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지하철 안에서 책을 열심히 읽는 한 승객을 보았다. 그가 읽고 있던 책은 네트워크 마케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만화로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자마자 몇 년 전 겪었던 다소 황당한 일이 생각났다. 그렇게 좋아 보이던 '네트워크 마케팅' 세계에 발을 들일 뻔한 그 일은 어느날 나와 친하게 지내던 학생회 선배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 나를 취업시켜 준다고?
학생회 활동을 하다 그만둔 뒤 학생회 사람들과 거의 연락을 하지 않던 2005년 어느 날, 한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풍물패에서 활동할 때 단과대학 편집부에서 활동하던 선배였는데,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것 때문에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나 보다 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 선배는 자기가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이미 그 사람이랑 약속을 잡아놨으니까 내일 어디로 나오라고 얘기했다. 뭔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 선배는 이상한 종교에 빠질 사람도, 이상한 모임에 가입할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냥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선배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런데 정말 편한 복장으로 나갔던 나와 달리, 그 선배는 정장을 차려 입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서 물어보려는데 그 선배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나 요즘 회사 다니는데 거기 니 소개시켜주고 싶어서 오라고 했다."
안 그래도 졸업은 다가오고 취업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찰나, 선배가 해준 이 말이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혹시나 이상한 게 아닌가 싶어 의심했던 게 미안해졌다. 이대로라면 나도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선배가 일하는 곳으로 같이 들어갔다.
네트워크 마케팅, 듣다 보니 괜찮은데?
그런데 이 곳, 뭔가 이상했다.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이 짝을 이루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무슨 상담원 교육하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나가고 싶었지만, 그걸 말할 새도 없이 나는 선배와 함께 회사 안에 있는 빈 탁자 앞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됐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선배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한 여자분을 보고 인사를 했다. 그분은 내 맞은 편에 앉았고, 선배는 내 오른쪽에 앉았다.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고 그냥 눈치만 보고 있는데, 그 여자분이 말을 시작했고 선배는 함께 맞장구를 쳐주었다.
거의 20분 정도를 들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이랬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우리가 좋은 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주는 걸 마케팅 기법에 적용한 것이다. 흔히들 '다단계'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다단계는 불법이지만 네트워크 마케팅은 합법이다. 나를 포함해서 단 세 명만 있으면 자회사의 물건 몇 개만 사도 돈을 쉽게 벌 수 있다."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 여자분은 다른 탁자로 갔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후 나는 똑같은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서 몇 번 더 들어야 했다. 네트워크 마케팅으로 돈을 벌어서 유명 대학교를 사겠다는 젊은 여자분도 있었고, 다른 사업을 하다가 이 일을 했는데 정말 수익이 좋더라는 중년 남자분도 있었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기에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마치 똑같은 대본을 보고 외운 것 같았다. 자기도 처음에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하다보니 정말 돈을 잘 벌 수 있었다고. 내가 해보니 너무 좋으니까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거라고.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이렇게 하면 정말 돈을 잘 벌 수 있겠다 싶었다. 두 사람만 구하면 되는데 뭐가 어려운가. 거기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선배가 그 회사에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내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고 하면서 다음날 다시 보자고 했고, 나는 함께 간 선배와 함께 좋은 기분으로 돌아왔다.
사람이 돈으로 보이는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내 주위의 사람들이 전부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날 설명을 들은 게 떠오르면서 기분이 좋았는데, 조금 있으니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같은 게 하나도 안 보이고 오로지 내 돈벌이 수단이라는 생각만 드는 것이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그 순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약속은 잡혀 있었고, 선배가 정말 바쁜 사람인데 나한테 소개시켜주는 거라고 했기 때문에, 그 선배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나는 그 곳에 가야했다.
그렇게 그 곳에 두 번째로 갔다. 여전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다 네트워크 마케팅이 좋다고, 자기가 좋으니까 나한테 소개해주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고 나니 그 사람들 말이 전부 다 거짓말로 들렸다. 심지어 그날은 제일 최고 등급에 있는 한 사람이 와서 같은 이야기를 해 주는데, 전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선배에게 도저히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선배는 이미 약속이 잡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무조건 와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오지 않으면 자기 이미지는 물론, 내 이미지도 정말 안 좋아질 거라고 하면서, 내일 하고 싶은지 여부를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다. 내일 오지 않을 거라 말하면 된다니, 정말 복음이 따로 없었다. 이틀 동안 들었던 그 지긋지긋한 이야기들로부터 해방이라니.
3일간의 지옥, 그것은 '다단계'였다
드디어 마지막 날, 난 또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하지만 이젠 대놓고 듣기 싫은 척을 해버렸다. 나를 데리고 왔던 그 선배가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얘기하지 않았다. 처음의 그 여자분을 만나면 대놓고 이야기하려고 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날 만났던 그 여자분이 와서 물었다.
"어떠셨어요? 이거 해 보실 생각 있으세요?"
"아니오."
내 대답에 그 여자분은 물론 함께 있었던 선배도 놀랐다. 시종일관 나를 웃으면서 대하던 그 여자분은 갑자기 싸늘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안 하고 싶냐고 물었다.
"이런 식으로, 꼭 지금 돈을 벌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럼 돈을 안 벌고 싶다는 말씀인가요?"
"그게 꼭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돈 버는 것에도 크게 관심은 없고요."
"그럼 평생 돈을 안 벌고 사실 생각이세요? 이렇게 괜찮은 방법이 있는데?"
그 여자분은 계속 나를 설득하려 했다. 사실 내 얘기는 크게 논리적이지 않았기에, 정신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난 정말 이거 하기 싫다'라는 이야기만 했고, 그 여자분도 포기했는지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내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3일 동안의 '지옥'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그 후 내게 연락을 했던 선배와, 그 곳에서 만난 다른 선배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를 데리고 갔던 그 선배는 집에 일이 생겨서 휴학을 했고, 다른 선배는 군대를 갔다는 소식을 한 번 들었을 뿐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 TV 프로그램에서 대학생을 다단계 판매에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크게 다루었다. 아무래도 그 때 경험도 있고 해서 그 프로그램을 유심히 보는데, 맙소사, 내가 3일동안 경험했던 게 바로 그 다단계였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에서 해당 회사 이름을 검색해 보니 피해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성급하게 첫 날 결정을 했더라면, 사람이 돈으로 보이는 그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는데, 잠깐이지만 내 정신까지도 흩뜨려 놓았던 다단계의 경험. 덕분에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더 이상 혹하게 되진 않았으니 그 선배와의, 그리고 다단계와의 잘못된 만남이 어쩌면 내게 더 잘 된건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그 선배들은 여전히 다단계의 늪 속에 살고 있으려나…연락이 된다면 다시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데. 만약 아직 그 곳에 있다면, 그 선배들도 어떤 계기로든 그 곳에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 곳에 빠진 사람 모두가 제발 빠져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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