청업체 직원들의 협박은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변해가고 있다. 낫이나 커터칼, 전기톱을 들고 와서 텐트를 찢고 짓밟기까지 하고 있다.
7월 29일 새벽에는 사람들이 자고 있는 성미산지킴이 텐트 바로 위에 있는 나무를 전기톱으로 잘랐고, 이를 말리던 주민이 쓰러지는 나무에 맞아 쓰러졌다. 산의 훼손을 촬영하는 주민이나 기자에게 욕을 하고, 주민의 카메라를 빼앗고 '밤길 조심하라'고 겁박까지 일삼고 있다.
8월 11일에는 새로 설치한 텐트를 설치 불가능한 상태로 훼손했고, 급기야 15일에는 술에 취한 인부가 자정이 넘은 시각에 전기톱으로 벌목을 하기도 했다. 이날 그는 이를 말리던 주민이 자신의 뒤에 서 있었음에도 전기톱을 끄지 않은 채 휘둘렀고, 그로인해 그 주민은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지금도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성미산 주민들이 지키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마을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성미산 전체의 생태공원화다. 사실 주민들의 마음은 환경을 아끼는 마음부터 내 아이의 등하굣길 안전을 지키는 일까지, 서로 온도차가 있다. 비록 온도차는 있을지언정, 주민들 중 그 누구도 성미산을 지키는 일을 중단하자고 말하지는 않는다. 내 아이들에게 좋은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당장 내 아이가 안전하게 학교 다닐 수 있게 지켜주는 일, 그것은 어른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주민들에게는 성미산이 당연히 예쁘고 소중하지만, 세상의 가치에서도 그렇게 귀한 것인지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미산은 생태적 가치가 분명하게 있는 곳이다. 성미산은 북한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생태축의 하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2001년 '생태보전시민모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미산 지역 대부분이 서울시가 구분한 비오톱(생명체들의 서식공간, biotop) 등급 중 '대상지 전체지역에 대하여 자연보호가치가 있는' 1등급에 해당된다.
이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성미산에는 서울시가 지정·고시한 보호종 가운데 오색딱따구리를 비롯해 박새, 꾀꼬리, 족제비 등 4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2009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존대상지 시민공모에서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 이곳만은 꼭 지키자'로 산림청장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생태적 가치뿐 아니라, 성미산마을공동체에게 성미산은 삶의 터전이며 마을의 구심점이며 상징이다. 성미산마을공동체는 아직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친환경'과 '대안생활' 등의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지금까지 차곡차곡 성장해왔다. 특히 2003년 성미산 배수지 공사를 막으면서 주민들은 환경과 생태에 대해서 많은 공유를 했다.
주민들에게 성미산은 단순한 뒷산이 아니다. 성미산에 홍익초중고가 들어오면 산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요, 성미산마을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이 예견된다. 실제로 성미산 서포터즈를 자청한 박원순 변호사는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공동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성미산마을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문화적 손실이 크다고 강조했다.
대안교육의 산실 그들이 마련한 터전의 가치
성미산의 가치는 이뿐이 아니다. 대안교육 진영에서 성미산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성미산 인근 주택가에는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를 비롯해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5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고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가 있다.
성미산학교와 지역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이들은 매주 산으로 '자연놀이'를 가고 생태를 관찰하며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고 그림을 그린다. 도심 속에서도 자연과 생태를 느끼며 자라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성미산이 너무 험하게 변해버려서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 산에 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공원도 없고 빡빡한 연립주택만 있는 서울시내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성미산에서 누린 자연놀이는 너무 좋은 것이었는데, 이런 활동을 지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 활발하게 교육터전으로 이용해왔던 대안교육진영의 교육터전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 이것만으로도 성미산 개발은 중지되어야 한다고 주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성미산 주민대책위는 홍익재단에 대체부지를 마련해주라고 요구하고 있다. 성미산 주민대책위도 홍익초중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존중한다. 때문에 이들이 마을주민과 더이상 갈등을 빚지 않길 바란다. 또 이들이 더이상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더 좋은 부지를 찾아 학습권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성미산대책위는 서울시교육청에 '홍익재단의 건축 이전을 승인해준 것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또 서울행정법원에 '지금 당장 공사 집행을 정지시켜달라'는 행정소송도 냈다. 아울러 서울시에는 성미산 남사면 땅을 체육시설부지에서 학교시설부지로 용도변경해준 것에 대해서 재고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는 취임사에서 밝힌 '동네 뒷산 공원화 사업'으로 성미산부터 전체 공원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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