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쇼! 고려인 학생들!러시아 볼고그라드 노보니꼴스편/ 첫번째 이야기
러시아에 가게 된 사연이번 방학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저 오르프 국제세미나(
한국오르프슐베르크협회 주관 오르프음악교수 지도법강좌)와
국악지도사 2급과정만 받을 생각이었다. 배움의 갈증을 이렇게 채우고 나머지 시간은 그동안 배웠던 것을 정리하는 알찬(?) 시간으로 보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러시아 단기선교 인원이 부족하단다. 청년분들 5명만 지원해달라는 간곡한 광고로 내 마음이 흔들렸다. 전부터 권사님께서 늘 한국에 오시면 러시아에 와서 타악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셨었다.
그 때마다
"기회가 되면 꼭 가겠습니다"라고 말을 내뱉었다. 이런 게 선한 부담인가? 예정에도 없던 러시아 행에 같이 간 팀원들은 먼저 한국에 들어오고 혼자서 일주일 가량 더 있다가 들어오는 일정으로 변경되었다. 더군다나 일행과 같은 일정으로 알고 있던 나는 모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 특별강좌-오르프 음악 교실강의 청탁이 들어와서 오르프 음악교사로서 일주일간의 강의가 기대가 되고 설레던 참이었다.
권사님과 통화중 "한국에서는 나를 대신할 선생님이 계시지만 러시아에서는 타악을 가르칠 교사가 없다"란 말씀에 러시아에 더 머무르기로 결정을 내렸다.
모스크바 검은 안개의 붉은 광장1시간 정도 연착하여 날아간 검은 안개 자욱한 러시아 모스크바. 러시아에서 연극공부로 유학했던 친구는
검은 안개의 붉은 광장을 보게 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고 한다.
갑작스런 산불로 도시전체가 검은 연기 가득해 모스크바에 어렵게 도착하였다. 한국에서 사간 방독마스크를 쓰고 쾌쾌한 나무 타는 냄새가 가득한 모스크바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를 타고자 서둘러 수속을 밟았다. 연착으로 인해 다음 비행기 탑승이 걱정이었으나 순조롭게 13명의 대원들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임무는 사물놀이팀을 위한 북 나르기, 이 북을 안전하게 노보니꼴스까지 잘 운반 할 수 있도록 모두들 한 손에는 악기를 지참하여 운반 중이었다. 잘못하면 보따리 장수로 여겨 심한 과태료를 지불할 상황도 있었지만 다행히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즈드라스트부이쩨!(안녕!) 노보니꼴스!
새벽 1시, 볼고그라드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고려인들과 장로님께서 함박웃음을 짓고 눈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분들이 있다니 이 땅이 낯설지가 않다. 꼭 고향에 온 것 같다. 길가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오래된 벤츠 버스. 정말 국보급 버스다. 벤츠라서 놀라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에 할아버지가 탔을 만큼 이 낡은 버스는 시골길을 2시간이나 달려 노보니꼴스까지 데려다 주었다.
울퉁불퉁 시골길을 쾌쾌한 냄새 가득한 버스 안에서 불편치만 안락한 단잠에 모두들 빠져 들었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모스크바 공기와 사뭇 다른 상쾌하고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노보니꼴스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온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는 어린이, 어르신들, 모두들 짐가방을 들어주며 먼 여정에서 수고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짐가방과 선물 보따리를 대강 풀고 내일 점심때부터 있을 행사를 위해 잠을 청했다.
아침 9시 기상!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밖을 둘러보니 벌써부터 몰려든 아이들이 삼삼오오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눈이 파란 예쁜 어린이들, 우리와 생김새가 같은 고려인 학생들. 그 중 한 학생이 러시아어로 중얼거린다. 알고 보니 언제 들어갈 수 있냐고 물어보는 거란다. 우리만큼 이 날을 기다린 학생들은 밖에서 놀기가 지루했나 보다. 점심 후에나 행사가 진행되는데 급 수정하여 빨리 열기로 했다. 예상한 시간보다 한 시간 앞서 오픈 했기에 없던 프로그램을 넣어야 할 상황이다.
내게 기회가 왔다. 행사 3일중에 음악시간 배정이 생각보다 적었던 내게 이 시간을 진행해달란 요청이 들어왔다. 지난 겨울에 갔던 아프리카 초등학교 수업에서 히트를 불러일으킨 '에뽀이 따이 따이에' 노래와 손 놀이, 간단한 포크댄스로 몸을 푼 뒤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하나가 되어 우린 노래하고 춤추며 게임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을잔치
고려인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어린이, 마을 주민 모두들 함께한 자리. 아이들은 게임, 태권도, 포크댄스, 노래 등을 배우며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반면 어른들은 동그랗게 뒤에 앉아 아이들이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즐겼다. 무더운 여름날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정성스레 만든 잔치에 좀처럼 모일일 없는 이곳 노보니꼴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았다.
어떤 분은 손을 잡으시며
"유치원도 없는 이곳에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참 감사해요"라고 말하셔셔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배움에 목말라하고 배움에 감사할 줄 아는 그분들이 안타깝기도 하면서 이곳에 오길 참 잘 했다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시끌벅적한 3일이 지나고 12명의 대원들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비행기가 새벽에 있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3시까지 자지 않고 여정을 지켜준 아이들, 잠깐 눈을 붙이고 12시경에 찾은 아이들, 가보지 않은 나라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감사하게 여기며 내년에 올 것을 약속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다시 오겠노라 약속하며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찾아온 손님을 맞이할 줄 알고 아낌없이 사랑을 보여준 노보니꼴스 마을 주민과 어린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들은 떠나고 내겐 새로운 시작이다. 앞으로 있을 '오르프 음악교실', 사물놀이팀과 함께하는 '한국음악 교실' 걱정 반 설렘 반. 그런데 내 가슴 속에서 무언가 쿵닥 쿵닥 소리가 난다.
# 기다림의 전염병"러시아의 작은 마을 노보니꼴쓰꼬예를 다녀온 우리는 아픕니다. 모두 전염병에 걸려 돌아왔습니다. 기다림의 전염병.
눈물의 이별을 나눈 뒤 '우정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볼고그라드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알았습니다. 우리를 배웅해준 아이들이 헤어짐의 포옹을 통해 우리를 확실하게 전염시켰다는 사실을... 우리도 이제 기다림에 전염되었던 것입니다. 1년 내내 기다림을 마음에 안고 살던 그들이 불과 사흘만에 우리를 자신들과 동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 온지 1주일이 지났는데도 우리의 마음에는 노보니꼴쓰꼬예 아이들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 남은 아이들과 한국에 돌아온 우리 모두 서로에 대한 기다림의 씨앗을 잘 가꾸어 1년 후에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만나길 기도드립니다. (이제우 청년 후기) 덧붙이는 글 | 2010.8.8~8.21 러시아 볼고그라드의 작은마을 노보니꼴스에서의 오르프 음악교육과 어린이 사물놀이팀을 지도한 여행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