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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의 일이다. 한산한 저녁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골목길 한 켠에 쓰러져 있는 한 젊은 여성이 보였다. 행여나 골목에서 위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일으켜 세웠다. 쓰러진 여성을 일으켜 세운 후 자세히 살펴 보니 술에 흥건히 취한 상태였고 풀린 눈동자는 매우 옅은 갈색빛을 띄고 있었다. 그 여성은 일으켜 세운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더니 단번에 도와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남편.. 저를 쫓아와요. 너무 무서워요."

서툰 한국어 솜씨는 단번에 그녀가 한국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애원하는 여성을 진정시키며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했다.

"남편 지금 쫓아와요. 무서워요. 살려주세요. 칼을 들고 있어요. 내 아기가 보고 싶어요. 우리 아기 찾아주세요. 우리 아기 돌려주세요."

남편이 칼을 들고 있다니, 그 여성이 너무 걱정이 되어 핸드폰을 꺼내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여성은 절대로 신고해서는 안 된다며 나의 핸드폰을 뺐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난.. 사실.. 불법체류자예요. 신고하면 나는 떠나야 해요. 내 아기 볼 수 없어요. 신고하면 안 돼요."

서툰 한국어 솜씨로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끝에 그녀가 외국인 노동자로 지금은 불법체류자의 신분에 해당하며 한국인 남성과 동거 상태에서 아이를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거남성은 폭력적인 성향이 너무 강해 매번 이 여성을 폭행해온 상황이었고, 아이로 인해 참으며 동거생활을 지속해오고 있다가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너무 무서운 나머지 갓난아기를 볼모로 자신을 구속하는 남편을 뒤로한 채 집을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이 외국인 여성의 자초지종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다. 이 여성은 매우 다급한 상황에 놓였으나, 제3자의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이 여성의 남편을 신고하자니 여성이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본국으로 강제추방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고, 신고를 하지 말자니 남편이 무서워 오갈데 없이 술에 의지해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이 여성이 걱정되었다. 그 여성은, 나를 한사코 잡으며 울며불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내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요..."

그 여성이 너무 안타까웠지만 학생인 나는 어떻게 도움을 줘야할지 그저 막막한 상황이었다. 근처 약국으로 뛰어가 술 깨는 약을 산 뒤에 술에 잔뜩 취한 여성의 손에 쥐어주고서는 그저 그 자리를 피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여성을 뒤로하고 오면서 그 여성의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한동안 눈에 밟혀 잊히지 않았다.

위의 일을 계기로 또다시 그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그 여성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내국인의 아이를 갖게 된다면 자녀는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지, 그 자녀에 대한 친모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불법체류자로서 폭력적인 남편을 고소할 합법적인 절차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 여성이 불법체류자의 신분을 벗고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또한 생겼다.

국적법을 살펴본 결과 본래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법적으로 이중국적을 취득할 수 있으나(국적법 제6조1항2호), 실제적으로 불법체류자의 경우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한국 국적의 소지자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자녀를 호적에 사생아로 입적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위의 여성이 친모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불법체류자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적법에서는 외국인이 법무부장관의 귀화허가 신청을 받아 귀화 요건을 갖춘자에 한해서만 귀하를 허가한다(국적법 제4조 1, 2항).

국적법 제 6조 [일부개정 2010.5.4 법률 제10275호 시행일 2011.1.1]
 제6조(간이귀화 요건)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에 3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자는 제5조제1호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하여도 귀화허가를 받을 수 있다.
1.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던 자
2.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로서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
3. 대한민국 국민의 양자(養子)로서 입양 당시 대한민국의 「민법」상 성년이었던 자
② 배우자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외국인으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제5조제1호의 요건을 갖추지 아니하여도 귀화허가를 받을 수 있다.
1. 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2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자
2. 그 배우자와 혼인한 후 3년이 지나고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1년 이상 계속하여 주소가 있는 자
3. 제1호나 제2호의 기간을 채우지 못하였으나, 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주소를 두고 있던 중 그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또는 그 밖에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자로서 제1호나 제2호의 잔여기간을 채웠고 법무부장관이 상당(相當)하다고 인정하는 자
4. 제1호나 제2호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으나, 그 배우자와의 혼인에 따라 출생한 미성년의 자(子)를 양육하고 있거나 양육하여야 할 자로서 제1호나 제2호의 기간을 채웠고 법무부장관이 상당하다고 인정하는 자
[전문개정 2008.3.14]                                                                  -출처 :국회법률지식정보시스템

또한, 그러한 귀화 요건으로 위와 같은 간이귀화의 법률적인 제한을 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배우자가 대한민국 국민일 때 혼인으로 인한 귀화신청을 위해서는 '법률상 혼인관계'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법률상 혼인'의 의미는 본국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한국인 배우자와 정식 혼인신고가 이루어지고 한국인 배우자와 혼인관계증명서에 혼인 사실이 표기된 자를 뜻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와 같이 정식 혼인 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외국인 배우자와 그 자녀에 대해서는 국적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실질적으로 혼인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동거남 관계에 있는 남편과 부당한 관계에 있어도 실질적으로 어떠한 합법적 요구를 할 수 없는 처지다. 이 같은 사실은 개정된 국적법 역시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포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날로 많아지는 만큼 장기 불법체류자의 수도 늘어가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으키는 사회범죄 또한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외면하거나 한사코 등을 돌리고 그들을 마냥 질책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3D라고 불리는 일들을 낮은 임금으로 도맡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 각종 폭력과 폭언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우리 사회에게 필요한 것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적극적인 관심이다. 단순한 감정적인 반응을 넘어서 그들에 대한 법률적, 도덕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호주 시드니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타일공으로 일하다 폐질환을 앓게 되어 제때 병원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게 된 한국인 남성에 대한 이야기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그저 남의 일만은 아님을 알려준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시급한 의료혜택 등을 받지 못하고,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 있어서까지도 언제까지 불법만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불법체류자라고 해서 이들의 생명까지도 불법체류된 것은 아니다. 무조건 등을 돌리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존중하며  법률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어떻게 품을지에 대한 방안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불법체류자#귀화요건#사실혼#법률상혼인#외국인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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