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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방학, 딸아이가 근처 체육관에서 수영을 배웠다. 차 운행표 시간이 아이의 스케줄과 잘 맞지 않아 수영 수업이 이뤄지는 체육관까지 내가 직접 딸아이를 데려다줘야 했다. 그런데 체육관 가는 길에는 우진문화공간이라는 곳이 있다.

전시회도 열리고 음악회도 열리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담쟁이 넝쿨이 멋스러운 곳이다. 여름방학 두 달 동안 날마다 딸아이를 싣고 다니는 '드라이버 맘'이었던 나는 담쟁이 넝쿨이 시원하게 드리워진 건물을 바라보면서 '언제 한 번 가봐야 할 텐데...'를 매일 주문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그런데 그 주문이 이뤄졌다. 지난 9월 말에 열린 고기현 작가의 개인전 '잃어버린 낙원' 덕분이다.

전시회장 내부.
 전시회장 내부.
ⓒ 고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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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현(45) 작가와 전화 통화를 했을 때 처음엔 작가의 딸이 받은 줄 알았다. 목소리가 낭랑했고 밝았다. '안티에이징'을 선호하는 시대에 고 작가의 앳된 목소리는 완전호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지 몰라도 본인에게는 '콤플렉스'라고 했다. 하긴 매사가 그런 것 같다. 남들 눈에 좋게 보이는 것도 당사자의 속내를 들춰보면 영 딴판인 수가 있다. 삶의 이중성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이번 전시회에는 아주 특별한 소재가 등장한다. 바로 '미키 마우스'다. 동양화를 전공했고 전통적인 소재로 작품활동을 했던 이력에 비추면 '미키 마우스'의 존재는 의문과 호기심을 일으킨다. 그녀가 미키 마우스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미키 마우스 작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2월, 전북대 근처 '공유갤러리'에서 열었던 첫 개인전에서 미키 마우스가 첫 선을 보였다. 이전까지 한지와 광목 등 전통소재를 사용해 작품활동을 했던 그녀에게 웬 생뚱맞은 미키 마우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그녀의 '변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미키 마우스와 관련된 아주 특별한 추억이 있다.

"5~6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아는 친척 할머니 한 분께서 당시 미국에서 살고 계셨는데 저에게 미키 마우스가 있는 장난감 전화기를 선물로 주셨어요. 지금이야 미국 제품이 흔하지만 그때는 어디 그랬나요? 속된 말로 완전히 '짱'된 거죠. 애들이 저를 어찌나 부러워하던지요. 그때 당시에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마음의 위로처가 되어준 것이 바로 그 미키 마우스 전화기였어요.

당시 부모님이 모두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미키 마우스 전화기를 많이 가지고 놀았어요. 결혼하고 난 뒤에도 제 작업실에 이 미키 전화기를 놓아두었죠. 그런데 어느날인가, 밤 늦게 작업실에 앉아서 작품구상을 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갑자기 이 미키가 눈에 번쩍 띄는 거예요. 먼지투성이였는데 그게 꼭 제 얼굴 같더라고요."

그녀가 미키 마우스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

모든 영감은 우연처럼 스친다. 하지만 100% 우연은 없다. 미키가 고씨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지 모른다. 당시 고씨는 새로운 소재를 찾아서 머리를 싸매고 있던 중이었다. 한지나 광목섬유 등 전통 소재만으로는 외국인과 젊은이들에게 다가서기에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뭔가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미키'의 존재다.

미키마우스의 유년시절. 이때만해도 순수한 미키가 있었다.
 미키마우스의 유년시절. 이때만해도 순수한 미키가 있었다.
ⓒ 고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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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속에 비친 모순된 미키의 모습과 총싸움을 하는 파괴의 미키의 모습. 반짝이는 건 LED를 사용한 효과.
 거울속에 비친 모순된 미키의 모습과 총싸움을 하는 파괴의 미키의 모습. 반짝이는 건 LED를 사용한 효과.
ⓒ 고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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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열었던 전시회의 미키는 밝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였다. 모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상징이었다. 특히 한지에 그린 미키 그림의 뒷면에 '조명'을 더함으로써 더욱 입체적으로 신비스런 느낌의 작품을 연출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의 미키는 뭔가 다르다. 짓궂고 못되게 생겼다. 생기긴 미키 같이 생겼는데 우리가 늘 보아오던 그런 미키가 아니었다.

