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번 9·11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1차 국민행동'이 도심권 대규모 집회 시위로 확산되어 공공질서를 위협할 것이 명백하고…."
오는 11일 '4대강 공사 중단을 위한 10만 국민행동 대표자협의회(이하 국민행동)'가 열려는 국민대회 집회 허가 요청에 대한 종로경찰서 답변 중 일부다. 경찰은 최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5조 1항2호 등을 근거로 국민행동 측에 집회 불허를 통보했다.
이에 따라 경찰이 자의적인 해석으로 집시법의 근본 취지는 물론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한 사회'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경찰, 집회는 인적없는 한적한 곳에서 해라?
경찰은 최근 국민대회 집회 불허를 통보하면서 그 근거로 집시법 제5조 1항2호, 제12조 1항 등을 들었다.
4대강 공사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국민대회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집시법 제5조 1항2호)라고 단정 또는 예단한 것이다.
집시법 제12조 1항은 "관할 경찰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하여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환경정의, 생태지평연구소, 환경연합 등 국민행동의 주요 단체들은 지난 3일 광화문광장, 광화문4거리~보신각 양쪽 인도에 대해 집회 신고를 냈다. 그러나 경찰은 오는 11일 광화문 광장 일대는 물론 4대문 안 모든 인도와 도로에 대해 집회 불허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찰은 국민행동 측에 보낸 답변서에서 "주요도시의 주요도로는 차도 뿐 아니라 인도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집시법 제12조 '교통소통방해'는 도로상 소통 뿐 아니라 인도상 소통에 방해될 우려가 있을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했다.
대부분 인도에서 치러지는 행사를 두고 "주변도로의 교통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는 근거를 든 것이다. 경찰은 또 "귀 단체에서 신고한 장소는 평소 일반시민들이 왕래가 많은 곳으로서 장기간 동안 집회개최시 일반시민의 인도상 통행 및 차량의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될 것이 명백하다"고 예단했다.
경찰의 설명대로라면 집회는 "일반시민의 왕래가 많은 곳"을 피해 일반시민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개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제1조)한다는 집시법의 근본 취지는 물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제21조)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을 무시한 발상이다.
"스키점프대회는 되고, 4대강 반대 국민대회는 안 되고?"
이에 국민행동 소속 회원 50여명은 7일 광화문 광장에서 '9·11 4대강 국민대회 불허 규탄 및 광화문 광장 개방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2010년 대한민국의 광장과 민주주의는 청와대와 경찰의 자의적인 법 해석 안에서만 존재하는 서글픈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우리는 청와대와 대한민국 경찰에게 묻는다. 이번 국민대회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어떻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며, 또 무엇이 '명백'하다는 것인가? 서울시의 홍보성 행사인 스키점프대회나 드라마촬영은 교통 체증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에서 가능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광장이며, 무엇을 위한 광장인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집회는 무조건 안 된다는 원칙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이들은 이어 "9월 11일 국민대회를 합법적이고 평화적으로 치를 것을 분명히 밝히며, 광장이 열릴 때까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며 "4대강은 그 곳에 깃든 생명에 돌려줘야하며, 광장은 민주주의 정신에 남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실 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광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것도, 오세훈 서울시장의 것도 아니다"며 "온 국민이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를 꽃피우는 민주주의의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게 공정한 사회이고, 이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문한 뒤, "공공의 질서를 위협하는 자는 바로 국민적 합의도 없이 수십 조 원의 혈세를 쏟아 부으며 4대강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이 끝까지 집회를 불허할 경우 경찰의 집회 불허 집행을 정지하는 '행정처분집행정지' 신청을 낼 수밖에 없다"며 "(법원의 집회 허가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차벽 등으로 방해를 할 경우 추후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국민행동은 서울시장과 경찰청장의 면담을 신청한 상태이며, 제 정당과 서울시의회를 통한 집회 허가 요청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들은 또 서울행정법원에 '옥외집회 금지 통고처분 취소' 청구, 국가인권위 제소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특히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조차 무분별한 공권력 남용으로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민행동 측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마지막으로 구호를 외치겠다"면서 팔을 들어 올리자마자, 옆에 있던 종로경찰서 김아무개 경비과장이 확성기를 들고 해산을 요구한 것.
국민행동 회원들은 예정돼 있던 구호 세 개를 모두 외쳤지만, 김아무개 경비과장은 그 와중에도 "지금 즉시 불법 집회를 자진해산하라"고 경고 방송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이 다시 한 번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들의 기자회견을 순식간에 불법 집회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분개한 국민행동측의 한 회원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자회견도 맘대로 못하나, 이명박은 청와대에서 매일 기자회견 하지 않느냐"고 항변했고, 국민행동 측은 항의 뜻으로 세 개의 구호를 다시 외쳤다. 경찰의 섣부른 판단과 행동이 오히려 이날 기자회견의 시간을 연장시킨 셈이 됐다.
한편 국민행동은 이날 '9·11 국민대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국민행동은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보신각까지 대대적인 인간띠잇기를 제안한다"며 "10만 국민의 촛불이라면 불통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막아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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