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얘 저기 좀 봐라. 배추가 비싸니깐 이젠 무청도 판다. 예전 같으면 밭에 놔두어도 주워가는 사람도 없을 텐데. 하긴 지금은 저것도 감지덕지지."
"그러게. 저걸 다 사가는 사람도 있고. 사실 나도 며칠 전에 무청김치 담갔는데 맛이 아주 좋던데. 아마 올해도 채소가 대풍이었다면 이렇게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은 들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저건 대부분 버려졌을 것이 뻔하지."
13일 친구와 시장을 갔다. 시장 입구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 2~3명이 다듬어진 무청을 팔고 있었다. 하기사 나도 무청을 파는 모습은 처음으로 보는 듯했다.
지난 11일 저녁 무렵 퇴근해 돌아온 남편이 빨리 내려오라고 전화를 했다. 남편의 자동차 있는 곳으로 갔다. 남편이 트렁크 문을 열고 무언가 큰 부대자루를 꺼낸다.
"이게 다 뭐야?"
"집에 오는 길에 김사장네 밭에 들렀더니 마침 무를 솎아 주고 있기에 얻어왔지. 이거 김치 할 수 있지?"
"그럼 할 수 있고 말고. 김치뿐이야? 데쳐서 된장국도 끓여 먹으면 얼마나 구수한데."
난 무척 반가웠다. 자동차 트렁크 안에는 호박2개, 풋콩, 파들이 방긋이 웃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편이 주말농장에서 이것저것 채소농사를 지었다. 하여 싱싱한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 봄에는 어찌하다 보니 모종과 씨앗 뿌리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하여 난 남편에게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올해는 쉬는 것이 어때?"하며 운을 떼어 보았다. 남편도 직장 다니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많이 힘들었는지 "그럼 그래 볼까?"했었다.
규모가 작은 주말농장이라도 대충 농사를 지으면 열매 맺는 것이 부실한 것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주말농장을 통해서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고, 농부들의 수고로움도 새삼 알게 되었다.
올해 주말농장을 한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한테 농사 안 짓기를 참 잘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 모르고 주말농장 안 하기를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어떤가? 김치가 '다이어치'라는 말이 나오고, '김치볶음밥을 먹으면 된장녀'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된 것이다.
그나마 작은 규모의 주말농장이라도 안 하니깐 부스러기조차 먹기 힘들어진 아쉬움이 요즘 들어 부쩍 생겨나곤 한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다. 나날이 고공행진을 하는 채소 가격 소식에 남편은 지나가는 말로 "그래도 내가 농사를 지을 걸 그랬나 보다"하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 앞뒤 사정을 알고 있는 남편의 지인이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르라고 연락이 와 가서는 한 보따리 얻어가지고 온 것이다. 난 집에 들어오자마자 무청을 다듬었다. 행여 시간을 끌면 누런 떡잎이 질까봐.
싱싱한 무청이 커다란 그릇 두 군데에 가득하지만 절여 놓으니 반도 더 줄어들었다. 밤 12시나 되어 버무리게 되었다. 막 버무린 무청김치 맛을 보던 남편은 밥을 달라고 한다. 워낙 겉절이를 좋아하지만, 요즘 때가 때인 만큼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보온밥통에서 밥을 넉넉히 퍼주었다. 많다고 하면서도 무청 겉절이와 밥을 게 눈 감추듯 먹는다.
커다란 김치통에 무청김치가 한 가득 채워졌다. 당분간은 김치 걱정은 끝이다. 꽉 채워진 김치통을 보니 내 마음도 절로 가득 채워지는 듯하다.
무청은 무보다 영양가가 더욱 더 풍부하다고 한다. 특히 칼슘, 철분, 비타민, 섬유질이 많아 김치 중에서도 영양만점이다. 그동안 예사롭게 생각했던 무청김치의 재발견, 무청의 예찬은 당분간은 계속 될 듯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며칠 동안은 무청에 푹 빠져 살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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