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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가 졌다.

창원지법 민사6부(재판장 이헌숙 부장판사)는 15일 고려대 수시전형에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학생 24명이 고려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고려대에 학생 1인당 700만 원씩, 총 1억 68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결정을 내렸다.

이 소송은 지난해 3월 17일에 제기됐으니, 무려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법원의 1심 판결이 난 것이다. 그 사이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가거나 재수를 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고려대의 '선고 연기' 요구를 받아들이는 등 두 번이나 선고 기일을 변경했다. 그럼에도 결국 고려대의 패소로 결정이 난 것이다.

당시 학부모들은 2009년 실시된 수시 전형에서 고려대학교가 모집요강에도 없는 상수값(α값·k값 등)을 적용하여 학생들의 점수를 보정해 특목고 학생에게 특혜를 주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고려대는 입시 진행과정 등이 영업비밀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주장하며 끝내 관련 자료인 상수값을 공개하지 않았다.

고려대가 이 상수값들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실시하면서 특목고를 우대했다는 것은 인정한 셈이 됐고 법원 역시 이를 결정적인 근거로 삼아 고려대에 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송을 주관하였던 박종훈 전 경남교육위원은 "이번 결과로 고려대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립대학의 횡포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상수값은 '영업 비밀'... 신입생 선발은 'VIP 고객' 우대?

 일반고 성적 우수 불합격 학생과 외고 성적 하위 합격 현황 비교. 전과목 1등급 일반고 학생은 떨어졌는데, 수상경력도 없는 외고 7.3등급은 합격했다. 이렇게 거짓으로 한 학생의 인생을 바꾸어 놓고 위자료가 700만원밖에 안 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일반고 성적 우수 불합격 학생과 외고 성적 하위 합격 현황 비교. 전과목 1등급 일반고 학생은 떨어졌는데, 수상경력도 없는 외고 7.3등급은 합격했다. 이렇게 거짓으로 한 학생의 인생을 바꾸어 놓고 위자료가 700만원밖에 안 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 김행수

이번 고려대의 수시 모집 패소 판결은 큰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는 대학들이 전형요강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고려대는 '전형 요강에서는 교과(내신) 90%, 비교과 10%를 반영해 입학생을 뽑겠다'고 하곤 내신 1등급 일반고 학생은 탈락시키고 특목고 7등급 학생은 합격시켜 기본적인 신뢰 관계를 훼손했다).

둘째로 고교등급제가 불법이란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현행 대학 입시에서 고교등급제는 3불정책(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본고사 금지) 중 하나로 금지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그것도 명문사학으로 불리는 대학들이 공공연하게 이를 적용하여 학생들과 고등학교에 낭패감을 주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소송에서 법원은 '고려대가 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없는 α값이니 k값이니 하는 상수값을 따로 적용하여 사실상 외고생들을 우대한 것'은 불법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셋째는 고려대를 비롯한 대학들에게 우리 사회가 던지는 준엄한 꾸짖음의 의미가 있다. 고려대가 상수값에 대한 자료를 내놓고 이를 해명하라는 학부모와 법원의 요구에 대하여 '기업의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며 공개할 수 없다고 버틴 것에 우리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교육이 '영업'이면, 고려대는 '장사꾼'이고, 신입생 선발은 '구매 대상 모집'이란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학교는 영리 기업이 되고 만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교육관이 이래서야 되겠는가'라는 탄식이 앞서는 이유다.

253:1 수시모집, 대학에겐 포기할 수 없는 '유혹'

수시모집에 대한 신뢰나 공정성 문제는 이전부터 누누이 제기돼 온 것들이다. 현재 빠른 속도로 수시 전형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입학사정관제 역시 이런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실패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수시모집, 입학사정관제에 반해 정시모집에서는 부정이나 편법을 쓰기는 무척 어렵다. 사실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대부분 수시 모집을 반기지 않는다. 그런데 왜 대학들은 수시 모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포기할 수 없는 것일까?

