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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황금어장 - 라디오스타>
MBC <황금어장 - 라디오스타> ⓒ MBC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이하 <라디오스타>)에서 신정환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단지 '4명의 MC 중 한 명'인 사람이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라디오스타>는 신정환으로부터 출발해 신정환에서 마무리지어지는 방송이었다.

김구라의 독설과 논리적인 개그가 먹혀들어 가는 것은 신정환의 이른바 '무(無)논리' 개그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윤종신은 신정환이 게스트를 공격하면 그것을 다시 한 번 재활용하는 '주워 먹기' 개그로 웃기고, 김국진은 신정환이 너무 나갔다 싶었을 때 적절히 흐름을 끊고 방송을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중심타 역할을 했다.

이처럼 방송의 핵이었던 신정환이 하차하게 되면서 <라디오스타>는 본래 지니고 있던 그만의 균형이 무너지고, 그로 인해 <라디오스타>가 지닌 장점들마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의 방송 분량이 통째로 편집됐던 2주 전의 '박준규·이루·이유 편'을 보면 신정환의 존재가 <라디오스타>에서 얼마만큼 큰 것이었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다.

그 날의 방송에서 <라디오스타>는 일반적인 토크쇼로 전락해 있었다. MC가 묻고, 게스트가 답하는, 그런 평범하고 흔해 빠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토크쇼가 돼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물을 것도 없이 신정환 분량의 통편집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편집 당한 건 신정환인데 방송 내내 김구라 역시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카메라에 잘 비춰지지 않아 그 존재감이 극도로 희미해져 버렸다.

<라디오스타>의 재미는 신정환과 김구라로부터 출발한다

 <라디오스타>의 재미는 신정환과 김구라로부터 만들어진다.
<라디오스타>의 재미는 신정환과 김구라로부터 만들어진다. ⓒ MBC 화면캡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김구라는 <라디오스타>에서 철저하게 신정환과 엮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개그를 던지면 신정환은 그에 동조하거나 면박을 주며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가고,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낸다. 그 흐름은 다시 김구라에게 넘어가거나, 혹은 윤종신이 주워 먹거나, 혹은 김국진이 종결짓는다. 그러니 신정환의 분량을 편집하려면 먼저 김구라의 토크를 전부 잘라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박준규·이루·이유 편'에서 김구라, 신정환은 사라지고 윤종신만 남았다. 그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게스트들은 꼬박꼬박 그의 질문에 대답만 했다. 한 가지 질문과 그 대답을 통해 대본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 게스트의 색다른 면을 발견케 하고, 재미를 만드는 토크쇼의 매력이 팍, 죽어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신정환이 하차하면서 <라디오스타>는 일반적인 토크쇼와는 차별화됐던 그만의 색깔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라디오스타>가 일반적인 토크쇼와 다른 점, 그것은 바로 게스트 중심의 쇼가 아니라는 것이다. <라디오스타>는 게스트를 홀대(?)하기로 유명하다. 게스트를 스튜디오 밖에 앉혀놓고 MC들끼리 오프닝을 겸한 수다를 길게 떨다 결국 게스트가 참지 못하고 소개도 없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종종 있을 정도다.

토크쇼는 게스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MC와 패널들은 모두 게스트를 위해 존재하고, 명 MC로서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어떤 방식으로든 게스트로부터 토크를 이끌어내는 데 능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유능한 MC라고 해도 예능감이 떨어지는 게스트로부터 재미와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토크쇼는 게스트에 따라 방송의 재미가 널을 뛴다.

그러나 <라디오스타>는 게스트로부터 재미가 나오지 않는다. <라디오스타>의 진짜 재미는 4명의 MC들이 치고 받는 사이에서 나온다. 김구라가 독설을 날리고, 신정환은 면박을 주고, 윤종신은 그걸 주워 먹는 과정에서 재미와 웃음이 유발된다. 게스트가 김흥국처럼 예능감이 충만한 사람이건, 애프터스쿨의 나나처럼 방송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예능 초보이건 관계없이 양질의 재미를 뽑아내는 예능이 <라디오스타>다.

김태원, 신정환의 빈자리를 메워라

 2년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숨겨졌던 끼를 발산한 김태원.
2년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숨겨졌던 끼를 발산한 김태원. ⓒ MBC 화면캡쳐

신정환의 하차로 이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꺼내든 카드는 '일일 객원 MC'의 투입이었다. 제작진은 앞으로 당분간 매 촬영 때마다 신정환의 자리에 객원 MC를 투입시키고, 다양하게 실험을 해 볼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바로 어제(29일), 첫 객원 MC로 김태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정환의 후임 자리를 놓고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여러 후보들을 거론하며 갑론을박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던 인물은 단연 탁재훈이었다. 무엇보다 신정환이 해주던, 게스트에게 능글맞게 깐죽거리며 김구라와 호흡을 맞추는 역할을 탁재훈 이상으로 해줄 예능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김태원은 거의 거론되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태원은 신정환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방송 한 주 만에 <라디오스타>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예능 늦둥이로 방송가에서 활약하는 그가 자신이 가진 '할매' 캐릭터로 <라디오스타>에 안착했다. 그는 눈이 나빠 대본이 잘 안 보이고, 이제는 신조어라 부르기도 민망한 '엄친아'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김구라는 그런 김태원을 보며 "여러 가지 악조건입니다"라고 거들었지만 그 악조건은 의외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대본 영향이 크지 않은 예능을 주로 한 탓에 긴장해 대본에 집중한 그는 휙휙 지나가는 흐름 속에서 대본대로 하려다 낭패를 보고, '엄친아'를 "엄청 친한…"으로 상상해 좌중을 쓰러뜨렸다. 특유의 느릿한 페이스에 기존 MC들이 말려들고, 거기에 게스트들이 빨려오면서 예기치 못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라디오스타>에 빠르게 적응한 김태원

 김태원은 누구보다 빠르게 <라디오스타>에 적응했다.
김태원은 누구보다 빠르게 <라디오스타>에 적응했다. ⓒ MBC 화면캡쳐

사실 김태원은 <라디오스타>와는 인연이 깊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에게서 예능인의 가능성을 보여준 첫 방송이 <라디오스타>였고, 방송가 관계자들에게 김태원을 추천하고 다닌 사람은 친분이 깊은 김구라였다. 윤종신과는 음악계 선·후배 사이인데다 동갑내기 김국진과는 같은 방송에서 1년 넘게 호흡을 맞추고 있으니, 기존 MC들과 융화되는 과정 또한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날의 게스트가 김태원과 비슷한 세대인 아역 출신 탤런트 김민희, 안정훈 등이었다는 것은 김태원의 <라디오스타> 적응을 더 쉽고 빠르게 하는 데 일조했다. 김민희는 과거 자신이 미팅 자리에서 김태원과 이승철을 만난 경험을 이야기했고, 김국진의 이혼에 맞먹는 김태원의 아킬레스건인 이승철이 언급됨으로 인해 김태원은 "이승철씨가 팀을 나간 이유가 있었군요"라며 자폭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어제의 방송은 모처럼 신정환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라디오스타> 제작진이 앞으로 어떤 이들을 객원 MC로 투입시켜 무슨 실험을 다양하게 할 것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것 하나만 명심하면 될 것이다. 신정환의 자리에 들어갈 MC는 무엇보다 김구라와 융화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김구라의 턱을 잡을 사람이 필요하다.


#라디오스타#신정환#김구라#윤종신#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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