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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 겉표지
<여왕벌>겉표지 ⓒ 시공사
"그녀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자는 죽을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만한 여자라면 아마도 '팜므 파탈'이 연상될 것이다. 남성을 압도하는 강인한 매력으로 접근하는 남자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여성.

팜므 파탈은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남자들은 질투에 눈이 뒤집혀서 서로 난투극을 벌이다가 자멸할지도 모른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1973년 작품 <여왕벌>(시공사 펴냄)의 주인공인 다이도지 도모코도 그런 여성으로 묘사된다. 작품 속에서 18세 생일을 맞는 도모코는 팜므 파탈하면 떠오르는 요부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청순가련형의 미인이라고 해야 어울릴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왜 남자들을 죽게 할까.

월금도를 떠나는 18세의 도모코

<여왕벌>은 일본의 작은 섬 월금도에서 시작된다. 도모코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죽었다. 도모코의 어머니도 그녀가 5살 때 세상을 떠난다. 그 후로 도모코는 할머니와 가정교사의 손에서 성장한다. 어찌 보면 도모코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동반해온 것이다.

곧 만 18세가 되는 도모코의 외모는 어디에도 비할 바가 없을 정도다. 도모코의 얼굴은 일본풍이면서도 현대적으로 보인다. 오똑한 코에 얼굴은 희고 갸름하지만 양 볼의 보조개에는 애교가 넘친다.

외모만 돋보이는 것이 아니다. 가정교사인 히데코는 도모코가 총명하면서 분별력있는 여성으로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도모코가 아름답고 품격있으면서 여왕처럼 위엄이 가득 찬 여성이 된 것은 전적으로 히데코의 정성 덕분이다.

도모코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서 만 18세가 되면 섬을 떠나 도쿄로 가기도 되어 있다. 도쿄에 있는 양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서 적당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평생동안 살아온 작은 섬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월금도에는 도모코가 교제를 할 만한 젊은 남자도 거의 없다. 세상과 남자를 모르고 살아온 도모코에게 제 2의 인생이 펼쳐지는 셈이다.

문제는 도모코가 섬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도쿄에 있는 도모코의 양아버지 다이도지 긴조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발신자의 이름도 없고 글씨는 신문의 활자를 잘라서 붙인 편지다. 그 편지의 필자는 '그녀는 여왕벌이다. 접근하는 남자를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할 운명이다'라며 도모코에게 섬을 떠나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다이도지 긴조는 수상한 편지를 받고 사립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이 사건을 의뢰한다. 코스케는 사건을 의뢰받고 월금도로 떠나고 도모코를 수행해서 육지에 도착한다. 그러자 경고문처럼 실제로 도모코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이 한 명씩 목숨을 잃기 시작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남자들을 살해할까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소년 탐정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의 할아버지로도 유명하다. 코스케도 도모코의 매력에 반한다. 도모코는 고상하고 위엄에 차 있으면서도 사향고양이처럼 전신에서 성적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하긴 작은 섬에만 갇혀 살아 왔으니 본인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지 자신도 모를 것이다.

코스케는 그녀에게 흐르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면서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그녀의 매력이 남자를 죽음으로 이끈다기 보다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누군가가 연쇄살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모코도 처음에는 대범하게 맞서지만 살인이 반복되자 의연함을 잃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흉성의 요기를 받아서 불행해진다'라고 말한다. 자신은 불행한 별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이다.

남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당신을 지켜주겠다'며 도모코의 곁으로 더욱 다가오는 남자도 있다. 도모코의 별이 흉성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별의 기운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흉성의 요기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도모코는 그런 남자에게 더 끌릴 것이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 법이니까.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주위를 압도하는 성적매력을 타고난다는 것도 좋은 일일까. 실제로 그런 이성이 주위에 나타나더라도 그다지 반갑지 않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여왕벌>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정명원 옮김. 시공사 펴냄.



여왕벌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시공사(2010)


#여왕벌#긴다이치 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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