이들이 이렇듯 수시모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수시 전형 지원 경쟁률 때문이다. 이번 소송에서 패소한 고려대(안암캠퍼스)는 2011학년도 수시에서 2646명 모집에 무려 7만8654명이 지원하여 평균 경쟁률이 29.7 대 1로 사상 최대다. 의과대학은 129.5 대 1, 심리학과는 101.4 대 1 등으로 100 대 1을 넘기기도 했다.

성균관대는 2401명 모집에 7만8486명이 지원하여 32.7 대 1을 기록했고, 한양대(서울캠퍼스)는 6만1704명이 응시해 평균 50.4 대 1을 기록했다.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중앙대 의학부는 무려 253 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수시전형 경쟁률이 기록적인데, 일부 학과의 경우 200 대 1을 넘어섰다. 전형료 수입만 해도 60억이 넘는 학교들이 있다. 이러니 대학은 '수시 장사', 학생은 '기부 천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다.
수시전형 경쟁률이 기록적인데, 일부 학과의 경우 200 대 1을 넘어섰다. 전형료 수입만 해도 60억이 넘는 학교들이 있다. 이러니 대학은 '수시 장사', 학생은 '기부 천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다. ⓒ 김행수

수시에 지원한 학생들이 낸 전형료만 계산해 봐도 수십 억 원이다. 수시 전형 원서비가 10만 원이 넘는 곳도 있고, 싼 곳이라고 해도 5만 원 정도다. 평균 8만 원 정도로만 계산해도 고려대와 성균관대의 경우 수시 전형료만 무려 60억 원에 이른다. 2010년 전형료 수입이 중앙대 62억7천만 원, 고려대 61억7천만 원, 성균관대 60억8천만 원, 한양대 58억3천만 원에 이르렀다. 이러니 '수시 장사'라는 세상의 비아냥거림과 '이번에도 건물 몇 개는 거뜬하겠네'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뿐이 아니다. 대학들이 수시에 집착하는 더 큰 이유는 학생들이 많이 온다는 것보다 학생들을 가려 뽑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정시 모집의 경우 수능을 중심으로 한 학업성적순에 의해 선발하기 때문에 특정학생을 가려 뽑을 수 있는 변수가 많지 않은 반면, 수시모집은 전형 방법도 워낙 다양하고 학교가 발휘할 수 있는 유동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학생들을 더 다양하게 가려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시모집이 좋게 활용되면 큰 장점이 되지만, 잘못 활용하면 엄청난 독이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명문사립대라는 학교들이 우수 학생을 선점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수시모집 학생수를 늘리고,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은 특목고 학생들을 가려 뽑기 위해 이를 악용하면서 이번 고려대 고교등급제 사태와 같은 부작용이 속출한 것이다. 앞으로 이 수시모집은 입학사정관제라고 이름을 바꾸어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입학사정관제, 교육계 '유명환 사태' 만들까 걱정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만든 고려대와 일부 사립대들의 각성이 있지 않으면, 신뢰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입학사정관제는 교육계의 '유명환 사태'를 낳는 통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고려대 수시 모집 패소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인천외고의 모의고사 성적 조작과 타임머신을 타고 가야만 가능한 1, 2학년 생활기록부 수정 사태가 이런 우려를 방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최고라고 하는 대학들이 한결같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능력 있고 열성적인 학생들만 가려 뽑아 입학을 시키면서도 학문적 성과나 결과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100% 타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지만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발표하는 세계 우수 대학 순위에 우리나라의 명문이라고 하는 대학들이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반성해야 한다.

입학생들의 수준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분명 세계 최상위일 것이다. 그래서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들 가려 뽑으려고 하는 그 정성의 반만 학생들 우수하게 만드는데 기울인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세간의 비아냥거림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대학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행동들이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절망하게 만들고, 공정사회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게 하는지 이른바 명문대학들은 명심해야 한다.


#고려대#수시모집#고교등급제#입학사정관#기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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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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