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하는 나는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에서 논다. 봄비에 씻긴 성벽이 물오르는 숲 사이로 뻗어 계곡을 건너고 능선 위로 굽이쳤다. 먼 성벽이 하늘에 닿아서 선명했고, 성 안에 봄빛이 자글거렸다. 나는 만날 놀았다." (하는 말'에서)장편소설 <남한산성>(김훈/학고재)은 작가 김훈이 남한산성 그 옛터에서 자전거 타고 놀다가(?) 그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작가는 갇힌 성 안에서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을 읽었고 인조임금이 서문으로 나와 삼전도에서 청에 투항한 역사를 더듬어보면서 쓰게 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마음도 내내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학고재)은 병자호란 때 즉 1636년(인조 14년)12월 4일부터 1637년 1월 30일(음력)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딘 이야기다. 청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진격해 올 때 어쩔 수 없이 강화도로 다시 피신하다가 길이 막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임금과 대신들, 청은 계속 복속을 요구하지만 인조는 그것을 거부한 채 남한산성에 틀어박혀 싸울 수도 항복할 수도 없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고립무원 속에 있다.
힘없는 나라의 치욕과 굴욕을 견뎌야 하는 임금과 백성들이 처한 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불리해져 간다. 결국 청의 예견대로 남한산성은 스스로 무너지고 스스로 항복하고 성문을 연다. 삶과 죽음이 따로 없는 처절한 견딤의 시간들...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나와 삼전도에서 <칸>에 항복하기까지 그 견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남한산성에 있어야했다. 남한산성의 지세는 위기에 처한 나라의 운명과 너무나 닮아있다.
"성의 지세가 물을 두르고 산에 기댄 장풍국이라고는 하나, 규국이 작아서 품이 좁고, 안팎으로 통하는 길이 멀고 외가닥이어서 한 번 막히면 갇혀서 뚫고 나가기가 어려우며 아군이 성문을 닫아걸고 성첩을 지키면 멀리서 깊이 들어와 피곤한 적병이 강가의 너른 들에서 진을 치고 앉아 힘을 회복할 수 있고, 성 밑이 가팔라서 안에서 웅크리고 견딜 수는 있으나 나아가 칠 수가 없으며 좌우가 막히고 가운데가 열려 적이 열린 곳을 막으면 목이 눌리고, 목이 눌리면 안팎이 통하지 못하여 원군을 불러서 부릴 수가 없으며... 병서에 이른 대로, 막히면 뚫기가 어려워서 멀리 도모할 수 없고, 웅크리고 견딜 수는 있으나 나아가 칠 수 없으므로 움직이면 해롭고 시간과 더불어 말라가니 버틸수록 약해져서 움직이지 않아도 해롭고, 버티고 견디려면 트인 곳을 막아야 하는데 트인 곳을 막으면 안이 또한 막혀서 적을 막으면 내가 나에게 막히게 되니 막으면 갇히고, 갇혀서 마르며 말라서 시들과 적이 이 강을 차지하니 물이 적의 쪽으로 흐르고 안이 먼저 마르니 시간이 적의 편으로 흐르는 땅이 바로 여기라..."(p35)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 고통당하는 민초들의 처절한 삶, 삶과 죽음이 따로 없는 성 안과 밖,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할 길 사이에서 남한산성에서 숨죽인 채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어야했던 임금, 성문을 열고 나가 항복해야 한다고, 굴욕과 치욕에도 항복하고 살아야한다는 쪽과 버티고 지키고 견뎌야한다는 엇갈린 대신들의 말과 말의 싸움과 싸움들, 삶이 곧 죽음과 다르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민초들은 산목숨을 부지한다.
결국 스스로 무너질 때를 기다리던 청의 기대대로 성문을 열고 세자와 함께 <칸>에게로 나아가 치욕스러운 항복을 할 수 밖에 없는 임금, 삶의 길은 밖으로 나 있기에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살아내야 하는. 책을 다 읽고 덮은 채로 앉아 있어도 깊은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다. 남한산성 그 고립무원에 갇혀있던 임금과 대신들, 그리고 민초들의 치욕스러운 나날들에 느꼈을 깊은 속울음일까.
작가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베고 베었다면, <남한산성>에서는 버틸 때까지 버티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낼 수 없을 때까지 견디어 낸 이야기이다. 마치 소설 속 '사관'이 그날그날 역사의 나날을 기록하듯, 객관적인 시선으로 간결하고 명료하게 썼다.
작가 김훈은 삶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버틸 수 없는 것을 버티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울러 그 어떤 굴욕과 수치 속에서도 삶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희망 없이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졌느냐 이겼느냐를 따지는 현실적 인식보다 더 고귀한 것, 그것은 기어코 살아내야 한다는 삶의 의지'라고 어느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던가.
작가의 언어 속에서 기어코 살아내야 하기에 엎드려서 견디어 냈던 시간, 고통스러웠던 작가의 시간의 파편들이 만져진다. 그의 삶의 지문이 묻어난다. 혹독한 시대를 견디어 낸 숨죽인 시간들... 그 시대의 터널을 건너온 작가의 고백은 담담하게 남한산성에 펼쳐놓았다.
김훈의 문장은 수식하는 수사가 적다. 지극히 아낀다. 수다스럽지 않고 치장이 없다. 칼끝으로 조각하듯 날카롭고 건조하게 쓴다. 모든 군더더기를 잘라낸다. 벼린 듯 쓴 그의 언어는 나목처럼 고즈넉하다. 정으로 돌을 깨고 또 깨서 조탁한 언어의 묘미 그 특유의 문체를 통해 남한산성을 만났다. 그 여운은 길다. 지금도 내 마음 남한산성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책: <남한산성>(역사소설)
출판: 학고재/2007년
가격: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