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이십 년을 살면서 예닐곱 번 이사를 하였으니 꽤 여러 번 짐을 꾸린 것 같다. 이삿짐을 쌀 때마다 많은 물건들을 버렸다. 한때 나의 소유로 사랑받으며 나의 손때가 배어든 것들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낡아져 버리는 것이다. 어떤 것은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 망설이지만 미련을 버리고 마음과 손에서 떠나 보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오십 년 이상을 살면서 내가 소유하였다 버린 것들이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나의 소유는 늘어만 가고 그것들은 어느새 나의 삶에 자리를 잡아 마음을 훔치고 내 안에 욕망으로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어떤 물건을 소유하고 보존하고 돌보고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존적 소유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소유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생존적 소유라는 말은 낡아 버린 원시시대에 필요했던 단어가 되어 버렸다.
영국의 문필가이면서 고전 학자였던 로버트 버턴의 수필집 '우울의 해부'에서 "부자는 소유자라기보다는 사실상 자기의 돈에 소유 당한다"는 말처럼 오늘 우리들은 생존을 위한 소유보다 소유를 위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덧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필요로 했던 소유물들이 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하여 아침을 맞이하고, 종일 그것들을 손에 쥐려고 혹은 놓치지 않으려고 땀 흘리며 애를 쓰다 지친 몸으로 하루를 끝맺고 있다. 그럴수록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소유의 종이 되어 행복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 지 일 년이 되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생존을 위한 세상과 싸움이었다. 자신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태어난 자식들을 위하여 긴긴 하루 뜨거운 태양 아래서 생존을 캐었다. 어머니의 평생소유는 낡은 장롱 하나와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부엌 세간들이었는데 이제 그나마도 다 버리고 아들 집에 오셔서 문간방에 작은 침대 하나와 몇 벌의 옷과 신발 두 켤레 밖에 남은 것이 없다. 어머니도 생존을 넘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를 쓰신 적이 있으셨을 것이다. 젊은 한 때의 그 시간들도 이제 어머니의 등 뒤에서 멀리 내다버린 낡은 물건처럼 잊혀져 가고 있다.
이십대 중반인 1974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동시에 당선되어 화려하게 문학계에 등장한 작가 송지원은 그가 마지막이라고 선언한 죽음을 주제로 한 시집 '저녁'에서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게 죽음은 애통한 어떤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대상에 가깝다. 그는 거짓말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에서
사는
티베트 사람들의
하고많은 거짓말, 그중에서도
가장 달라붙는 거짓말은
죽는다는 것이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짧은 순간의
알몸 상태라는 것"
헌 옷을 벗는 것이 죽음이라는 티베트사람들의 말처럼 그는 이미 헌 옷을 하나씩 벗고 있다. 천안에 있던 작업실의 전세금을 아내에게 줘버리고 올해부터는 어머니의 제사도 드리지 않고 독한 마음으로 어머니와 이어졌던 천생의 끈도 놓았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나는 거지가 되고 싶어, 그게 마지막 가는 길이지"라고 말하면서 거지가 되겠단다.
그가 거지가 되겠다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들을 다 버리겠다는 말로 이해가 된다. 이삿짐을 쌀 때 낡은 것들을 버리듯이, 그동안 생명처럼 소중이 붙들고 살던 문학도 놓아주겠다는 말이며, 별로 가진 것이 없던 그의 물질의 소유를 다 버리겠다는 뜻일 것이다. 남에게 신세를 지고 얻어먹고 사는 것은 그리 아름다운 일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소유도 남의 손에 맡기겠다는 의미로 받아드릴 때 그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본다. 그는 지금 죽음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은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이고 사회적 관계의 질도 낮아 행복하지 않다"는 심리학자 에드 디너의 지적처럼 물질의 소유에서 행복을 찾으려 애쓰는 문화에 길들여진 나는 나의 소유를 버릴 수 있는가 반문한다. 내가 누리고 있는 삶들, 편안히 몸을 눕힐 수 있는 침대, 정성이 담긴 따뜻한 한 끼 식사, 나의 자리와 취미, 사랑하는 가족들과 잡은 손을 의식이 있는 내가 어찌 쉽게 놓을 수 있겠는가?
홍콩의 영화배우 주윤발이 자신의 재산 99%를 사회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소유 외에는 모든 것을 버린 것이다. 그도 이미 죽음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나는 송지원처럼 모든 소유를 버리고 거지가 되어 남의 손에 있는 물질을 구걸하며 살 수 는 없다. 그러나 거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두벌 옷을 가지지 말라"는 예수님의 음성과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던 바울의 음성을 듣는다. 물처럼 흘러간 세월이 어머니에게서 젊음과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소유에 대한 본능까지도 도로 찾아 간 것처럼 나에게도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 내놓으라고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준비 없이 도둑을 맞은 것처럼 허망해 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버리는 훈련을 통하여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하나 둘 내 곁을 떠나는 것들을 위하여 그것들을 슬프지 않게 당연하듯이 보낼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오늘 필요한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는 차가운 감옥에서 작은 몸뚱이 하나를 감쌀 외투조차 없었던 바울을 생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