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m도 파 내려가지 않았는데 시커먼 흙이 나왔다. 그 속에는 콘크리트와 아스콘 덩어리, 침목, 하수관 파이프 조각, 비닐, 철근 등이 나왔고 냄새도 났다.
2일 오후 경남 김해 상동면 소재 4대강정비사업 낙동강 8~9공구 준설 예정지에서 대규모 폐기물이 매립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경상남도 '낙동강사업 특별위원회'가 주민 제보에 근거해 지난 9월 30일 폐기물 매립 사실을 공개했고,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사천)이 이날 굴착기를 통해 파보았더니 매립되었던 폐기물이 드러난 것이다.
이곳은 부산시민의 식수를 공급하는 매리취수장에서 2km, 물금취수장에서 6km 상류에 있다. 이곳은 그동안 사유지였는데, 정부가 4대강사업을 시작하면서 지난해 국가하천 구역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낙동강특위는 대규모 폐기물 매립 사실을 밝힌 뒤, 시추·발굴할 예정이었으나 하천점용허가를 얻지 못해 시료채취를 못 했다.
이날 굴착기를 동원한 발굴은 강기갑 의원이 현장조사를 벌이면서 가능해졌다.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전문위원도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곳은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고 있는데 아직 준설작업이 시작되지 않았다. 최근 문화재 시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폐기물이 드러났는데,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날 강 의원의 현장조사에는 국토해양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김정훈 하천국장과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 이율범 환경관리국장 등이 참여했다. 또 4대강사업저지 낙동강지키기 경남·부산본부와 김해상동매리주민대책위, 석영철 경남도의원 등이 참여했다.
이곳에는 450만t 규모의 건설·산업·오염 폐기물이 불법 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낙동강사업 8~9공구는 3.4km 구간이다. 주민들은 3m 깊이로 폐기물을 묻고 그 위에 1~2m 정도 '복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동강특위는 "1990~2000년대 초 부산지하철공사와 제2 롯데월드 공사현장의 대규모 매립토 등의 불법 폐기물이 매립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현장조사(발굴)는 낙동강사업 9공구와 8공구에서 각각 1지점씩 이루어졌다. 9공구 조사지점은 산딸기 재배지였는데,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아 풀로 뒤덮여 있었다. 굴착기를 2m 가량 파 내려갔더니 시커먼 흙이 나왔다.
8공구 조사지점은 낙동강 샛강이 바로 옆에 보이는 곳으로 1.7m 가량 파 내려가니 시커먼 흙과 함께 온갖 건설폐기물들이 나왔다.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 관계자는 시료를 채취해 갔다. 민주당은 이날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의 성분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 뒤 국정감사 때 공개할 예정이다.
주민대책위 "새벽에 덤프트럭으로 폐기물 들여와"주민들은 이곳에 폐기물이 매립된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낙동강 바로 옆에 붙은 사유지였는데, 이전에는 홍수 때마다 수몰되어 농사에 피해를 업었던 것. 농민들은 땅을 높여 준다는 업자의 말을 믿고 맡긴 것이다.
이곳에는 대부분 산딸기를 주로 재배해왔다. 땅을 높은 뒤 다음 해부터 산딸기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했다. 일부 땅은 일반 흙을 가져와 다시 '객토'를 하기도 했다.
김해상동매리주민대책위 정순옥 위원장은 "당시 이 일대 주민들은 다 안다. 새벽에 덤프트럭이 드나들면서 주민들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왜 덤프트럭이 새벽에 작업했는지 이제야 알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객토를 해놓고 보니 물은 안 들어서 좋았지만, 산딸기나무가 죽는 현상이 나타났다. 아래 토양이 오염돼 있으니 그렇게 된 것"이라며 "한해 상동면 주민들은 산딸기로 100억 원을 벌었는데, 4대강사업이 된 뒤 아무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는 4대강사업을 한다면서 사유지를 하천부지로 편입시켜 버리고 보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있다. 공산주의도 이런 식으로 안할 것이다. 이렇게 비싼 땅을 공원으로 만든다는데, 우리나라가 그렇게 돈이 많나. 나랏빚도 많다는데 말이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 박용근 사무국장은 "그때 덤프트럭에 싣고 온 흙은 죽처럼 출렁거렸다"면서 "농민들은 싸게 땅만 돋우어 준다고 하니 응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국토관리청 자체 조사 못 믿어, 민관합동조사 해야"김철 환경과자치연구소 이사는 "주민들의 증언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일대에는 450만 톤의 폐기물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폐기물은 침출수가 밑으로 스며들게 되는데, 그렇게 보면 규모는 더 크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정부가 4대강사업을 하면서 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 했지만, 준설과 관련되어서는 표본조사만 하고 지하층까지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희 낙동강경남본부 공동대표는 "국토해양부는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환경부도 환경성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이전에 이 곳에 폐기물이 매립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고, 그것은 기정사실인데 왜 조사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희자 마산창원진해환경연합 사무국장은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토지와 관련한 조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제기했는데 안하고 넘어갔다"면서 "지금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폐기물과 관련한 조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믿을 수 없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관 합동으로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준경 낙동강부산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이전에 왜관지역에서 폐기물이 드러난 적이 있다. 20여 년 전 삼랑진 지역에서 폐기물을 묻은 업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부산에서 나온 폐기물이 김해지역에 매립된 것인데, 낙동강 강변 전반에 걸쳐 조사를 해야 한다. 특히 대도시 인근지역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4일부터 조사 벌여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1일 낙동강사업 8~9공구에 대한 '공사중지 협조요청'했으며, 국토해양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4일부터 현장 조사를 벌인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이율범 국장은 "문화재 조사 때 폐기물이 나왔다. 정밀조사를 하려면 사전에 협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이전에 함안보(18공구)에서도 준설토와 관련해 공사중지 요청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 협조요청을 해놓았다"고 말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김정훈 국장은 "낙동강사업 지표 조사 때는 폐기물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번에 문화재 조사를 하다보니 쓰레기가 나왔다. 부산지역에서 대규모 공사를 하면서 나온 폐기물이 매립장으로 가는 도중에 어떤 방식으로 묻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검찰 조사가 필요하다. 책임 회피는 아니지만, 하천 유지관리는 자치단체에서 하고 국토관리청은 지도감독권한이 있다"면서 "환경영향평가를 하면서 지하에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강기갑 의원은 "정부가 4대강사업을 하면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시민단체가 계속해서 지적했지만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정부는 시민과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이곳은 부산시민의 식수를 취수하는 곳이다.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국정감사 때 따질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