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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들>표지
 <좀비들>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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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중혁의 첫 장편소설 <좀비들>이 출간됐다. 등단 후 10년만이다. 그동안 김중혁은 <펭귄 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등 소설집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한 터라 첫 장편소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좀비들>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 채지훈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안테나 수신감도를 측정하고 있다. 그의 삶은, 직업에서 알 수 있듯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와 형을 잃은 지금, 식생활을 차에서 해결하고 있으며 정을 붙이는 것이라고는 형이 남긴 음악 밖에 없다. 그런 채지훈의 삶이 '갑작스럽게' 변하게 된 건 어떤 전파도 잡히지 않는 무통신지역 '고리오마을'을 방문한 후다.

그 마을을 방문한 후 그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뚱보130'을 만나고, 고리오마을에서 살고 있는 번역가 홍혜정을 알게 된다. 그들 덕분에 채지훈도 고리오마을 근처에서 집을 얻게 된다. 그때부터의 삶은 평온해보였다. 그러나 채지훈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늦은 밤에 불청객이 찾아온다. 불청객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걷고 눈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있다. 불청객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채지훈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불청객은 바라본다. 좀비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좀비란 무엇인가? 죽은 자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존재다. 그런 좀비가 눈앞에 나타났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사실을 믿기도 힘들거니와 믿는다 할지라도 겁을 먹고 어찌할바를 모를 것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는 좀비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뿐일까. 주변에 있던 군대는 좀비를 제거하지 않고 데리고 간다. 누가 보더라도 수상쩍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 채지훈은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친한 친구라고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뚱보130'이 좀비에게 물렸기 때문에, 좀비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백신을 찾아야 한다. 백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군데밖에 없다. 뭔가 음모를 꾸미는 것 같은, 좀비들을 데려간 군부대다. 채지훈은 그곳을 향해 가고 <좀비들>은 본격적으로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김중혁표 '좀비' 이야기이자 첫 장편소설의 정체가 공개되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인 '좀비'라는 존재와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이름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소설집 <펭귄 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그가 이야기했던 것들은 '물체'과 '소리'의 아날로그적인 것들이었다. 그는 만화 같은 상상력으로 그것들을 재탄생시켰고,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감수성을 더해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채워줬다. 그런 김중혁이 '좀비들'을 대거 출현시켰으니 그 시작이 조금은 당황스럽게 여겨지는 감도 없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김중혁은 사람들이 말하듯 '이야기꾼'의 기질을 십분 발휘해 기대했던 사람들의 '눈'을 홀린다. <펭귄 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의 감수성이 <좀비들>의 곳곳을 '향긋'하게 만드는 건 둘째치고라도 죽은 자이자 공포영화의 단골손님인 좀비를 '지켜야 할 것들'이자 인간성의 또 다른 이름으로 그려내며 자신만의 이야기 장단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사나운 불길을 피해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좀비들을 데리고 다니는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알 수 있다. 함박눈 쫓는 좀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독특한 힘으로 눈을 사로잡고 있다.

단편소설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그려내 한껏 기대를 모았던 김중혁의 첫 번째 장편소설 <좀비들>, 이야기의 '맛'과 '멋'을 보건데 이제나 저제나 소설을 기다렸던 사람들을 흡족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좀비들

김중혁 지음, 창비(2010)


#김중혁#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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