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 항의 농성도 하고 일주일 한 번 모임도 하고 대법 판결에 따른 직접고용을 실시하라며 1인 시위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중요한 사안이 매일 지속되는지라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분이 저에게 특별히 부탁을 해왔습니다.
"변 동지, 내일 아침엔 현대차 출투 하루만 미루고 성내와 해안도로 삼거리로 가서 어떤 분 취재 좀 해서 오마이뉴스에 올려 주었으면 좋겠네요"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에겐 참 중요한 현대차 출근 투쟁을 하루 보류하면서까지 만나봐야 한다는 것일까요?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것을 잘 아는 분의 부탁이라 쉬이 거절할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함께 노조활동 하면서 만난 그 분은 참 올곧은 분이었고 언제나 약자 편에 서서 활동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어 한편으로 존경스런 분이었습니다.
알겠다고 하니 우선 읽어 보라며 자료를 하나 내밉니다. 「보도자료」라고 되어 있는 복사용지는 모두 6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는 분 말로는 김석진씨라는 미포조선 복직 노동자분이 있는데 지난 2008년 9월 미포조선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정리해고 당한 사건을 보고 그냥 지나칠수 없어 적극적으로 그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도와 왔다고 합니다.
김석진씨는 2009년 1월까지 4개월간 하청노동자를 다시 복직 시키는데 헌신적으로 노력했고 그러한 가운데 부당해고를 당한 하청노동자는 정규직 복직 합의을 하게 돼 부당해고 문제는 종결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폭행 등을 당한 김씨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문제이길래 1년 8개월이나 해결 노력을 하고 있는 걸까요?
폐암, 심장암 앓은 부인이 1인 시위에 나선 사연15일 오전 6시 전에 일어나 성내로 갔습니다. 성내에서 방어진과 시내로 가는 해안로가 만나는 곳에 삼거리가 있었습니다. 방어진 쪽으론 고려화학과 미포조선 같이 바다를 메우고 만든 대기업 공장이 즐비합니다. 그곳엔 이미 세 분이 나와서 1인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무원 노조 김우식, 고려화학 노조 우정룡 조합원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김석진씨 아내 되시는 분이 있었는데 어딘가 많이 아파 보였습니다. 더운 날인데도 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가끔 마른 기침을 콜록 거렸습니다.
"더운데 왜 마스크를 하고 있어요?" 궁금해서 물으니 아내분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1년 8개월 전에 현대중공업 경비대에 남편이 집단 폭력 당하여 병원 입원하는 것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 후로도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폐암과 심장암을 얻게 되었지요. 심장혹은 떼어내고 폐는 잘라 냈어요. 그래서 공기가 탁하면 기침이 자꾸 나요."삼거리인 그곳은 아침 출근시간이면 차량이 많아져 매연이 심한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그 여성은 남편을 대신해 힘겹게 1인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많이 힘들어지면 옆에 같이 참여해 대기하고 있던 다른 분과 교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1인 시위는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해 오전 7시 30분 쯤에 끝났습니다. 참여한 두 분의 출근 때문에 더이상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여성분을 따라 방어진 쪽으로 갔습니다. 여성분은 아침부터 나와 수고 했다며 국밥 한그릇을 사주었습니다. 음식을 다 먹은 후 그 식당에서 왜 남편 대신 1인 시위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해고자의 고통을 아는 남편이기에 복직투쟁에 나선 것"
- 남편은 언제부터 사내하청 용인기업 노동자들과 복직투쟁을 함께해 왔나요?"미포조선 사내하청 용인기업 30여 명이 해고될 당시 남편은 정규직 노동자로 이미 미포조선에서 해고되어 울산지역해고자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해고되자 남편은 이들의 민사소송을 위해 변호사 선임을 하고 이들 가족들에게 복직투쟁관련 교육도 하며 회사정문과 지역을 돌면서 함께 투쟁을 벌였습니다. 당시 남편은 용인기업 해고자의 불법파견인정과 고용승계를 위한 울산지역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열심히 부당해고 투쟁에 함께 했습니다. 남편도 해고자 신분인지라 누구보다도 이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2005년 8월 복직이 되고도 2008년에 있었던) 4개월간의 원·하청연대투쟁에 열심히 나선 것 같습니다."
