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다>란 책이 있었다.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고 이해하는 요긴한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던 책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구절에 많은 사람이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책들의 영향을 받아 우리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김정호. 사람들은 지리학자나 지도 제작자 정도로 알고 있다. 그가 남긴 대동여지도만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옛 지도도 없지 싶다. 나 또한 <우리 옛 그림의 마음>을 읽기 전까지는 그 정도로만 이해했다. 팔만대장경이 빨래판이 아니라는 것을 구분해낼 정도의 빈약한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김정호는 본래부터 뛰어난 재주가 많았다. 특히 지리학에 취미가 있어 두루 상고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여 「지구도」와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그림도 잘 그리고 각(刻)에도 뛰어나 인쇄한 것이 세상에 퍼졌다. 상세하고 정밀한 것이 고금에 비교될 만한 것이 없다. 내가 이를 얻고서는 참으로 보물로 여겼다. (책 속에서)대동여지도가 목판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목판본이 전각예술에 해당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란 생각은 못했다. 지리학자, 지도제작자로서의 김정호는 알고 있었지만 그림도 잘 그리고, 전각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김정호는 알지 못했다. 목판에 한 칼 한 칼 산줄기와 물줄기를 새겨 넣던 전각 예인 김정호의 진면목은 보지 못했다. 아니 볼 수 없었다. 그 가치를 헤아릴 만한 안목이 없었기 때문에.
읽고 보니 달라 보였다. 지리학자로서 지형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걸었던 김정호, 그렇게 보고 가슴에 담은 길과 산줄기, 물줄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목판으로 한 칼 한 칼 새겨 넣었던 그의 노력과 정성은 그가 살고 있는 땅과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탄생한 대동여지도는 고귀한 전각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우리에게 옛 그림은 어떤 의미일까.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적 가치, 천문학적 액수의 가치를 지닌 재물, 그림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가치 등등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기준에 의해 다양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림 보며 감탄하지만 어떤 사람은 화가의 삶을 생각하며 감동에 젖어든다.
옛 그림을 감상할 때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과 내력, 화가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들,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 아는 만큼 재미도 있고, 아는 만큼 속내를 엿볼 수 있고, 그림을 그린 이의 애환까지도 공감할 수 있다.
일흔여섯의 나이에 인왕재색도를 그린 정선, 유난히 수탉을 즐겨 그렸던 장승업, 부리부리한 눈매에 강렬한 눈동자, 한 올 한 올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수염의 자화상을 그린 윤두서, 양식과 규율을 깨고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던 신윤복, 남북 분단의 비극을 안고 살아간 임군홍, 끼니 걱정을 하면서 쓸쓸한 말년을 보냈던 김홍도….
<우리 옛 그림의 마음>이란 제목처럼 그림을 통해 옛 예인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지은이의 의도가 돋보인다. 옛 그림과 선조들의 삶 자취를 읽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옛 선조들의 삶 자취 속에서 문득 자신을 돌아보며, 그림 속 이야기가 내 이야기, 내 이웃의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 김정애/아트북스/2010.7/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