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특채' 논란을 빚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유아무개(35)씨가 3일 자진 응모취소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야 모두 유 장관의 거취를 언급하며 이번 사태를 엄정히 따져 물을 예정인데다 이명박 대통령도 특채 경위를 파악하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는 전날(2일) 유 장관의 딸 유씨가 외교통상부 5급 사무관 특별채용에서 홀로 합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응시전형 자체가 '필기시험'이 없는 서류심사와 심층면접으로만 구성됐고, 특히 유씨가 1차 모집(7월 1일) 당시엔 '자격 미달'로 다른 응시자 7명과 함께 탈락한 바 있어 '특혜'를 입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외통부와 유 장관 본인은 이러한 특혜 논란을 적극 부인했다. 외통부는 "관계 법령에 따라 공정에 공정을 기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유 장관도 3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오히려 장관의 딸이라 더 공정하게 심사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 장관은 또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은 있다"면서도 "1차 모집 당시에도 딸만 자격이 됐었지만, 오해가 있을 수 있어 2차 모집까지 진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 장관의 해명도 사실관계에 정확히 부합하진 않았다. 유씨는 1차 모집 당시 '박사학위자' 또는 '석사학위자+유관기관 2년 이상 근무 경력' 조건은 충족시켰지만 영어시험증명서의 유효기간이 지나 '자격 미달'로 탈락했다.
또 유씨는 1차 모집 당일인 7월 1일과 17일 사이에 서류전형 요건에 해당하는 어학 성적증명서를 획득해 이를 2차 모집 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외통부가 통상 열흘인 2차 모집 원서마감 기간을 한 달로 늘린 이유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결국 유 장관은 '특혜 의혹'을 부인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기자회견을 열고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며 "딸도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공모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고용되는 것이 특혜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유 장관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은 싸늘하다. 이미 유 장관의 처사를 비판하는 누리꾼들의 글들이 외통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앞다투어 올려지면서, 오전 한때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쓴 소리' 쏟아낸 여·야, "도덕성마저 문제 있는 유명환 즉각 사퇴해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여·야를 불문하고 이번 논란을 빚은 유 장관에 대해 쓴 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일부에선 유 장관의 사퇴까지 촉구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외통부 장관의 딸을, 그것도 한 사람만 특채하는 게 공정한 사회냐"며 "이런 모든 것들이 개탄스럽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이명박 대통령식의 공정한 사회는 무엇이냐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을 고쳐 신지 말라고 했다"며 "앞으로 열릴 상임위에서 이와 관련해 엄정히 따져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특히 "이미 유 장관은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찍은 젊은이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등 정치관이 왜곡된 것은 물론, 자질과 능력마저 부족하단 것을 드러냈다"며 "이번 사태로 도덕성마저 문제가 있단 것이 드러났다,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승조 민주당 의원도 "이명박 정권은 조선시대로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 현대판 음서제도를 부활시킨 이명박 정권은 확실히 자기들이 해먹는 '끼리끼리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노천명 시인의 시 '사슴'을 인용, "구설수가 많아 슬픈 장관이여, 언제나 해놓는 일마다 말이 안 되는구나"라며 "조선시대 음서(蔭敍)를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비리 성향과 권력욕에 못된 편법취업을 시키고 먼 데 청와대를 바라본다"고 유 장관을 비꼬았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장관 딸만 특채하면서 과연 '공정한 정부'라고 할 수 있나, 특별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특별채용'도 이명박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인가"라며 "공정한 사회는 말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공정한 정부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2일 트위터를 통해 유 장관의 처사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는 "저녁식사 중 외교부 장관 딸의 특채소식을 들었다"며 "'공정한 사회'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끌어당기는 깃발인데 깃발 든 사람이 벌거벗고 있으면 사람들이 깃발을 보겠나, 몸뚱이를 보겠나, 탄식이 나올 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