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을 몰고 장계소재지를 나갈 때는 버릇처럼 버스 정거장을 두루 살핍니다. 동명마을에서부터 양삼과 명덕까지 훑어 내리는데 장날이 아니더라도 한두 분을 태우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습관처럼 일부러 농협 앞에 차를 잠시 세우고는 태우고 갈 만한 아시는 분이 있나 둘러보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빈차로 올라오는 버스를 만나고 나서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있을지도 모를 손님 한 분을 위해 저렇게 큰 차를 몰고 올라오는데 제가 손님을 뺏은 셈이니 허탕칠 버스에게 죄송했던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제 트럭은 책임보험만 든 차량이라 사고라도 나면 선의로 태운 어르신을 보호 할 길이 없어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태워 달라는 분만 태우거나 버스 시간을 한참 기다려야 하는 시간대에만 태운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수정된 제 전략을 눈치 채셨는지 한 할머니가 다가 왔습니다. 장계중학교에서 계북 방향으로 차를 대고는 택배를 부치느라 수첩 주소를 옮겨 쓰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조수석 문을 톡톡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경우가 밝으신 이 할머니는 "어디 가시우?"라고 제 행선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첫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차 시간은 멀었고 갈 길은 바쁜데 장보따리를 이고, 들고 땡볕 길을 걸어 나섰지만 이 할머니는 막막하기가 이를 데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른 봄 씨감자처럼 쪼글쪼글하고 새까맣게 햇볕에 그은 할머니 얼굴을 바라보고 감히 제가 "명덕리 지보촌요"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트럭이 서 있는 방향으로 보나 그 할머니가 걸어 오신 쪽을 보나 계북방향으로 가실 게 뻔한 할머니에게 정 반대 방향인 명덕리 지보촌 가는 차라고 할 수가 없었던 게지요.
그래서 저는 "할머니 가시는 데 까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내 말에 할머니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차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아니! 호덕 사시우? 뉘시우?""하하... 호덕 그 위쪽에 갑니다."그래서 예정에도 없는 호덕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장계면에 와서 산 지 5년이 되었지만 지도 상으로만 봤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마을입니다. 낯선 마을로 여행 하는 행운. 오로지 할머니 덕분입니다.
할머니는 굳이 마을 입구에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지보촌 산다는 말을 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집까지 안 가도 되는 이유를 하나 더 덧붙였습니다.
"여거 내려 놔아. 우리 집은 말도 아녀. 지붕도 너덜거리고 비오면 비도 새고."바로 이때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화기애애하던 트럭의 분위기가 싸악 바뀌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제가 무심결에 할머니 지붕을 고쳐 드릴테니 집 전화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버린 것입니다. 무지무지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시골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각종 전화사기사건이 줄을 잇고, 모르는 사람한테 함부로 전화번호 알려 줬다가 낭패 당했다는 소문이 마을마다 괴담처럼 떠도는 이때에 공짜로 차를 태워주는가 싶더니 지붕 고쳐 준다고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으니 할머니 시선이 싸늘해진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매 분기마다 우리 집에서 '시골집 고쳐살기 학교'가 열리고 실습생들을 데리고 주변의 살림집들을 무료로 고쳐 주곤 했는데 다음 달의 3분기 행사를 앞두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한 말이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제 본뜻을 알 수가 없는 할머니는 대답을 우물우물 하셨습니다. 아차 싶었지만 저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같이 우물쭈물 했습니다.
지보촌 사시는 몇 사람 이름을 들먹이며 최대한 선한 얼굴과 고운 목소리로 안심을 시켜 드리자 제 행색을 아래위로 다시 훑어보시더니 할머니는 '***네 집'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가 도둑놈으로 보이지는 않았구나 하고 한 시름 놓았습니다.
다음 달에 호덕마을에 가서 할머니 집을 살펴보고 잘 고쳐 줄 생각입니다만 이건 제 생각이고 할머니와의 인연이 더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전화번호를 이용한 등쳐먹는 나쁜 사건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네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장계사랑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