- 보도자료를 살펴보니 '현대중공업 경비대 심야테러'와 '협약서'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던데 자세하게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먼저 '현대중공업 경비대 심야 테러' 사태 내용은 당시 진보신당에서 인터넷에 올린 상황일지를 보고 알게 되었고 나중에 남편에게 어떻게 집단 폭행을 당했는지 듣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한동안 두려워 밤에 잠을 못 잘 정도였습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두 분의 노조 활동가가 미포조선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100미터 높이 굴뚝 위에 올라가 있을 때 일입니다. 그때가 2009년 1월17일 오후 11시 30분경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 소유 소각장 고공 굴뚝 농성장 아래에서 진보신당 단식농성자 10여 명과 저희 남편 1명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때 오토바이 헬멧으로 복면한
현대중공업 경비대 50~60여 명이 소화기와 쇠파이프, 각목 등으로 무장해 무저항(취침을 준비하는 순간) 상태의 농성장으로 쳐들어와 소화기를 뿌려 앞을 볼 수 없도록 한 후, 저희 남편(김석진)을 지목하여 집중적으로 테러를 가하고 진보신당 당직자들도 폭행하고 농성물품과 차량을 모두 부수고 농성장 주변 물품 모두를 불태워버리고 도주하였습니다.
당시 그 주변에는 전경차 1대를 포함한 30여 명의 경찰이 있었으나 현대중공업 경비대를 제지하거나,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습니다. 심야 테러 후 경비대들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승용차 20여 대를 나눠 타고 유유히 공장문을 빠져 나갔습니다.
(위 사건과 관련해서 2009년 1월 국회는 진상조사단 (단장 민주당 김상희 의원)을 구성하여 조사한바 있으며 2009년 10월 23일 국정감사 때 김유정 민주당 국회의원이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서면 질의를 한 바도 있습니다.)
두 번째 현대중공업 노사협력부 김아무개 상무가 작성한 '협약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합의 하루 전날인 2009년 1월 22일에 현대중공업 노사협력부 김아무개 상무의 요구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은 울산시내 모처에서 김아무개 상무를 만났습니다. 당시 김 상무는 높은 분의 지시로 자신이 모든 합의의 전권을 가지고 왔다며 중재에 나섰고,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과 협의하여 합의서, 협약서를 김 상무가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김 상무는 협약서를 언론에 비공개하기로 민주노총 울산본부장과 약속했습니다. (협약서 핵심내용 - 부상자 치료비는 전액 회사가 부담한다. - 피해 변상금액은 추후 증빙자료를 근거로 재협의도록 한다. - 조합원 징계시 경고이상 중징계를 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도 해봤지만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 어떤 조치를 원하시는 건가요?"하나, 현대중공업 경비대 심야테러 사태 책임을 물어 현대중공업 사장, 현대중공업 경비대장, 그 외 테러에 직접 가담한 경비대를 철저히 조사하여 엄중 처벌하라는 것입니다.
둘, 경찰청은 경찰이 보는 가운데 행해진 무차별적인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테러사태를 방조한 경찰을 엄중 문책하라는 것입니다.
셋, 현대중공업의 경비대 심야테러로 1년 8개월 동안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저희 남편에 대한 현안문제(치료 지원)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넷, 합의과정에서 언론에 비공개하기로 하고 현대중공업 노사협력부 김아무개 상무가 작성한 협약서(정규직 현장활동가 중징계 철회)를 즉각 이행하라는 것입니다."
- 이를 해결하기 위해 1인시위 외 또 어떤 노력들을 해왔나요?"국민권익위원회 진정,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울산노동부 진정 등을 했으나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했어요. 최근 현대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의 실질적 지배자 정몽준 의원에게 각각 내용증명을 통해 조속한 사태해결을 요구하였으나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 제가 남편 분 이름(김석진)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관련 기사가 언론에 많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연이은 형사고발로 수백만원의 벌금납부 ▸1인시위 등 금지가처분 신청 ▸출근정지의 중징계로 인한 생계위협 ▸사내 점심시간 남편 감시를 위해 작업반장 식당 동행......' 이렇게 수를 헤아릴수 없이 많은 여러가지 압력에 시달려 왔는데요. 이중에 어느 때가 아내로서 가장 힘들었나요?"가족에까지 위협을 가해 올 때 가장 힘들었어요. 이른 새벽부터 현대미포조선 노무관리자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이다시피 계속해서 우리집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감시했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남편이 밖으로 나가면 한시도 놓치지 않고 미행했습니다.
하루는 남편을 미행하는 현대미포조선 노무관리자들의 차량을 증거로 남기려고 울산지역 활동가들이 여러대의 비디오 카메라를 준비하여 이른 새벽부터 우리집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2대의 미행차량을 녹화도 하였습니다. 저와 두 딸 또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혹시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저녁 늦게 다니지 말라고 또 큰길로 다니라고 여러차례 잔소리처럼 말하기도 했어요.저도 집 밖으로 나설 때 주변을 항상 살피는 등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 다른 사람을 돕다 곤경에 빠진 남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우리 가족 또한 남편이 복직하기 전 8년 3개 월의 해고기간 동안 두 아이의 교육문제나 정신적, 경제적 고통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시간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내하청 용인기업 노동자들도 우리 가족처럼 해고기간 동안 자녀교육, 이혼문제까지 겹치면서 온갖 고통을 겪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남편의 그런 헌신적인 노력이 노동운동을 넘어 인간이 인간에 대한 도리를 다 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남편을 응원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미선씨 가족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때렸으면 치료해주고 재발방지 약속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어려울 거 없잖아요? 합의과정에서 맺은 협약서,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면 되는 거잖아요. 제 남편 요구가 들어주기 힘든것 인가요? 아니잖아요. 협약서에 있는 사실을 지키라는 것 뿐이잖아요.
