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낙인과 멍에를 제 어깨에서 벗겨주십시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14일 당 동료 의원 86명 전원에게 절절한 호소가 담긴 친필 편지를 보냈다. A4 5장 분량의 긴 글에는 손학규 대표의 직계로 당초 사무총장 0순위로 거론됐지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배제됐다는 당내 평가에 대한 심경이 담겼다.
김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 손학규 대표의 당직 인사와 관련해 하마평에 오르내렸지만 결과가 발표되자 언론에는 제가 영남 출신에 한나라당 출신이라 배제됐다고 보도됐다"며 "막상 그런 보도를 보는 제 심정은 참으로 참담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정치인으로서 당직을 맡아 당에 기여하고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지만 제가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다"며 "손 대표가 탕평과 당의 화합을 위해서 내린 결단은 누가 봐도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그래도 정말 마음이 아픈 것은 왜 영남 출신,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느냐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지명직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이 동시에 영남 출신이면 큰일 나는 당이냐, 우리 당은 민주당 출신, 한나라당 출신, 개혁신당 출신의 모든 민주개혁 세력들이 함께 모여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전국정당을 한번 해보자고 만든 당 아니냐"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꼬마 민주당'에서 '독수리 5형제' 되기까지... "고비마다 족쇄"김 의원은 이 편지에서 1991년 '꼬마 민주당' 입당으로 시작된 자신의 정치 역정을 소개하면서 한나라당에 들어가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김 의원은 "1995년까지 김대중, 이기택 두 분이 이끌던 민주당에서 정치를 배웠지만 그해 분당 사태 당시 조순 서울시장까지 당선시켜준 국민들께 분당의 명분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분당에 반대했다"며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합류하지 않았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조순 두 후보가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결정하면서 민주당에 남아 있던 이들은 저절로 한나라당 창당멤버가 돼 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나라당을 탈당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2000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제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하자 점점 상황이 심각해져 갔고 2003년 '대북송금 특검 법안'에 한나라당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지자 그때부터는 아예 대놓고 왕따시키고 '나가라'고 했다"며 "정치적 소신이나 정책적 입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때의 이력이 오늘까지 이렇게 멍에가 되고 고비마다 족쇄가 될 지 몰랐다"며 "물론 이 모든 게 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뭐라고 딱지를 붙이든 저는 민주화 운동으로 잔뼈가 굵고 전통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청춘을 바쳤던 '민주당 출신' 정치인"이라며 "민주당의 불모지에서 지지 기반 확대를 위해 김매고 거름 주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정치사의 큰 물결이 요동침에 따라 본의 아니게 한나라당에 몸담았다는 것이 원죄라면 언제든지 그 값을 달게 치르겠지만 부디 외면하지만 말아 달라"며 "가슴 속에 삭힌 눈물로 호소 드린다, 언젠가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낙인과 멍에를 제 어깨에서 벗겨달라"고 호소했다.
김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7월 이부영, 김영춘, 안영근, 이우재 당시 의원들과 한나라당을 탈당,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며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거치며 17·18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경기 군포)한 후 지난 5월 민주당 원내대표에 도전했지만 끝내 당내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손학규 대표의 신임 사무총장 인선에서도 지명직 최고위원에 같은 영남 출신이자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영춘 전 의원이 발탁되면서 호남 출신인 이낙연 의원에게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