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자이저', '백만돌이' 경환이를 부르는 별명들이다. 경환이는 발달장애(지적. 자폐)를 가진 아이지만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는 말 그대로 돌쇠 같은 아이였다. 항상 활달하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불편한 것도 없었으며 나름대로 자신의 환경에 적응을 잘 한 편이었다.발달장애를 가졌지만 의사소통도 어느 정도 가능했고(의사표현 70~80%),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없이 생활을 해 왔었다.
엄마인 박정자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아들자랑으로 잠시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이내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오고 만다. 지난 2월을 기준으로 180도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한 것도 있고, 아이에게 미안한 것도 있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단다.
지난 2월 교회 행사에 참가했다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을지로 'ㅂ'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단순한 '변비'로 진단을 받고 관장을 시키고, 해열제를 먹고, 집으로 돌아 왔지만 복통은 계속되고 열도 내리지 않아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복막염일 가능성을 두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을 하고 나서는 기도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며 전신 청색증이 나타나 심폐소생술을 하고, 기관지 절개를 통해 기도를 막고 있던 객담(가래)을 제거했지만 장시간 산소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뇌손상을 입기도 했다. 지금은 기관지 절개로 인해 코로 음식을 주입하고 있으며 의식은 돌아 왔지만 이전의 활달한 모습은커녕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장기 입원을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가족들이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 경제적인 손실도 크지만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다시는 경환이가 이전처럼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고, 지금의 상태에서 얼마나 더 좋아질 수 있을지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몇 달을 가슴에 묻어 두었던 궁금증은 초기진단에서 맹장(충수돌기염)으로 진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숨을 쉬지 못하는 상태에서 2시간 가량의 긴 시간 호흡곤란, 호흡정지 상태가 되도록 했을까 하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구토, 복통, 고열을 동반하는 경우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이 변비, 장염, 맹장이 있는데 단지 X-RAY만으로 변비로 판단한 것이나 단순하게 변비로 인한 복통이라면 미열이 생기기는 하지만 고열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조금만 더 빨리,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단을 하고, 조금만 더 응급처치가 빨랐다면 지금의 상태까지 이르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병원을 찾아 문의를 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었다.
'아이의 장애가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지금의 결과가 아이가 가진 장애로 인해 만들어 졌다는 뜻이니 청천병력의 답변이었다. 하나의 가능성임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그 가능성이란 것이 어떻게 연관돼 있다는 적절한 설명 없이 단지 아이의 장애가 지금의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다.
'정말 아이의 장애로 인해 지금의 상태가 된 것일까?'
궁금증을 풀기위한 상담이 궁금증을 더 크게 만들어 버린 셈이다. 장애인단체를 찾아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을 해 보았는데, 그곳에서 하는 말은 병원이(의사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입증의 책임이 병원에 있으니 다시 한 번 찾아가 그런 소견에 대한 설명이나 근거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병원 관계자를 만나 다른 것은 다 접어두고 한 가지에(장애와 현재 상태의 연관성) 대한 답변을 듣고 싶었지만 의사소견이 그러하니 자신이 답을 하기 곤란하다며 과실을 따지려거든 절차를 밟으라는 말과 함께 병원의 입장은 전달할 수 없단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동안 온갖 차별에 해당하는 경험을 해 왔지만 한 번도 장애를 가진 아들을 외면한 적 없이 다른 집 아이들처럼 열심히 가르치고 키워왔는데 이 무슨 해괴한 소리란 말인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환이 엄마가 답답하고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첫 번째는 초진에서 변비라는 확진을 내리고 난 후 증상에 변화가 없다면 다른 방도를 찾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그것 말고 달리 진료할 방도가 없었을까. 두 번째는 수술 후 기도 막힘 증상을 보일 때 그렇게 장시간 두고 봐야 했을까.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청색증이 온 몸에 나타나도록 중간에 할 수 있는 조치들은 없었을까. 세 번째는 지금의 상태가 아이가 가진 장애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표현은 정말 사실일까 하는 것이다.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설명이 곁들여 지면 좋겠지만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비켜 갈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여긴다면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응급실을 찾기 전의 일상생활에서 보여준 아이의 활달함을 생각하면 이런 궁금증은 생겨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엄마가 가지는 생각은 지금 그것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누구도 이 궁금증, 혹은 답답함에 속이 시원하도록 이야기 해 주는 사람이 없다. 휠체어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면 한숨이 깊어지고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으로 인해 답답함은 태산처럼 높아만 간다. 병원에서는 이런 답답함을 어떻게 해소시켜 줄 것인지 답을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의식을 잃었던 경환이가 조금씩 기운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여기가 끝일까? 이렇게 조금씩 변화를 보이다보면 예전의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나,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려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현실은 생각이나 마음처럼 다가오지 않고 있다.
장애인등록재심사의 경우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고, 지금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하는 상황도 마음에 걸린다. 마치 엄마가 아들을 지켜내지 못해 더 나빠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란다.
매일 기도하는 것 말고 자신이 아이에게 해 줄 것이 없다며 오늘도 병원 앞 교회를 찾아 간다. 그 기도에 어떤 답을 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엄마의 그 정성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최소한 가슴앓이는 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환자를 생각하는, 보호자를 생각하는 배려가 아닐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장애인신문 비마이너, 개인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