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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10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생선은 누가 뭐라 해도 갈치일 것입니다. '10월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 값보다 높다!'는 속담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10월과 딱 맞아떨어지는 생선, 갈치찜 전문식당을 소개합니다. 메뉴는 달랑 두 가지. 감자와 무를 나박나박 썰어 넣은 얼큰한 '갈치찜'과, 단맛이 감도는 천일염을 뿌려 튀긴 '소금구이'로, 갈치의 참맛을 즐길 수 있는 식당입니다.

 궁전식당 전경. 객실도 아늑한 분위기여서 식사를 편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궁전식당 전경. 객실도 아늑한 분위기여서 식사를 편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 조종안

 궁전식당의 갈치찜. 비린내와 기름기를 제거해서 국물이 쌈빡하고 개운해서 뒤끝이 좋았습니다.
궁전식당의 갈치찜. 비린내와 기름기를 제거해서 국물이 쌈빡하고 개운해서 뒤끝이 좋았습니다. ⓒ 조종안

군산시 신창동에 위치한 이곳은 80~90년 풍상은 견뎠을 석등과 5층 석탑, 다양한 정원수가 심어진 잔디 정원이 식당을 에워싸고 있어 100년 전 부잣집에서 대접받는 것 같았습니다.

정원수들이 손님을 맞이하듯 서 있는 돌계단을 밟고 식당에 들어서니까 프로야구 경기 명장면이 담긴 액자들이 걸려 있어 주인이 프로야구 열광적 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내 분위기도 고급식당처럼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꾸며져 있더군요.   

지난 8월 어느 날 식사나 함께하자는 형님 전화를 받고 처음 가봤는데요. 음식이 깔끔하고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맛이어서 기억해두고 있다가 며칠 전 서울에서 내려온 딸과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왔습니다.

갈치찜 1인분에 1만 원, 소금구이도 1인분에 1만 원입니다. 한 사람 식사로 적은 금액은 아니지요. 하지만, 알이 통통하게 밴 고소한 갈치를 포식할 수 있어서 아깝지 않았습니다. 서비스로 나오는 참조기까지 손이 갈 여유가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1인분에 국내산 갈치를 세 도막씩 넣어도 이익이 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입을 막았습니다. 수입산이 판치는 요즘에 맛이 중요하지 고향은 묻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고향은 묻지 말라? 맞는 말 같아서 더는 따질 수 없었습니다.

 알이 꽉 찬 가운데 도막. 보기만 해도 흐무졌는데요. 주인은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손님을 대하는 게 하루의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알이 꽉 찬 가운데 도막. 보기만 해도 흐무졌는데요. 주인은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손님을 대하는 게 하루의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 조종안

 갈치찜 속의 무와 감자. 갈치를 발라 먹다 한 번씩 집어먹는 무와 감자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었습니다.
갈치찜 속의 무와 감자. 갈치를 발라 먹다 한 번씩 집어먹는 무와 감자는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었습니다. ⓒ 조종안

주인 말대로 밑반찬도 깔끔하고 맛깔스러웠고, 양념이 적당히 밴 갈치찜의 오묘한 맛은 수입인지 국내산인지 따졌던 저를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대파와 양파가 들어가 맵지 않고 달달하니 좋았습니다. 설탕의 단맛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손님의 주문에 따라 술안주용으로 약간 맵게 나오기도 하고, 밥반찬으로 먹기 좋도록 삼삼하게 나오기도 한다는 갈치찜은 양념이 적절히 배합된 속살이 입에 들어가니까 살살 녹더군요. 처음 몇 차례는 먹는 것조차 아까웠습니다.

잘 조려진 무와 감자는 맛을 돋워주는 도우미 역할을 해주었는데요. 사각사각 씹힐 때 나오는 국물은 오감을 만족시켰습니다. 알이 꽉 찬 갈치 세 도막으로 밥 한 공기를 먹으려니까, 밥에 갈치를 먹는 것인지, 갈치에 밥을 먹는 것인지 헷갈렸습니다.

 주인이 자신 있게 내놓는 배추 겉절이. 젓국으로 담는다는 겉절이는 배추의 고소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자신 있게 내놓는 배추 겉절이. 젓국으로 담는다는 겉절이는 배추의 고소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 조종안

밑반찬들도 옛날에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그 맛이었습니다. 가정집이든 식당이든 김치 맛이 좋으면 다른 음식은 시식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요. 금방 버무린 싱싱한 겉절이는 씹는 순간 주인 음식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인도 아침에 버무린 겉절이를 식당의 대표 밑반찬으로 꼽더군요. 요즘 배추가 금값인데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고 했더니 당분간 손해를 보더라도 담가야 한다며 맛있다고 더 달라는 손님에게는 더 드린다고 했습니다. 퍼주기 인심을 빨리도 습득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더군요.

