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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바로 '1타3피'. 두 개의 에기와 한 개의 주꾸미볼(에자)에 주꾸미가 한 마리씩 붙어 올라오고 있다.
이게 바로 '1타3피'. 두 개의 에기와 한 개의 주꾸미볼(에자)에 주꾸미가 한 마리씩 붙어 올라오고 있다. ⓒ 김동욱

"흐미~, 으째 그러코롬 못 잡는다요?"
"한 20마리 쯤 잡았는데요…."
"아따, 20마리가 뭐요? 남들은 지금 200마리씩 잡았는디~. 앓느니 죽지. 거 낚싯대 줘 보시오."

전영만 선장이 답답했던지 내 낚싯대를 빼앗듯 가져간다.

"이거는 바닥을 찍기만 허먼 무는디, 이렇게…. 자, 보시오. 이렇게 하란 말이지, 내말은…."

전 선장은 열 번 채비를 내려 한 번 낚아낼 동 말 동 하는 나의 주꾸미낚시 솜씨가 못내 답
답했나보다. 사실 처음에는 내 채비가 바닥을 찍었는지 어쨌는지, 그리고 내 채비에 주꾸미가 올라탔는지 어쨌는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 번 해보니 봉돌이 바닥에 닿는 느낌을 알게 되고, 에기(오징어낚시 용 루어의 일종)를 잡아당기는 주꾸미의 조심스러운 발장난의 감각도 느껴졌다.

 "저기 배 들어온다." 새벽 홍원항은 주꾸미 갑오징어 낚싯배를 기다리는 꾼들로 북적인다.
"저기 배 들어온다." 새벽 홍원항은 주꾸미 갑오징어 낚싯배를 기다리는 꾼들로 북적인다. ⓒ 김동욱

밀려드는 꾼들, 주말이면 어선까지 총동원

에깅(오징어 루어낚시). 솔직히 고백컨대, 다른 건 몰라도, 갑오징어 주꾸미낚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년에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다른 일정에 쫓겨 그만 시즌을 놓치고 말았던 거다. 그래서 '올해야 말로…'하며 별렀고, 마침 박범수 한조무역 사장이 홍원에서 갑오징어 주꾸미 낚싯배를 띄우고 있었다.

 "아이스박스 받아~!" 은갈치2호에 오른 꾼들이 채비 준비에 분주하다.
"아이스박스 받아~!" 은갈치2호에 오른 꾼들이 채비 준비에 분주하다. ⓒ 김동욱

그리고는 또 다시 다른 일정에 쫓겨 원고마감(월간낚시21)이 임박했던 지난 10월 3일에야 홍원항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오전 6시의 홍원항은 마치 야시장을 방불케 했다. 항구의 낚싯배들은 이미 환하게 불을 밝히고 꾼들을 맞이하고 있다. 역시 중장년 남성꾼들이 많지만 아내나 아이들과 함께, 혹은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요즘은 주꾸미낚시 인구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이 모두 주꾸미낚시 나가는 배들입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몰려든 꾼들을 수용하기 위해 홍원항의 낚싯배들은 물론이고, 어선까지 총 동원되고 있다는 박범수씨의 설명이다. 홍원항의 낚싯배가 대충 100여 척이라고 봤을 때, 오늘 하루 출항하는 주꾸미 낚싯배만 줄잡아 150척이 넘는다.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배 한 척에 10명의 꾼들이 탄다고 치면 오늘 여기 몰려든 주꾸미꾼들은 최소 1500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바닥 찍고 하나 둘 셋, 감으면……. 자, 보세요." 박범수씨가 나에게 시범을 보이고 있다.
"바닥 찍고 하나 둘 셋, 감으면……. 자, 보세요." 박범수씨가 나에게 시범을 보이고 있다. ⓒ 김동욱

1타 1피는 기본, 한번에 4마리까지 주렁주렁

나는 박범수씨와 함께 은갈치2호에 올랐다. 10톤짜리 은갈치2호에는 미리 예약된 꾼들 20명이 각자의 채비준비로 분주하다. 원래 은갈치2호는 그 이름처럼 먼바다 갈치낚시 전용선이지만 몰려드는 주꾸미 꾼들을 수용하기 위해 동원된 거다. 마침 파도가 제법 높아 작은 배보다는 훨씬 안정감도 있으리라는 박범수씨의 계산도 깔려 있었다.

 익산에서 온 박호덕씨는 꽤 익숙한 솜씨를 발휘한다.
익산에서 온 박호덕씨는 꽤 익숙한 솜씨를 발휘한다. ⓒ 김동욱

배는 멀리 나가지 않았다. 전영만 선장의 설명으로는 3마일 정도 서북진 했으니 항에서 4.5~5km 정도 떨어진 셈이다. 은갈치2호에 탄 꾼들 20명은 서둘러 채비를 내린다. 수심은 14m 정도.

"하나 둘 셋 하고 감으면 올라옵니다. 보세요."

뱃머리에 자리를 잡은 박범수씨가 나에게 시범을 보인다. 그의 말대로 내리자마자 바로 감아들인 채비에는 초등학교 1학년 생 손바닥 만한 주꾸미가 착 들러 붙어있다. 어떨 때는 한꺼번에 네 마리가 에기 두 개와 에자(추 대신 쓰는 주꾸미 모양의 루어) 하나에 기를 쓰고 붙어서 올라온다. '1타1피'는 기본이고, '1타4피'까지 주꾸미들이 착착 붙어주는 거다.

