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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天池)에서 내려오니까, 장백폭포(비룡폭포)를 구경하고 숙소가 있는 '이도백하'로 이동하겠다며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다녀올 사람은 자유롭게 다녀오라고 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장백폭포는 하늘에 그려놓은 산수화 병풍 그림 같았다.

 천상온천 입구에서 바라본 장백폭포. 깎아지른 암벽이며, 숲이며, 물이며 처음 본 순간, 산수화 병풍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상온천 입구에서 바라본 장백폭포. 깎아지른 암벽이며, 숲이며, 물이며 처음 본 순간, 산수화 병풍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하얀 물안개를 일으키며 쏟아지는 장백폭포. 폭포 물줄기는 ‘이도백하’에서 압록강, 두만강으로 갈라지고 삼도촌에 이르면 송화강(松花江)으로 유입된답니다.
하얀 물안개를 일으키며 쏟아지는 장백폭포. 폭포 물줄기는 ‘이도백하’에서 압록강, 두만강으로 갈라지고 삼도촌에 이르면 송화강(松花江)으로 유입된답니다. ⓒ 조종안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둘러싼 천지 북쪽 트인 사이로 2250m까지 개활지를 통해 흘러내리다 90도 수직 기암절벽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백폭포이다. 하얀 물안개를 일으키며 68m 아래로 떨어지는 장관은 탄성을 절로 나오게 한다. 

가파른 지형의 영향으로 물살이 빨라 시원함을 더하는데, 필자가 가던 날은 전날까지 비가 내리는 바람에 물이 불어 관광객들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해주었다. 천지로 향하는 계단이 폭포 옆으로 있는데, 낙석이 많아서 주의해야 한다고.

백두산에는 장백폭포 외에도 '백하폭포', '동천폭포' 등을 빼놓을 수 없는데 물살이 약해지는 겨울에는 얼어붙어 빙벽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장백폭포는 얼지 않아서 사시사철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단다.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고, 피곤할 터인데도 일행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장백폭포로 향했다. 조금 올라가니까 노천에서 솟아나는 온천지대가 있었는데 손을 담그니까 무척 뜨거웠다. 옆에서는 온천물에 삶은 옥수수와 계란, 오리 알, 메추리 알 등을 팔고 있었다.

 유황성분으로 바닥이 있어 붉게 변해 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수. 손을 담그니까 무척 뜨거웠습니다. 말로만 듣던 야외온천수, 신기하더군요.
유황성분으로 바닥이 있어 붉게 변해 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수. 손을 담그니까 무척 뜨거웠습니다. 말로만 듣던 야외온천수, 신기하더군요. ⓒ 조종안

온천물이 솟아나오는 바위는 유황성분이 있어 붉게 변해 있었고, 물 온도가 80℃나 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이곳 노천온천에서 온천욕은 할 수 없고, 바위에서 솟는 온천물을 파이프로 호텔까지 연결하여 이용한단다.

폭포를 둘러싼 백두산 줄기를 촬영하려니까 배터리 잔량이 없다는 표시가 떴다. 폭포는 눈앞에 보이는데 막막했다. 전날 밤 충전이 잘못된 모양이었다. 더는 촬영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올라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천상온천호텔을 찾아갔다. 호텔 카운터에 부탁해보려고 배터리를 충전기에 삽입해서 여직원에게 주었더니 알았다는 듯 묻지도 않고 전원을 콘센트에 연결해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직 교사였던 가이드와의 대화

소진된 배터리를 충전하려면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30분만 충전해도 10-20 장면은 촬영할 수 있어서 식당에 들를 때마다 계산대에 부탁해서 밥 먹는 시간 동안 충전을 해왔다. 일행들이 장백폭포를 둘러보고 오는 사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이드와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천상온천호텔 앞 주차장에서 일행을 챙기는 가이드. 가을 상수리처럼 귀엽고 야무졌습니다.
천상온천호텔 앞 주차장에서 일행을 챙기는 가이드. 가을 상수리처럼 귀엽고 야무졌습니다. ⓒ 조종안

가이드는 세계적인 유명 메이커 티셔츠 차림에 모자를 쓰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티셔츠도 하루에 하나씩 갈아입는 멋쟁이였고, 유창한 우리말 실력에 정서도 한국인에 가까웠다.   

일제강점기에 경남 거창에 살던 할아버지가 만주로 이주해와 살기 시작했다는 가이드는 자신의 이름(유연옥)과 나이(35세), 아들이 둘 있으며 남편이 교통사고를 전담하는 교통경찰인 것도 밝혔다. 교사로 근무하다 몇 년 전 가이드가 되었다고. 미혼인 줄 알았는데 놀라웠다.

