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물상 하루에도 몇 번 씩 5톤 트럭이 와서 모은 고물을 실어 날랐습니다.
▲ 고물상 하루에도 몇 번 씩 5톤 트럭이 와서 모은 고물을 실어 날랐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처음 해보는 일이라 그런지 참 힘드네요. 어제에 이어 오늘(10월 5일)이 이틀째인데 벌써 녹초가 되어 버렸네요.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팔도 아프고 온 몸이 욱신 거리고 허벅지에서 쥐도 나네요.

지난 3월 15일 현대자동차 하청업체로부터 정리해고 당한 후 고용보험으로 견디며 마땅한 일자리를 찾아 보았지만 나이가 많고 기능이 없다고 받아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7월 22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났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마지막으로 희망을 품을 곳이 생겼지요.

하지만 2개월이 지났는데도 현대차 사측은 갖은 노동탄압만 일삼을 뿐, 불법파견에 대한 해결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가족 생계에 도움되던 실업급여마저 9월 말일 부로 끊겨 잠시나마 힘차게 해왔던 불법파견 직접고용 투쟁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실업급여도 끊기고... 고물상에 취직하다

우선 저에겐 가족과 함께 먹고 사는 일이 큰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장 급한 저에게 일자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아는 분과 산보를 하는데 어느 골목에 '기사 구함'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그곳은 작은 고물상이었습니다. 고물상이라는 곳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어머니가 주워 모으는 박스나 신문을 모아 몇 번 같이 실어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딱히 지금 다른 곳을 알아 볼 처지도 못되고 해서 그곳을 임시 직장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전화번호를 적어 다음날 바로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언제 오라고 해서 가보았습니다. 고물상 사장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이런 일 해보았느냐?"고 물어 "해본 적은 없지만 어머니가 파지를 모아 갖다 주는 것을 몇 번 도와준 적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당장 직원이 급한지 한 번 일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처우 문제를 바로 이야기했고 또한 유의사항도 직접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 일은 힘든 일이면서 월급은 적어요. 한 달에 두 번 쉬고 월급은 130만 원입니다. 그리고 하루 일과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입니다. 점심은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온 지 20여 년 동안 부정을 저지르는 직원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내 삶의 터전인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나는 그런 일로 걸리면 바로 잘라 버립니다."

고물상 주인 말 뜻은 "구리 같은 비싼 물건을 몰래 가져 가지 말 것"을 강조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좀 기분이 그랬지만 이해했습니다. 가져갈 생각도 없지만 안 가져 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고물상 주인은 이야기가 다 끝나자 다른 직원 한 사람을 불러 저에게 할 일을 알려 주라고 했습니다.

"부정을 저지르면 나는 바로 잘라버립니다"

철조각과 구리 분리작업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톡톡 때리며 철조각을 때어냅니다. 
철조각을 때어 내고 나면 구리만 남습니다. 검은 것이 철조각이고
하얀 테잎으로 감긴 것이 구리입니다.
▲ 철조각과 구리 분리작업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톡톡 때리며 철조각을 때어냅니다. 철조각을 때어 내고 나면 구리만 남습니다. 검은 것이 철조각이고 하얀 테잎으로 감긴 것이 구리입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첫 출근해서 제가 맡은 작업은 철조각에 붙어 있는 구리를 분리해 내는 일이었습니다. 모터나 작은 변압 장치에 보면 철조각에 구리가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덩어리를 쇠 절단기로 반을 싹둑 자릅니다. 이미 잘라 놓은 고철 덩어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절단기로 자르는 일은 다른 직원이 했습니다.

그 동네엔 그런 고물 수집상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제가 임시 직장으로 들어간 그 고물상은 그 중 규모가 큰 곳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직원 한 명만 있는데 그곳은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또 저는 고물로 쓰이는 게 박스나 책, 신문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일하면서 고물로 수집되는 물건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문이나 박스, 책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수집 물품 중 하나였습니다. 그 외에도 빈병, 헌옷, 전자제품, 플라스틱, 건설 자재, 쇠붙이, 구리, 동,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깡통이 있었습니다. 수집 비용을 알아보니 박스 110원, 신문·책 120원, 동 3000원, 구리 6000원. 대략 그랬습니다. 1㎏ 당 그렇게 책정된 금액이고 그 가격은 매일 금리에 따라 변동이 되는 듯했습니다. 또, 고물상마다 가격이 다 달랐습니다. 위 가격은 평균치라 보면 될 듯합니다. 위 가격 이상도 이하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물상 주인 마음이니까요.