 김소현씨는 잔 씨알의 갑오징어를 낚아냈다.
김소현씨는 잔 씨알의 갑오징어를 낚아냈다. ⓒ 김동욱

모래바닥에서는 주꾸미가 마릿수로, 돌이 섞여 있는 바닥에서는 갑오징어와 주꾸미가 사이좋게 올라온다. 이렇게 한 30분 만에 낚아낸 주꾸미와 갑오징어는 줄잡아 20~30마리. 1분에 한 마리 꼴이다.

 "이건 오늘 오신 분들게 요리해 드릴 겁니다." 전영만 선장이 '점심식사 거리' 주꾸미를 낚아올리고 있다.
"이건 오늘 오신 분들게 요리해 드릴 겁니다." 전영만 선장이 '점심식사 거리' 주꾸미를 낚아올리고 있다. ⓒ 김동욱

 배가 커서 그런지 멀미도 안하게 된다는 익산꾼 이형곤씨.
배가 커서 그런지 멀미도 안하게 된다는 익산꾼 이형곤씨. ⓒ 김동욱

라면국물과 함께 입안에서 톡 터지는 고소함

"아침 안 드셨죠. 라면 끓일 건데 같이 드시죠."

박 사장이 그물망 안에 넣어두었던 주꾸미 중 굵은 놈 5~6마리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양은 냄비에 툭 던져 넣는다. 선실 뒤로 가서 생수 한 병을 냄비에 붓고는 라면 몇 봉지를 뜯어 스프와 함께 넣어 불에 올린다.

 "또 올라온다~!" "이번엔 세 마리다~!" 채비가 바닥을 찍기 무섭게 입질이 들어오자 꾼들의 표정이 환하다.
"또 올라온다~!" "이번엔 세 마리다~!" 채비가 바닥을 찍기 무섭게 입질이 들어오자 꾼들의 표정이 환하다. ⓒ 김동욱

 최근 시즌을 맞아 주꾸미 꾼들이 몰리면서 홍원항에는 낚싯배 뿐 아니라 어선까지 총동원되고 있다.
최근 시즌을 맞아 주꾸미 꾼들이 몰리면서 홍원항에는 낚싯배 뿐 아니라 어선까지 총동원되고 있다. ⓒ 김동욱

3~4분 후…. 아~, 나는 라면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이 때 처음 알았다. 면발과 함께 입으로 들어간 주꾸미 대가리가 어금니 사이에서 툭 터진다. 이내 먹물과 내장이 확 퍼지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고소함이 입 안에 한 가득 고인다. 이윽고 쫄깃하게 씹히는 주꾸미 다리는 보너스.

"생활낚시가 이래서 묘미가 있는 겁니다.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고, 맛있게 즐길 수 있거든요."

주꾸미 라면을 맛있게 먹은 나는 다른 꾼들의 조과를 살펴본다. 각자의 작은 아이스박스 안에는 시커먼 먹물과 함께 주꾸미와 갑오징어 수십 마리가 꼬물대고 있다. 오전 11시쯤. 많이 낚은 꾼들은 이미 100여 마리의 조과를 넘겼고, 처음 주꾸미 낚시를 해 본다는 꾼들도 40~50마리씩은 담아두고 있었다.

 이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안 드셔봤다구요? 지금 홍원으로 가보세요.
이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 안 드셔봤다구요? 지금 홍원으로 가보세요. ⓒ 김동욱

이윽고 점심시간. 메뉴는 주꾸미 불고기 요리. 전영만 선장이 직접 낚아낸 주꾸미를 양념에 버무려 즉석에서 한 솥 요리해 낸 거다. 물을 약간 많이 부은 탓인지 불고기라기보다는 '주꾸미 샤브샤브'가 됐지만 그 맛만큼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홍원항 주꾸미 낚싯배들은 대부분 점심으로 도시락을 제공하지만 전영만 선장은 이렇게 직접 자신이 낚은 주꾸미를 모두 풀어 즉석에서 요리 해 내 놓는 거다.

"벌써 집에 가져가서 먹을 만큼은 실컷 잡았어요. 이젠 배도 부르고…."
전북 익산에서 왔다는 박호덕씨는 이미 손맛과 입맛을 다 채웠다며 만족스러워한다.

"난 내일모레 이사 하는데, 좀 더 잡아서 집들이 할 때 쓸 거야."

경기도 용인에서 온 김대남씨는 이사한 집에서 손님들에게 내놓을 거라며 오늘 200마리는 채워야 한다고 좀 더 욕심을 부린다.

너무 잘 낚여서 이젠 지겹다는 사람, 양껏 낚아 집에 가져가서 냉장고에 얼려두고 겨우내 꺼내 먹을 거라는 사람, 동네잔치 할 거라는 사람…. 장난기 섞인 투정과 조과욕심이 한데 뒤섞인 홍원항 은갈치2호는 오후 2시 귀항할 때까지 시끌벅적했다. 이날 나도 70~80마리의 주꾸미와 갑오징어로 오랜만에 이웃사랑(?)을 베풀었다.

 "으악~! 이놈이……."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동시에 걸어낸 박호덕씨가 즐거운(?) 먹물세례를 받고 있다.
"으악~! 이놈이……." 주꾸미와 갑오징어를 동시에 걸어낸 박호덕씨가 즐거운(?) 먹물세례를 받고 있다. ⓒ 김동욱

 "대가리부터 이렇게 콱 깨물어서……." 이기영씨가 전영만 선장이 차려준 주꾸미 불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다.
"대가리부터 이렇게 콱 깨물어서……." 이기영씨가 전영만 선장이 차려준 주꾸미 불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다. ⓒ 김동욱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낚시21>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갑오징어낚시#주꾸미낚시#홍원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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