연변에서 여름을 보내고, 9월에는 상해로 내려가 11월까지 일하고,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중국의 최남단 해남도에서 가이드생활을 한다며 자신을 철새로 표현했다. 중국에서는 부부가 함께 벌지 않으면 100명에 한 대꼴인 자가용을 보유하기 어렵다며 수줍게 웃었다.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느라 장백폭포 가까이 못 갔다니까, 비가 내려 걱정했던 천지를 봤으니까 본전은 뽑지 않았느냐며 웃었다. 그는 1년 내내 영업하는 연길과 달리 여름철(4개월)밖에 못 하기 때문에 투자하는 사람이 없다며 백두산 업소들의 어려운 현실도 전했다.   

한국 관광객 중 '꼴불견' 하나만 지적해달라니까, 입장이 난처한지 어려워했다. 거듭 부탁했더니, 부자가 많고 시설이 좋은 '상해'나 '해남도'에서는 유연하게 관광하는데, 가난한 연변에서는 떡 버티고 큰소리치는 관광객을 심심찮게 본다며 함부로 말을 던지는 분들은 대하기가 거북하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한 번 다녀갔는데 사람들이 정도 많고 친절해서 좋다고 했다. 그렇게 좋으면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고 물으니까,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그래도 가족이 있는 만주가 좋다고 말했다.

중국의 성묘와 장례(葬禮) 문화

 중국의 소규모 공동묘지. 조선족은 봉분이 둥근데 중국인 묘는 피라미드처럼 삼각이어서 금방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소규모 공동묘지. 조선족은 봉분이 둥근데 중국인 묘는 피라미드처럼 삼각이어서 금방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 조종안

가이드에게 "사람이 죽으면 상여로 모시기도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놀란 토끼 눈으로 "상여가 뭐인데요?"라고 되묻기에 간단히 설명해주면서 중국의 장례 절차와 제사, 성묘 등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다. 

- 중국은 장례를 어떻게 치르나요?
"옛날에는 산짐승이 물어갈 수 있도록 시체를 숲 속에 내다 버리는 문화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농촌에서 가장 높은 촌장이 공동묘지를 지정해서 사용토록 했는데, 요즘은 묘지를 세우지 못합니다. 대신 사망진단서와 호적등본을 떼 가면 나라에서 무료로 화장을 해줍니다. 올부터는 나라에서 60세 이상 시골 노인들에게 연금도 나옵니다." 

- 언제부터 화장(火葬) 문화가 시작됐나요?
"모택동 정부가 법으로 정한 1950년대이지만, 키는 작아도 많은 일을 해낸 등소평이 이렇게 가다간 후대들이 쓸 땅이 줄어든다며 장기는 실험용으로 제공하고, 자신은 화장 후 유분을 바다에 뿌렸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됐다고 봐야겠지요. 

중국도 이제는 농촌 시골까지 묘를 세우지 못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잘 됐다며 찬성하는데 연세가 높은 노인들은 두려워하시는 것 같더군요." 

- 화장 제도는 잘 지켜지고 있나요?
"중국은 국가공무원부터 다스립니다. 공무원이 나라 법을 어기고 묘지를 세우면 승진 못 합니다. 특히 과장급 이상은 직책이 떨어지고, 영원히 승진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공무원도 땅에 묻어달라는 아버지 유언을 어기고 화장을 했어요." 

- 제사는 어떻게 지내나요?
"한국처럼 계속 제사를 지내야 하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면서도 죽은 후 3년까지는 살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 그럼 추석에 성묘는 하나요?
"죽으면 화장해서 날려버리니까 성묘할 필요가 없어졌지요. 하지만, 할아버지·할머니 묘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추석날 성묘를 다녀옵니다. 화장 얘기가 나오기 전에 묘를 쓴 사람들은 그대로 인정해주니까요."

 백두산-이도백하 중간에 있는 휴게소 입구에서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2차선 도로와 휴게소 땅바닥이 우리나라 60년대 시골 버스정류장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백두산-이도백하 중간에 있는 휴게소 입구에서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2차선 도로와 휴게소 땅바닥이 우리나라 60년대 시골 버스정류장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 조종안

조선족 장례 문화와 성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는데 일행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카운터에 맡겼던 충전기를 찾아 밖으로 뛰어나가, 배터리 소진으로 촬영하지 못했던 장백폭포를 카메라에 담아 오후 4시30분에 숙소가 있는 '이도백하'로 향했다.

5시 40분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밤에는 박 영 시인이 수박을 3통이나 사 와서 수박 잔치를 벌였다. 남자들은 근처 시장의 자그만 가게에서 양고기 꼬치구이를 안주로 38도짜리 소주 3병과 시원한 맥주로 피로를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덧붙이는 글 | 현지 가이드와 박영희 시인의 설명, ‘2010만주기행’ 자료집을 참고했습니다.



#장백폭포#중국 장례문화#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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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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