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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대학의 수시 전형 경쟁률
한 대학의 수시 전형 경쟁률 ⓒ

오늘은 왠지 기분이 우울하다. 뭔가 털렸을 때의 기분이다. 매년 반복되는 폭발적인 수시 경쟁률을 보면서 70만 수험생과 그 학부모들의 애절함을 보면,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서글픔이 몰려 온다. 칼 자루를 쥐고 있는 대학에서는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우려먹기 식으로 경쟁률 올리기에 급급하고 있다. 한 예로 1,436명을 모집하는데 자그만치 6만 하고도 8천명이 지원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

8만 원씩 전형료를 받으면 54억 4천만 원이 걷힌다. 한방에. 한 대학이 이럴진대 그 수많은 대학에 흘러들어가는 학부모들의 피같은 돈 돈 돈들! 실낱같은 가능성을 바라고 계란으로 바위를 때리지만 그 모두가 바위치는 사람의 책임이 되는 대한민국의 입시 현실!  정말 괴롭다. 스포츠 경기는 체급을 맞추어 싸우기 때문에 공평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학입시라는 게임은 칼자루를 쥔 사람 마음대로 요리를 해대는데 누가 당하랴!

황당한 게 또 있다. 논술을 본다고 하지만, 절반을 수능 성적을 가지고 우선 선발을 한다. 그러니 대학은 수시라고 하는 명패만 내걸었지 정작 수능으로 아이들을 뽑는 것이다. 절반이 우선선발이라면 그 나머지 절반도 수능에서 2등급 2개가 나와야 한다. 적어도 수도권의 열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은 모두 수능최저학력 기준이 2등급 2개이다. 이건 그렇다 치자.

또 6만 8천장의 논술 답안지를 어떻게 채점할까? 학부모들이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허공에 주먹질이라도 해댈 것이다. 180분 동안 쓴 학생의 답안지를 몇 분에 채점할까? 한 학생의 인생이 걸린 논술 답안지를 적어도 20분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68,000장 곱하기 20분 하면 총 132만분이라는 시간이 나온다. 한시간이 60분이니 132만분을 60으로 나누면 22,000시간이다. 이게 도대체 며칠인가? 논술 채점을 하루 8시간 꼬박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여튼 하루 8시간으로 잡으면 22,000 나누기 8 하면 2,750일이 걸린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야 하는지 따져보자. 한사람이 채점하면 2750일이 걸리고 10사람이 채점하면 275일이 걸리고 100명이 채점해야 27.5일 즉, 일요일 빼고 100명이 매달려야 한달에 채점이 끝나는 것이다. 열흘에 끝내려면 300명의 교수님들이 매달려야 채점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야하나. 우리 아이들의 답안지가 어느 아르바이트 학생의 손에 내팽겨치지는 건 아닌지 서럽다.

이제 그만하고 오늘의 논술 문제를 풀어보자. 가라앉히고.

[문제] 제시문 <가>와 <나>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담고 있다. 두 견해의 차이를 밝히고, 각 견해의 근거를 논술하시오.(201자 이상 300자 이하: 20점)

<가>
현재 세계는 지구 온난화, 전 세계 중산층의 폭발적 부상, 급속한 인구 증가가 한데 결합하여 지구를 위협할 정도로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에너지 공급원이 감소하고, 멸종하는 동식물이 증가하며, 에너지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석유 독재가 강화되었으며 기후 변화는 가속화하고 있다. 이렇게 뒤섞인 세계적 추세에 인류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21세기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의 삶의 질이 상당 부분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보다 깨끗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 에너지원 윤리를 창출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명칭은 '코드 그린(Code Green)'이다. 지구온난화의 문제는 미래 사회의 투자 수익과 성장을 위해 모두가 도전해볼 만한 어마어마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와 맞먹는 규모의 경제적 변화를 찾아보려면 산업혁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
현재 지구가 처한 곤경을 악한 세력, 즉 개인적인 제물 쌓기에 열심인, 음흉한 경제계 거물이 빚어낸 작품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경쟁을 우선적인 가치로 삼는 세계 속에서 기업의 거대한 성장을 위해 삶의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 부은 부지런한 자본자에게 보상을 하는 체계가 빚어낸 자연스런 산물이다. 현재 전 지구가 처한 곤경을 '나쁜' 기업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기업가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윤과 더불어 사람과 자연의 복리(well-being)도 고려하는, 이른바 지속가능 경영의 3대 축, 즉 경제, 사회, 환경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녹색' 자본가들의 노력은 영구작동기계를 만들려는 노력과 마찬가지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세 가지 목적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현 경제체제가 자신의 기초를 침식해가다가 결국 생태계 붕괴 및 자원 고갈과 함께 무너져 내린 뒤 새로운 녹색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도 나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바로 현 체제의 놀라운 적응력 때문이다.

수험생들이 처음 <가>와 <나>를 읽으면서 갖는 느낌은 두 글이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담고 있다고 하였으니, 다시 한번 자세히 읽어 본다. 그러고는 생각하기를 <가>는 지구의 문제를 기반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나가자는 이야기고 <나>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답을 쓰는데

<가>는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하나의 기회로 생각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해결하는 시스템, 에너지원, 윤리 등을 창출하는 일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가>가 사태해결에 적극적이라면 <나>는 매우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다. 경제, 사회, 환경이라는 세가지 축은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갈등 속에서도 굴러갈 뿐이다. 선한 기업가나 녹색 자본가가 나타나서 현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기대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실패할 뿐이다.

이렇게 쓰지만, 이 답속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수험생들이 찾아보기 바란다. 선생님은 그 결함을 댓글에 달 것이다.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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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재훈입니다. 선생님 노릇하기 녹록하지 않은 요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메세지를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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