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10일) 군산 은파관광지 야외무대에서 열린 '2010 군산 희망복지 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구경하러 갔던 게 아니고, 군산시의 초청으로 참가한 '나포 십자뜰 풍물패'의 북잡이가 되어 공연을 했지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저는 2년 전 고향으로 이사하면서 다짐한 게 있습니다. 활동하던 단체에 재가입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첫째는 과음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경제적인 문제, 세 번째는 시간문제였습니다. 마음이라도 여유를 갖고 공부도 하고, 글을 쓰면서 보내고 싶었거든요.
그렇다고 배꼽 친구들끼리 했던 부부 친목계와 작가협회, 중고등학교 동창회를 아주 외면한 것은 아닙니다. 단체 활동만 안 하지, 친구나 동창 집안 경조사 때 만나서 안부도 묻고 술도 한 잔씩 마시면서 회포를 푸니까요.
'나포 십자뜰 풍물패'에 가입하다절기(節氣)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지난 5월 6일이었습니다. 시장에 가려고 면사무소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풍물 기초반 회원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보였습니다. 입에서 '이거구나!' 소리가 나오더군요.
작년 8월15일 광복절이자 나포 면민의 날 행사 때 풍물패에서 장구를 치던 마을 슈퍼마켓 주인아저씨가 생각났습니다. 해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슈퍼에 들렀더니 날짜는 지났지만, 면사무소 강당으로 가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강당에 들어서니까 40대~60대로 보이는 아저씨·아주머니 몇 분이 박영이 강사의 지도로 원을 그리며 풍물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요. 연습이지만, 꽹과리, 징, 장구, 북이 어우러지며 내는 소리가 가슴으로 파고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낯선 사람이 들어가니까 연습을 중단하더군요. 08년 8월 31일 기사 '아내는 심부름을 해도 직책은 부사장'의 주인공 '부사장'님이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면서 주위 분들에게 소개해주더군요. 고마웠습니다.
인사를 하고 강사에게 꽹과리를 배우러 왔다니까 장구부터 시작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꽹과리는 따로 개인지도를 받아야 한다더군요. 다른 분들도 장구가 손에 익숙해지면 꽹과리 배우기가 쉽다고 해서 강사의 권유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꽹과리는 비용이 많이 드는데 장구는 교습비가 없고, 한 달에 회비 1만 원씩만 내면 된다고 해서 아내와 상의할 것도 없이 등록을 마쳤는데요.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겠다는 저와의 약속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등록 24일 만에 풍물패 되다 등록하던 첫날은 회원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만 하다가 왔지만, 둘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습에 참여했습니다. 장구의 궁편과 열편을 강사가 알려주는 대로 두드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궁채와 열채를 구별해서 치기도 어려웠습니다.
강사가 열심히 하라며 '호남 우도 가락보'를 복사해서 주는데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머릿굿, 입장굿, 머릿가락, 양산도, 삼채는 기본이고, 우질굿으로 시작하는 첫째 마당, 오방진으로 시작하는 둘째 마당, 굿거리로 시작하는 셋째 마당 가락을 모두 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연습하는데요. 일주일 배우러 다니다 어렵고 힘들어서 그만두었다는 지인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나이, 체면 생각지 않고 물어보면서 열심히 연습했지요.
열흘쯤 지났을까요. 일찍 저녁을 먹고 나갔는데 그날은 손이 잘 맞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감각이 좋다는 칭찬도 들었지요. 자신이 사용하던 궁채와 열채를 주며 헌 상자를 구해서 집에서도 연습해보라던 아주머니도 진도가 엄청 빠르다며 부러워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어깨가 으슥해지면서도 쑥스럽더군요.
연습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총무님이 이웃 마을 식품점이 5월30일 개업하는데 복을 빌고 잡신 몰아내는 풍물굿을 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고 기뻐하면서도 인원이 한두 명 모자랄 것 같다며 걱정했습니다.
이런저런 의견이 오갔는데요. 강사가 저에게 키도 크고 체격이 좋으셔서 북을 힘차게 잘 치실 것 같은데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묻더군요. 다른 분들도 잘 치실 거라며 비행기를 태웠습니다. 호기심이 동하더군요. 나쁠 것도 없겠기에 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정하고 풍물굿 할 때 입을 치복과 고깔을 구입하니까 가슴이 설레더군요. 온 힘을 다해 연습으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손발이 맞는 것 같아 따라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드디어 이웃마을 식품점 개업하는 날, 일행들과 개업 집에 도착하니까 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상위에서 웃고 있는 돼지가 가장 먼저 환영했습니다. 업소의 번창을 기원하면서 풍물굿을 한바탕 벌였지요. 가족들이 모두 돼지머리에 절을 하더군요.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끝날 때까지 두 손을 모으고 빌었습니다.
앞마당에서 공연을 마치고 창고와 뒤뜰, 부엌 등을 다니며 잡귀를 쫓아내고 나오니까 박수소리가 요란하더군요. 여기저기에서 "돈도 많이 벌고 부자 되세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개업하는 집에 뭔가를 해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첫 공연은 은파관광지 무대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난 7월 초였습니다. 하루는 연습이 끝나고 총무님이 9월10일 은파관광지에서 열리는 '2010 군산 희망복지 박람회' 행사에 초청을 받았는데 출연료도 준다고 했다면서 기뻐하더군요. 저도 나포 풍물패의 일원으로 참석해서 북을 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얘기했습니다.
강사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빠지지 말라고 하더군요. 북에 너무 치중하면 장구 배우기가 늦어질 것 같아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기꺼이 응했습니다. 8월에 몇 차례 빠지기는 했지만, 연습을 그만큼 열심히 했지요.
지난 10일에는 그동안 갈고닦은 재주를 수많은 관객이 모인 군산 은파관광지 무대에서 뽐냈습니다. 발림 동작도 제대로 못 하는 저는 맨 뒤에서 눈치껏 장단을 맞추며 따라다니느라 바빴습니다. 하지만, "얼씨구! 나포 풍물팀 잘헌다!" 소리를 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보람을 느낍니다.
공연 시간은 15분쯤 걸렸는데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두 달 넘게 연습했습니다. 장구든 북이든 풍물은 여간 힘든 운동이 아닙니다. 맺음 가락 마지막을 치면서 객석을 향해 인사할 때는 구슬땀이 흐르니까요. 그래도 해냈다는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합니다.
풍물 공연은 상쇠를 따라 달팽이 모양이나 태극 모양으로 돌면서 흥을 돋우는데요. 박자가 틀리는 것은 다반사이고, 발림 동작에서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돌고, 둘로 갈라질 때 누구 뒤를 따라야 하는지 몰라 헤매기도 합니다. 웃기지요.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습니다.
내일부터는 북채를 놓고, 다시 장구를 배웁니다. 장구의 신명 나는 소리는 앉아서 근심하던 사람도 어깨춤을 추게 하지요. 코흘리개 시절부터 호감이 갔고, 배우고 싶었던 장구를 열심히 배워서 글도 맑고 신명 나게 쓰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