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 12일 오후 8시 55분]정부가 10일 사망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12일 "통일부가 황씨에 대해 1등급 훈장을 추천해옴에 따라 내부 검토를 거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이 이날 오후 빈소를 직접 방문해 훈장을 전달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전·현직 대통령과 배우자, 외국 대통령에게만 주어지는 무궁화대훈장 다음으로 높은 등급의 훈장이다.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국민훈장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으로, 우리 국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황씨를 국립현충원에 안장시키려고 훈장 추서를 서두른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황씨 빈소를 조문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황 전 비서의 현충원 안장이 결정됐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상훈법 규정상 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은 무척 까다롭다. 우선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등 헌법기관장과 전몰·순직한 군인·경찰·소방공무원,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된 사람 정도가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고, 일반인들은 훈장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설령 훈장을 받았다고 해도 ▲ 국위를 선양하거나 ▲ 국민적 추앙이 되는 인물이거나 ▲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에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우선적으로 주어지는데, 황씨의 경우 현충원에 안장시키기 위해 정부가 서훈을 급하게 서두른 게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황씨가 1997년 망명 이전까지 김일성대학 총장과 최고인민회의 의장, 노동당 사상·국제담당 비서 등 요직을 두루 지내며 북한의 독재정권 유지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서훈이 성급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일반적으로 훈장 수여와 현충원 안장 등은 국민과 나라에 대한 기여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과는 별개로 과연 황 전 비서의 삶이 우리 국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황씨에 대한 정부의 극진한 예우는 북한이 1986년 월북한 최덕신 전 외무장관을 융숭히 대접한 것과 빼닮은 측면도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부 장관(1961~63), 서독 대사(1963~67), 공화당 대통령선대위 고문(1971) 등을 지낸 최씨는 1986년 월북했는데, 북한은 1989년에 죽은 그를 애국열사릉에 안치했다.
황씨는 망명 이후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이 세습되는 것에 비판적인 입장을 토해냈지만, 북한에 머물 때는 부자 세습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데 누구보다 매진한 인물이었다.
1980년 조선노동당 6차 당대회(10월 10~14일) 도중 '김일성 사업 총화토론'에서 행한 연설은 그가 김일성 부자에게 어떻게 신임을 얻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역사적 경험은 혁명의 계승성이 보장되지 못할 때 당이 변질될 수 있으며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이 커다란 시련에 부딪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수행에서 사활적인 의의를 가지는 영도의 계승 문제는 지난 시기 그 누구도 제기조차 못했으나 이 중대한 문제가 오직 김일성에 의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빛나게 해결될 수 있었다."한편, 행안부는 황씨에 대한 훈장 추서 건을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렸고, 회의를 주재한 이 대통령은 별다른 논의 절차 없이 훈장 추서를 의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고인은 생전이나 후에나 국가가 책임지고 지켜드리는 것이 도리다. 안전하게 영면하실 수 있도록 조치하는게 좋겠다"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