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 듣는 순간 가슴이 턱 막히더라." "다리 난간에 섰을 때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식과 함께 죽었겠나." "그래도 그렇지, 어린 아이는 살려놓아야지." "사회가 한부모 가정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40대 아버지가 생활고를 비관해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마창대교'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의 반응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우째 이런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부자 투신자살사고가 일어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사람들의 가슴에서 그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고는 지난 12일 오전 9시48분경 마창대교에서 벌어졌다. 창원시 진해구에 사는 A(43)씨가 아들(11)과 함께 다리 난간에서 바다로 뛰어 내린 것이다. A씨는 교각에 자신의 승용차를 세워 놓고 아들과 함께 난간을 넘어갔다.
아들을 먼저 뛰어 내리게 하고 아버지도 곧바로 투신했다. 이날 부자의 투신 장면은 마창대교에 설치된 CCTV에 그대로 담겼다. 녹화된 장면을 보면, 아들은 뛰어 내리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다리 난간을 잡고 있다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CCTV상으로 봤을 때 아버지가 아들을 밀고, 이어 아버지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자는 왜 극단의 선택을 했나 이번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A씨가 생활고를 비관해 투신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A씨는 유서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하나 남기지 않았다.
지난해 위암으로 아내를 잃고, 어머니 명의로 된 진해의 한 아파트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온 A씨는 대리운전을 했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대리운전으로 한달에 70여만 원 가량을 벌었던 A씨.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전엔 가게를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내 병원비로 인해 가세가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내가 사망한 뒤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받아온 유족연금 22만원을 합쳐도 한달 수입은 100만 원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극단의 선택을 할 정도로 부자의 상황은 어려웠지만,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이들이 자치단체 등에서 받은 혜택은 창원시에서 부자가정(한부모가정) 양육비로 지급하는 5만 원(매달)과 아들의 학교 급식비 감면이 전부였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투신하기 며칠 전 주민센터에 공공근로를 신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살았던 창원시 진해구 주민센터 관계자는 "대리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수입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며 "주민센터에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사고가 있기 며칠 전 주민센터에 공공근로 신청을 하러 온 A씨를 본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16일 아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교실을 찾았다. 아이의 빈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아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아버지가 아이한테 성실하게 관심을 기울였다"면서 "아버지는 담임교사와 전화 통화도 자주 했다고 들었다. 아이는 명랑하게 생활했고, 준비물이며 숙제도 잘 해왔고, 선생님 말도 잘 들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현재 이들 부자의 시신은 화장해 진해 '천자원 납골당'에 안치됐다. 아버지 A씨는 1년 전 하늘나라로 간 아내 옆에, 아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 모셨다.
"한부모가정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이번 투신사고를 계기로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한부모인 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우서 창원시의원(민주당)은 "우리 지역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면서 "생활수급자이거나 한부모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자 진해여성의전화 회장은 "CCTV 화면을 보니 아이는 뛰어내리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는 힘든 상황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돌봐줄 수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모가 이혼하거나 사별했을 경우 아이들의 고통을 안아주고 치유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면서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한부모가정의 경우 담당 복지사를 정해 어려움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년 동안 14명 자살한 마창대교, 대책 없나
한편에서는 마창대교에 자살 방지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길이 1.7km, 높이 64m인 마창대교는 마산만을 가로 질러 창원시 성산구와 마산합포구를 이은 다리로 2008년 7월 개통했다.
그런데 마창대교에서 자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개통 첫해엔 2명, 2009년엔 7명이 자살했고 올해는 두 부자의 투신까지 합쳐 5명이 목숨을 끊었다. 지금까지 모두 14명이 그곳에서 투신자살한 것이다.
마창대교는 난간이 낮고 쉽게 넘어 갈 수 있다. 다리에 CCTV가 8대 설치돼 있지만, 다리 위에 차량이 정차하거나 사람이 걸어 다녀도 이를 제지할 사람이 없다.
마산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애초에 마창대교에 가드레일 같은 안전장치를 하지 않았다, 별도의 시설을 하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면서 "경남도나 창원시와 대책을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창대교를 자주 이용하는 한 운전자는 "규정상 다리 위에서는 정차하거나 걸어 다닐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간혹 정차해 있는 현장을 목격할 때가 있다"면서 "자살 방지시설 설치를 비롯한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