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과 신문을 보다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스마트폰 이야기다. 방송과 신문이 마치 스마트폰 광고의 각축장처럼 보인다. 한 마디로 '똑똑하다'는 스마트폰. 사용자도 똑똑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마치 앞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선각자들 처럼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 4'를 개통하기 위해 줄지어 서고, 첫 번째 개통하는 고객은 여기저기 TV화면과 신문 지면에 영웅처럼 등장했다.
막힌 길을 돌아가는 똑똑한 스마트폰 사용자 덕에 교통 분산 효과가 있어 귀성길이 빨라졌다느니, 스마트폰이 쇼핑 혁명을 예고한다느니, 농사에서 첨단기술에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마치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문제도 쉽게 풀어 주는 마술봉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과연 얼마나 쓴다고 그럴까 싶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내 주변이 이상한 건지 스마트폰 사용자는 그리 많지 않다. 스마트폰 때문에 교통이 분산됐다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영향을 보았는지 검증할 수도 없다. 내비게이션이나 방송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한데 말이다. 말 그대로 요즘 분위기로는 잘된 일은 모두 '스마트폰 효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격세일'은 '스마트세일', '친절서비스'는 '스마트서비스'로 이름까지 바꿔 부르는 형국이니 스마트는 통신분야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서 말 그대로 지금은 대세다.
대세 흐름에 나도 바꿀까?
스마트폰 열풍에 주눅 아닌 주눅이 들어 핸드폰을 바꿀 요량으로 지난 토요일 테크노마트에 들렀다. 핸드폰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판매점이 늘어서 있다. 여기저기 핸드폰 보고가라는 영업사원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중 한 곳을 들렀다.
특별한 혜택도 없는데 짝사랑하듯 오랫동안 011을 사용해온 나다. 단말기도 애지중지하며 3년 넘게 사용한 슬라이드 폰이다. 당시 010으로 바꾸면 더 좋은 단말기를 공짜로 받을 수 있는데 011을 고수하기 위해 괜한 고집을 피우며 20만 원 가까운 비용을 부담했다. 그만큼 나의 '011 사랑'은, 아니 '고집'은 대단했다.
핸드폰을 한 번 보자는 판매점 영업사원의 첫마디는 "정말 낡았네요"였다. 3년여 동안 함께한 핸드폰에 대한 저평가에 괜한 자존심까지 상했다. 원하는 기종이 있는지 스마트폰 계획은 없는지, 통신사를 바꾸는 것은 어떤지 등등 여러 가지를 물었다.
해지를 하고 다시 가입하거나 통신사를 바꾸거나, 고액의 정액제를 쓰지 않으면 스마트폰은 둘째 치고 판매점에 써 있는 '공짜폰'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결국, 지금 쓰는 핸드폰이 통화나 DMB 시청 등 사용하는 데 크게 불편이 없고 나름 정도 들었다는 핑계를 만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통신비 걱정에 '포기각서' 쓰고 터치폰으로... 스마트폰은 다음에
집에 돌아왔는데 판매점 직원의 "정말 낡았네요"가 머리에 계속 떠올랐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쟁이 아저씨'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창피하기까지 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친구의 "티코 타다 그랜저 타는 느낌"이라는 사용 후기도 거슬렸다. 결국 다음날 잠실의 핸드폰 판매점을 들렀다.
'가입비 공짜', '유심비 공짜', '단말기 공짜', '친절 최고'라고 쓰여진 판매점이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좋은 만큼 정액제에 할부금까지 만만치 않았다. 우리 가족 네 명의 한달 통신비를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와이파이가 가능한 신형 터치폰을 샀다. 2년 이상 사용한 고객이 누릴 수 있는 기기변경. 일명 나는 '행복기변' 대상자여서 그나마 가능했다.
010으로 바꾸고 월 할부이자만 분할해 내는 조건이다. 유심비 공짜는 신규가입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하고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거기에 2년 동안 장기 가입 할인혜택과 포인트 적립이 중지되는 조건이다. 일종의 '포기각서'를 썼다. '행복기변'인데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당장 돈 안 들어가는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따지고 보면 후회할 일인지도 모르지만 핸드폰 때문에 삼고초려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판매직원이 던진 "와이파이가 가능해 스마트폰이나 다름이 없어요"라는 말이 위안이 됐다. 스마트폰의 거센 파고를 거스를 수 없어 택한 나름의 절충점이다. 스마트폰을 사면 중독에 취약한 내가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한몫했다.
어제 하루는 새로 구입한 터치폰의 기능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스마트폰도 아닌데 기능이 많이 늘어났다. 익숙하지 않아 불편했다. 슬라이드폰을 쓰다 터치폰을 쓰니 나도 모르게 화면을 자꾸 올리기도 한다. 터치폰이 이러니 스마트폰은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많은 애플리케이션까지. 스마트폰 이용강좌가 여기저기 열리는 것이 이해가 됐다. '공부'까지 해가며 사용을 해야 하니 첨단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름 '기술'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전에 쓰던 핸드폰이 그리울 정도다. 그래도 더 이상 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익히고 익혔다.
속도경쟁에 숨이 '헉헉'... 조금만 천천히 가자
기술의 진화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물건을 사는 순간 '중고'가 되어 버리고 옛날 버전이 되는 시대. 3년 넘게 쓰고도 멀쩡한 핸드폰은 이제 골동품이 되어 우리집 박물관(서랍)에나 고이 간직해야겠다. 핸드폰 판매점의 진열된 제품의 상당수가 단종된 것을 보면 내 핸드폰은 그나마 수명이 길었다. 지금 산 핸드폰도 조금 지나면 또 구닥다리 취급을 받을 것 이다.
얼마 전 한 방송인이 TV에서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물건 하나를 써도 대물림한다는 생각으로 사용하라." 물건을 소중히 하라는 정말 좋은 이야기이다. 사용한 사람의 흔적과 숨결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의 진보 속에 대물림은 불가능하다. 추억으로 간직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스마트폰의 출현과 첨단기술의 진화가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이다.
우리는 기술의 진화 속에 많은 편리함을 얻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는 것도 적지 않다.
더욱이 지금의 스마트폰 시장은 무엇인가 너무 과열되고 들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과열에 과속경쟁까지. 핸드폰 단말기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듯 기술경쟁도 지나친 속도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하루하루 스마트폰 뉴스에 숨이 헉헉 찰 정도다. 과속경쟁 속에 스마트폰의 통화의 질과 보안문제 등도 하나 둘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스마트폰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포장된 것은 없는지, 그로 인해 문제점이 가려지고 있지는 않은지 찬찬히 챙겨 볼 때가 된 것 같다.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터지는 법이니 말이다. 스마트폰을 구입하지 못한 사람의 푸념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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