  갈치 소금구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속살도 맛있지만, 과자처럼 바삭바삭 씹히는 껍질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세 명이 갈치찜 2인분에 소금구이 1인분을 주문하는 것도 작은 지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갈치 소금구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속살도 맛있지만, 과자처럼 바삭바삭 씹히는 껍질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세 명이 갈치찜 2인분에 소금구이 1인분을 주문하는 것도 작은 지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조종안

갈치 소금구이 또한 별미 중의 별미였습니다. 달리 설명이 필요 없는 소금구이는 소금으로만 맛을 내기 때문에 소금의 질이 무척 중요한데요. 짜면서도 뒷맛이 개운하고 단맛이 감도는 천일염을 뿌려야 갈치의 참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소금구이도 찜처럼 세 도막이 나왔는데요. 어른 손바닥처럼 두툼해서 보기에도 흐뭇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속살은 소금을 뿌렸는데도 삼삼해서 먹기 좋았는데요. 고소하고 담백해서 뒷맛이 개운했습니다.

 갈치찜 진국에 비벼놓은 밥. 비린내는커녕 쌈빡한 맛이 그만이었는데요. 비빔밥집 메뉴에도 없는 으뜸 비빔밥이었습니다.
갈치찜 진국에 비벼놓은 밥. 비린내는커녕 쌈빡한 맛이 그만이었는데요. 비빔밥집 메뉴에도 없는 으뜸 비빔밥이었습니다. ⓒ 조종안

건더기를 모두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니까 또 다른 별미였습니다. 고소한 맛이 나는 갈치에 갖은 양념을 잘 배합해서 푹 고아낸 국물이니 진국일 수밖에요. 소주 안주로도 그만이었습니다. '모든 음식은 국물에 참맛이 담겨 있다!', '술안주는 밥이 최고다!'는 말들이 떠올랐습니다. 

비린내가 많이 나기로 소문난 갈치를 쌈빡하게 조리하는 비결을 주인에게 물으니까, 잠시 웃더니 고춧가루를 아무리 많이 넣어도 비린내를 가시게 할 수 없다면서 비결은 대파, 다시마, 고추씨, 파뿌리 등 15가지 이상의 양념을 넣고 푹 고아낸 육수에 있다고 했습니다.
  
경기도에서 나고 자랐는데 군산으로 시집와서 생각지 않은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해서 잠시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갈치찜 전문식당은 언제부터 운영하셨나요?
"3년쯤 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을 30년 전에 새로 지어 살다가 최근 음식점으로 리모델링해서 영업하던 사람에게 인수받아 개업했어요. 단골손님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음식 솜씨는 누구에게 배웠는지?
"군산 토박이인 시어머니에게 전수받았지요. 결혼하고부터 자연스럽게 배웠는데, 사람들이 음식솜씨가 뛰어나다고 칭찬해주니까 음식을 만드는 게 재미있고, 무엇을 만들어도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결국, 이웃의 칭찬이 힘이 되어 식당까지 개업하게 되었군요.
"처음엔 군산이 객지고 해서 식당을 개업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3년 전 이 집을 구매해서 뭣이든 해보라고 하기에 상의 끝에 '갈치찜'을 선택했습니다. 손맛이 뛰어난 시어머니를 믿고 시작한 겁니다.(웃음)"

- 아직 젊으신데 효심이 대단한 아들을 두셨네요.
"(쑥스러워하며) 사실은 아들이 프로야구 선수입니다. 이준영이라고. 지금 LG소속이지요. 이 집도 아들에게 빌린 겁니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하고, 음식도 이웃과 나눠 먹는 자세로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한결 가볍고 손님이 맛있게 드시는 걸 보면 흐뭇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복도와 객실에 걸린 액자들을 보면서 프로야구 팬으로 생각했는데 아들이라니 놀라웠습니다. 20대에 노후대책을 생각할 정도로 야무지고 착한 아들을 둔 주인이 부럽기도 했고요. 올해 쉰이라는 주인은 갈치찜과 겉절이에 필요한 청양고추 4백 근을 진즉 주문해서 2층에 갈무리해놓고 있다면서 맛 하나만큼은 변함없이 선보일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갈치찜#갈치소금구이#궁전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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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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