남편이 가지고 있는 근거 자료에 보면 사측 협약서와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 쓴 진술서도 있어요. 그 내용에 보면 치료비와
징계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되어 있는데 1년 8개월 동안 해달라는데도 안해주고 있어요. 저는 이제껏 살면서 지금처럼 억울한 일은 처음 이에요. 제발 좀 협약서에 쓴 내용대로 지켜 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힘가진 대기업이라고 사건의 본질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꾸 억지로 힘으로 눌려버리려 한다는 것은 사설 조직폭력배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해요. 세계일류기업 답게 더 이상 추악한 모습 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현대중공업 "치료비는 영수증 청구하면 처리, 징계는 우리 사안 아니다"저는 왜 이 일이 1년 8개월 동안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는지 궁금 했습니다. 협약서 내용 대로라면 해결되어도 벌써 해결되었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6일, 2009년 당시 실무자였던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관계자를 찾아가 물어 보았습니다. 아래는 제 신분을 밝히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지난 2009년 1월 23일 미포굴뚝투쟁이 합의·종결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합의에 전권을 가지고 합의를 이끌어낸 현대중공업 김아무개 상무가 작성한 협약서가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고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2009년 1월 23일 미포투쟁 합의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김아무개 상무가 작성한 협약서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현대중공업에 협약서 이행을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이 말을 잘듣지 않는다고 하고, 현대미포조선은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나 역량의 한계가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협약서가 이행 될때 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 겠습니다"
저는 이분으로부터 전화번호를 건네받아 현대미포조선 노사협력부와 통화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 "<오마이뉴스>와는 할 얘기가 없다"며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현대중공업 노사협력부 담당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고 밝히고 1년 8개월 동안 협약서 이행을 왜 미루고 있느냐고 묻자 언론담당 문화부가 있으니 그리로 연락하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중공업 문화부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미포관련 문제를 다루는 담당자가 따로 있었습니다. 협약서 미이행에 대해 묻자 담당자는 "치료비 문제는 영수증 첨부하여 노사협력부에 제출하면 처리될 것이고, 징계 문제에 대해서는 미포조선에서 처리할 사안"이라고 답했습니다.
한편, 한미선씨 남편분인 김석진씨는 1997년 4월 해고된 뒤 지난 2005년 8월 복직돼 현재 현대미포조선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씨에겐 노조로부터 유기정권 2년이란 징계가 내려진 상황입니다. 2008년 당시 김씨가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의장 자격으로 미포투쟁(원·하청복직연대투쟁)을 하면서 미포조선 노동조합의 중식시간 사내 선전 중단 요구에 따르지 않자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권리를 정지시키는 '유기정권' 2년이란 징계를 김씨에게 내렸습니다.
김씨는 최근 회사로부터도 중징계를 받아 출근정지상태라고 합니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협약서 이행을 촉구하며 홍보물 배포와 1인 시위를 해왔는데 현대미포조선 측에서 명예 훼손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발했고 법원은 200만 원의 벌금형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미포조선은 벌금 200만 원 받은 것이 단체협약 제38조 12항 위반 - 미포조선 단체협약 제38조(징계사유) 12항: 기타 국가법령에 위반하는 경우- 이라며 출근정지(정직 1개월) 징계를 내렸습니다.
또한, 현대미포조선이 신청한 업무방해금지가처분 결정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1인 시위를 해도, 언론사와 인터뷰를 해도 1회 위반시마다 매회 벌금을 내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몸이 아파도 남편 대신 1인 시위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15일 아침에 일어나 그들과 취재 동행하며 3시간 남짓 지켜 보았습니다. 성내 해안로 삼거리에서 1인 시위 할 때에는 흰색 승용차를 탄 사람이 신호 대기중에 우리를 향해 사진을 찍고는 신호등이 바뀌자 쏜살같이 가버렸습니다. 방어진 근처에서 국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밖에서 서성 거리는 중년 남자를 보기도 했습니다. 한미선씨는 그 사람을 가리키며 "아침 1인시위때 사진찍은 사람이 미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미선 씨는 저와 대화 중에도 내내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간단한 문제 입니다. 협약서를 지키라는 것, 폭력은 범죄이니 가담자를 처벌 하라는 것, 집단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와중에 경찰이 옆에 있었는데도 수수방관한 일에 대해 책임을 물으라는 것입니다. 하청업체 노동자를 도왔던 남편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부인은 지금도 성치 않은 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한미선씨 가족이 하루빨리 평화를 되찾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