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 진천읍 보련산 자락 연꽃골에 우뚝 서 있는 보탑사는 고즈넉하면서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연꽃골은 진천읍에서 서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다. 보탑사 가는 길에는 김유신 장군 생가 터가 있고 보탑사에 못 미쳐서는 연곡저수지가 있어 풍광이 빼어나다. 보탑사 입구에 도착하자 커다란 정자나무 그늘 아래 올망졸망 보따리를 풀어 놓은 할머니가 정겹게 부른다.
"이봐요, 색시 고추 사가셔, 볶아먹기도 하고 쌀가루 묻혀 쪄서 먹어도 맛있어."빨간 고추를 수확하고 남은, 늦게 열린 작은 풋고추를 따가지고 나오신 할머니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나는 끝물이라는, 서리 맞은 작은 고추로 만든 요리를 유난히 좋아하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할머니 곁에 쭈그려 앉아 펼쳐놓은 물건들을 바라본다. 참 이상하게 생긴 열매가 있어 뭐냐고 물었다.
"으름이여, 할아버지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따온겨, 엄청시리 달고 맛있어 한 번 잡숴봐.""얼만데요?" "4송이에 천 원만 줘." 으름은 가을 산의 바나나라고 한다. 모양도 바나나와 비슷하게 생겼다. 길쭉한 열매가 2~4개씩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맛이 궁금해 하얀 속살을 입 속에 넣고 맛을 보았다. 그런데 달콤하기는커녕 씁쓸하고 입 안이 텁텁해 기분이 나쁠 정도다.
"할머니 달콤하다고요? 너무 쓰고 입 안이 텁텁하잖아요?" "아이고, 아녀 씨는 씹으면 안되는디. 씨를 깨물어서 먹어버린겨? 씨는 그냥 삼키든지 뱉어야허는디. 우짠댜."역시 충청도 아니랄까봐 느긋하게 말씀 하시는 할머니가 야속할 뿐이다. 성격 급한 내 잘못이다. 덕분에 사찰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내내 입안이 전쟁이었다. 커피를 마셔도 물을 마셔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불편했다.
보탑사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자 법고각과 범종각이 나란히 마주보며 중생들을 맞이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보탑사만큼 아름다운 사찰은 처음인 것 같다. 경내 곳곳에 다양한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 꽃대궐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꽃 위에는 벌과 나비들 심지어는 파리들까지… 날 수 있는 곤충들은 죄다 꽃송이 위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총 높이가 42.7m인 보탑사의 3층 목탑은 떠받치고 있는 기둥만도 모두 29개에 이른다. 신라가 새로운 통일국가를 염원하며 황룡사 9층 탑을 세웠듯이, 남북통일은 물론 옛 고구려 땅까지도 통일하려는 간절함 염원을 담아 지은 탑이라고 한다. 이 탑의 특징은 3층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신라 황룡사의 9층탑 이후 처음으로 3층까지 오를 수 있게 지은 탑이다.
사찰 입구에 들어서자 군데군데 줄을 맞춰 심어져 있는 배추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찰 내에 배추기 이렇게 많이 심어져 있다니... '배추가 금값'이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아마도 예전에 꽃을 심었던 자리에 배추를 심어 놓은 것 같다. 왠지 꽃보다 배추가 더 정겨워 보이는 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채솟값 폭등 때문이었나 보다.
보탑사 3층 목탑 1층 법당 부처 앞에 수박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왜일까, 궁금하여 10년째 사찰입구에서 불교용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보살에게 물어 보았다.
"팔월초파일날 기도를 한 뒤 수박을 쌓아두었다가 동짓날에 동지기도가 끝나면 팥죽과 함께 대중공양을 하죠. 과학적으로 판명되지는 않았지만 참 신기한 일이에요. 상온에서 자연 그대로 보관하는데도 수박이 변질되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게 말입니다. 수분이 어느 정도 증발해 약간 젤리처럼 느껴지며 당도도 훨씬 높아요. 수박을 쪼개어 보면 결이 갈라지기도 하고 가운데가 약간 비어있는 상태가 된 것도 있어요. 암튼 그 맛은 먹어보지 않고는 말할 수가 없어요. 궁금하시면 동짓날 한 번 오세요."
보탑사의 건축기법에 감탄할 뿐이다. 사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다람쥐도 마중 나와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