저는 일자형으로 된 작은 망치를 들고 쇠붙이를 톡톡 두드렸습니다. 단단하게 붙어있는 쇠조각을 분리해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것은 쉽게 분리되었으나 어떤 것은 본드를 붙인 것처럼 단단하게 붙어 있어서 용을 쓰고 쇠붙이를 내리쳐야 했습니다. 쇳조각은 쇳조각 대로, 구리는 구리대로 분리해서 큰 양동이에 모았습니다.
  
작업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몹시 힘들어졌습니다. 목욕탕에서 쓰는 낮은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망치질한다는 게 쉬워 보이면서도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점심 먹으라는 말에 시간을 보니 12시가 훨 넘었습니다.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외에는 별도로 쉬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점심 시간도 밥 먹는 시간 후 차 한잔 마시고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 다 일하는데 혼자 쉴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같이 일했습니다.

다친 손가락 망치질을 잘 못해서 손가락을 내리 쳤습니다.
▲ 다친 손가락 망치질을 잘 못해서 손가락을 내리 쳤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오후엔 일하다가 망치를 잘못 내리쳐서 손가락을 때렸습니다. 계속 일하자니 너무 아파서 장갑을 벗고 봤는데 살갗이 3미리 정도 날아가고 피가 났습니다. 처음엔 주인이 보면 일 못한다고 내일부터 오지 말라고 할까봐 주위에 있던 비닐 끈으로 칭칭 묶은 후 작업을 계속 했습니다. 생살이 뜯긴 손가락은 많이 아리고 아팠습니다. 나중엔 안 되겠다 싶어서 여 사장님께 조심스레 손가락을 내보이며 일하다 다쳤다고 하니까 다른 직원을 불러 손가락 바르는 반창고를 사오라 해서 그것을 바르고 일했습니다. 비닐로 묶어 둔 것보다 한결 좋았습니다.

그 일만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수시로 못 쓰는 물품을 모아서 고물상으로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트럭으로 가져 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손수레로 작게 모아서 오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직원들은 거기 가서 여러가지 물품을 분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박스 모으는 곳, 신문이나 책 모으는 곳, 철 모으는 곳, 구리 모으는 곳이 다 따로 있었습니다. 빈 병도 가져 오고 헌 옷도 가져오니 오는 사람마다 다양한 물품들을 분류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그럴 때라야 쪼그리고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몸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분류된 물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면 5톤 트럭이 와서 집게로 뭉텅뭉텅 들어 올려 실어 날랐습니다. 오후 6시 30분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물품을 모아 수레에 끌고 왔습니다. 많이 가져 온 사람들은 몇 만원도 받아 가고 작게 가져온 사람들은 몇 천원도 받아 갔습니다. 가져 온 물품 종류와 무게에 따라 받아 가는 금액도 달랐습니다. 외상은 없었습니다. 물품을 가져오면 곧바로 현금으로 교환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그런 용돈벌이 하느라 길거리마다 파지 줍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고된 노동 끝에 다시 일인시위... 어서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날 왔으면

저는 어제 오후 6시 30분에 작업 마치고 퇴근하면서 울산 노동자 배움터 사무실에서 잠시 쉬다가 야간조 출근에 맞춰 나가 현대자동차 구정문 앞에서 1인 촛불 시위를 했습니다. 몸이 많이 무거웠지만 저에게 온 인생 최대의 희망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몸이 천근만근 힘들고 무거웠지만 그래도 서있었습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작업과 일을 했습니다. 오늘은 몸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오후 6시 30분경 퇴근 시간에 맞춰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겸사겸사 오늘은 촛불 시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 씻고 밥 먹는데 몸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손목도 발목도 뻐근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있자니 허리가 많이 아팠습니다. 우선 그렇게라도 저는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한 촛불 투쟁도 계속 이어 나가야만 합니다.

내일 아침에도 출근해서 저는 여전히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일자형 망치로 톡톡 두드리며 철조각과 구리를 분리하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또한 저녁엔 시위 용품을 가지고 현대자동차 구정문으로 나가서 촛불을 들 것입니다. 몸은 비록 힘들지만 저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희망을 이루어 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마음만은 즐겁습니다. 불법파견 문제가 하루 빨리 매듭 지어져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고물상 퇴근후 불법파견 촛불 시위  고물상에서 일 마치고 현대자동차 구정문 앞에서 촛불을 들고 서있었습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계속 이어 갈 것입니다.
▲ 고물상 퇴근후 불법파견 촛불 시위 고물상에서 일 마치고 현대자동차 구정문 앞에서 촛불을 들고 서있었습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계속 이어 갈 것입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불법파견 직접고용  불법파견 투쟁과 생업형 직장에 다니는 것을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불법파견 직접고용 불법파견 투쟁과 생업형 직장에 다니는 것을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불법파견#비정규직#직접고용#현대자동차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