"미키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청년기, 중년기, 최후까지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봤어요. 지난 전시가 '수호천사'로서의 미키를 등장시켰다면 이번에는 자본주의에 순수성이 잠식되고 노예가 되어가는, 그럼으로써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악당 미키를 나타냈죠."

미키의 또 다른 얼굴이다. 미키는 천진난만한 동심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월트디즈니'로 상징되는 천박한 미국의 자본주의를 상징하기도 한다. 비슷한 아이콘으로는 '산타'가 있다. 미키의 천진난만한 미소에서 악랄한 표정과 속물적 욕망을 끄집어 낸 작가의 안목과 무의식이 궁금했다.

"먼지에 푹 뒤집혀 웃고있는 미키의 미소를 보니까 갑자기 환한 웃음 뒤에 가려진 비열한 자의 웃음과 냉소가 보였어요. 아마 그 당시 제 자신이 사회 진출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람관계에서 오는 회의와 스트레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전문화가로서 활동하게 된 것은 좋았지만 그 이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갈등까지는 생각하진 못했죠."

누구에게나 이런 양면성과 이중성은 있다. 고씨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모든 현상의 이중성을 느꼈다. 빛과 그림자, 부드러움과 거침, 안과 밖, 조화와 파괴... 그리고 엄마와 화가라는 이름 사이에서.

늘 화가를 꿈꿨다 그러나 엄마였다

고씨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대학졸업 후 24세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는 두 남매를 낳으며 평범한 전업주부로서 살아왔다. 당시 서울에서 살았던 고씨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유일무이한 꿈이었던 '화가'에 대한 열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엄마'와 '아내'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화가'로서의 삶을 짝사랑하듯 매일같이 꿈꾸었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전주로 내려온 건 8년 전. 자신의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고, 최근에는 이마저 그만두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 작품활동을 병행하기가 너무 벅찼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작가로서의 활동에 좀 더 집중하고 싶기도 했단다.그러나 다른 역할은 다 생략하고 소홀히 한다고 하더라도 '엄마'로서의 역할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두 아이들은 고3, 고2다. 고씨의 하루는 어떨까?

고기현 작가
 고기현 작가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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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죠 뭐.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해서 먹이고 학교 데려다 주고 다시 집에 돌아오면 기본적인 것들 있잖아요. 청소, 설거지, 빨래... 그렇게 해놓고난 후 작업실로 향하죠. 친구도 만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내요.

영화도 잘 안 보구, 쇼핑 같은 것도 잘 안해요. 작업이 잘 된다 싶으면 식사도 거른 채 작업을 하죠. 그러다 저녁시간이 되면 집에 돌아오고요. 그림이 잘 그려질땐, 정말 마음 같아서는 밤새도록 작업실에 있고싶지만 어디 그럴 수야 있나요. 집에 와서도 작품생각에 새벽내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죠."

아무래도 식구들은 '화가'로서의 엄마보다 엄마로서의 모습을 더 원하는 것 같다고 한다. 미키에게도 두 가지 얼굴이 있듯이 고씨에게도 두 가지 모습이 있다. 작업실에서 '화가'로서의 모습과 집에서 '엄마'로서의 모습.

어떤 것이 자신의 본래 모습인지 정답은 없다. 둘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하단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좀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고 고씨는 생각한단다. 어쨌거나 고정된 틀에 자신을 맞추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동심의 상징 미키처럼 말이다. 미키에게도 썩소와 냉소도 있을 텐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고기현 작가의 전시회 <잃어버린 낙원>은 9월 16일부터 29일까지 전주우진문화공간에서 열렸습니다.



태그:#미키마우스, #고기현, #잃어버린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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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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